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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심리치료 모임
게시물ID : panic_867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ngbi
추천 : 13
조회수 : 267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3/13 22: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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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른 날보다 좀 더 힘이 드네요. 도통 그 사람은 저를 꺼려하지 않아요. 어제는 글쎄 입가 온통 피칠갑을 하고 벌겋게 충혈되어 피눈물을 흘리는데도 그이는 절 끌어안으려 했다니까요."

줄리는 예의 그 모습을 재현해 보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옆에 앉은 최마담이 줄리 손등 위로 제 손을 포개어 차분히 토닥였다.

"부디 나를 잊어주기를."

오늘 모임 진행을 맡은 스렉코비치의 선창에 따라 모두 제창했다. 이어, 언제나 사려 깊은 스렉코비치가 말했다.

"저는 왼팔을 자른 후 오른손에 쥐고 그녀 눈앞에 가져다 댔었죠.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잘린 팔에 입을 맞추었어요. 볼 가까이 끌어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저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만 컸지 마음 여린 털북숭이 브랜이었다.

"고마워요. 절 위해 울어줘서."

스렉코비치가 말을 이었다.

"그녀 눈빛을 보고 전 알았어요. 아무 말도 통하지 않을 거란 걸. 그래서 애원했죠. 제발 날 잊어줘. 그녀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난 네 팔을 먹어버릴 수도 있어. 그럼 내 일부분이 될 테니까."

통곡소리가 들렸다. 브랜의 눈물샘이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잘 참아보려 했는데. 제가 늑대인간으로 변해서 그 사람 앞에 나타났을 때가 생각나서 참을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은 저에게 자기 심장을 먹으라고 했었죠."

 브랜의 얼굴은 수북한 턱수염이 볼에 바짝 달라붙어버릴 만큼 눈물범벅이었다.

"죄송해요. 잠시 바람을 쏘이고 와야겠어요."

"부디 그 사람이 당신을 잊게 되길. 로이스 브랜과 함께 가 줄 수 있겠어요? "

스렉코비치의 물음에 로이스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브랜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리곤 더운 날의 아지랑이처럼 두 존재가 일렁이며 투명해져 갔다. 스렉코비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부했다. 

"조심하세요. 너무 깊은 상심으로 자아를 잃으면 안돼요."

두 존재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남은 존재들이 의자를 끌어 원의 간격을 좁혔다. 마침 스렉코비치 바로 옆에 줄리가 앉았다. 스렉코비치는 상체를 살짝 틀어 줄리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말했다. 

 "줄리, 당신 마음 한켠에선 아직 기억되길 바라는 욕심이 있어요. 더 심한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날 용기는 없잖아요?"

"네... 아직도 전 그이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가 봐요... 이기적이죠?"

아래 입술을 질끈 깨무는 줄리 손등 위 포개진 최마담의 손끝이 오므라졌다.

"우리 이렇게 생각해보자꾸나.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라고. 너희 두 사람은 고작 한 달 전에 서로를 잃었는 걸. 네 욕심은 여자 이고픈 바람이 아니라 마음을 그리 빨리 지워내려는 조급 함이란다. 아직 사무치게 그리워도 좋을 때야. 나는 당분간 네가 그 남자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서로에게 시간을 좀 주렴. "

줄리는 울음 같은 웃음으로 울음을 참았다.

"사실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잊힌다는 게, 그 사람이 나 없는 생에 적응한다는 게. 저는 이 모임에 어울리는 존재가 아닐지 몰라요. 절 잊어 주었으면, 그만 산 사람의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말 전부 거짓말이었거든요! 그래요! 평생 절 잊지 말았으면 해요! 다른 사람 만나지도 말고 죽을 때까지 나만 그리워하면서! 맞아, 나만 기억하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해야 해!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아니야! 나 없이 잘 살면 그땐 정말 죽..."

"줄리!"

스렉코비치가 줄리의 두 볼을 눌러 잡으며 소리쳤다. 아귀힘이 어찌나 센지 줄리 입술이 곧 점이 될 것 같았다. 

"우리 다 그랬어. 진짜 잊히길 바라는 존재가 어디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 악귀로 변하는 거 순식간이라고."

스렉코비치는 깊게 숨을 내쉬며 감정을 다스렸다.

"기억되고 싶다면 잊혀야 한다는 거, 차츰 깨닫게 될 거야.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있긴 있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꼬마 아일란이 끼어들었다.

"뭐가 있어?"

줄리가 물었다. 

"악귀요. 자기가 원해서 악귀가 된 사람도 있긴 해요." 

스렉코비치가 정색하며 아일란을 다그쳤다.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

아랑곳없이 아일란이 말을 이었다. 

"가끔 있어요. 정말 오래도록 떠난 존재를 잊지 못하는 남은 존재가. 문제는 떠난 존재 입장에서 그럴 경우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차마 소중했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을 만큼 맘이 단단하지 못한, 그런 존재들이 있어요. 그래서 하다 하다 이겨내지 못하고 악귀가 되는 길을 택하는 거죠. 자아 따위 잊고 악독하게 남은 존재를 괴롭힐 수 있으니까. 정 떼는대는 그만한 방법이 없긴 해요 사실."

막상 아일란이 말을 시작하자 쓰렉코비치는 듣고만 있다가,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일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었다. 그리곤 아일란의 얼굴을 끌어안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일란은 울음을 터트렸다. 방금까지 당돌하던 태도가 무색할 만큼 아이답게, 어쩌면 늙은이처럼 혼절할 듯 오열했다. 

 "우리도 바람 좀 쐴까?"

최마담이 가만히 줄리의 손을 감싸 쥐고 공간을 이동했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검음에 숨은 구름 사이를 유유히 흘러 대기를 벗어난 최마담과 줄리는 달 표면에 가만히 앉았다.

"우주 공기는 처음이지?"

최마담이 물었다. 

"네.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가 본 곳이 많지 않아요." 

지구를 가리키며 줄리가 답했다. 그 손가락 옆에 같은 손가락을 나란히 대며 최마담이 말했다.

"우린 여전히 저곳에 속해있단다."

최마담이 자기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줄리에게 누울 것을 권했다. 별 다른 거절 없이 줄리는 생전 그 남자에게 기댔듯 최마담을 베고 누웠다. 흐트러진 줄리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넘기며 최마담이 말했다. 

"그 아이는 한 번, 선을 넘었었어."

"아일란이요?"

"그렇단다. 저주받은 꼬맹이. 구원받지 못할 혼. 아일란은 그렇게 불렸었어. 악귀로 변했었거든. 자기 의지로 말이야."

줄리가 뉘인 몸을 벌떡 일으키며 반문했다.

"말도 안 돼요! 한 번 선을 넘으면..."

"돌아올 수 없지. 맞아. 그게 맞지. 하지만 아일란이 악귀였다는 건 정말이란다. 그 아인 혼들 조자 두려워할 만큼 잔혹한 악귀였어. 그 모습도 어찌나 흉물스러웠는지. 입은 목 뒤까지 찢어지고 혀에는 뱀이 달려 있어 퍼런 독을 뚝뚝 흘렸지. 온몸이 뒤틀리고 썩어서 고름 투성이었어."

 "대체 왜..." 

최마담이 고개 돌려 줄리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줄리는 이 모임을 어떻게 생각하니?"

"그... 그야 좋게 생각하니까..."

"왜 모임에 들어온 걸까?"

"위로가... 필요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란다. 우리는 행복해서 불행한 존재들이거든. 생전 사랑했던 사람이 우리를 잊지 못한다는 건 기쁘지만, 그 때문에 자기 삶을 찾지 못한다는 건 슬퍼. 근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게 참 우습지 않아? 고작 더 무섭게, 더 흉한 모습으로 나타나 정을 떼는 정도. 그런데 참... 그러고 나면 우리 맘도 안 좋잖아. 미안하고 속상하고."

"맞아요. 그래서 저도 이 심리치료 모임에 든 거예요. 그 사람 앞에 나쁜 모습으로 나타나고 난 다음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무너져요."

"그건 사실 추억을 파괴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데..."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그런 거뿐이지. 내가 없이 행복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랑했다는 건 참 지랄 같은 일이야."

"어머, 그런 말도 할 줄 아세요?"

"더 한말도 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씨빨 아주 조ㅈ같은일이었어 그건. 아이란이 사랑했던 사람은 무슨 개짓을 해도 결코 그 아이를 두려워하지 않았어. 하도 안타까워서 모임의 다른 존재들 여럿이 합심해도 통하질 않았다고. 씨발, 병신 같아. 아주 병신 같다고 진짜. 제일 병신 같은 건 말이야, 내가 그랬다는 거야. 내가 아일란에게 악귀가 되길 권했어... 그저... 그저 안타까워서... 악귀라도 되면 널 진짜 떨쳐내고 싶어 하지 않겠냐고, 그런 개씨ㅂ소리를 지껄였여. 미친, 개 같은, 씨발년"

"아줌마..." 

"악귀가 되든 말든 더 끔찍한 무언가가 된다 해도 아일란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만약 내가 살아있었을 때,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 맘을 알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아일란을 포기시킬 수 있었을까?"

최마담의 눈물이 넘쳐흘러 달을 온통 적셨다. 줄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흉측한 모습으로 그 사람 앞에 나타날 자신이 없어, 악귀가 되는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줄리였으니.

그 사람은 악귀가 된 자신을 보면 과연 어떻게 나올까? 여전히 날 사랑할까? 줄리는 궁금해졌다. 

"아줌마, 아일란의 부모는,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했나요?" 

"견딜 수 없어했지. 아이 모습이 흉측해질수록 부모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어. 편히 쉬지 못하는 아이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다며 아일란의 엄마와 아빠는, 자살했어."

"아... 그렇다면..."

"그래... 너도 알겠지만 자살한 혼들에겐 자아가 없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존재가 사라진 존재. 그리고 얼마 후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아일란은 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어. 어딘가에서 엄마 아빠가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면서, 나는 건강한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했지."

이제 정말, 줄리는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다. 처음 모임에 왔을 때, 너무도 천진한 아일란의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졌었는데... 아일란은 그저 자신이 죽은 이유와 부모님과 헤어진 이야기 정도만 꺼내 놓았었다. 모임에선 다들 자기 사연을 숨김없이 털어놓기 때문에 아일란에게 어떤 사연이 더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해보았다. 

나는 백혈병이었고 부모는 가난했다.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치료시기를 놓치고 죽었다. 이 정도가 아일란으로부터 들은 전부였다.

아일란. 아이야.  

줄리는 눅눅해진 달 표면에 앉아 울고 있는 최마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엄마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최마담은 줄리를 부서져라 끌어안으며 애원했다.

"그러니까, 나쁜 맘은 먹지 말아 줘.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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