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만 따뜻한 공기가 뺨을 스쳐간다 저택안 홀 중앙의 커다란 식탁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자기 앞의 음식들을 묵묵이 씹어대고 있다 그정도 인원이 밥을 먹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적막한 분위기이다 고기를 써는 나이프소리와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귓가에 들려올 뿐 서로간의 대화는 일절 없는 비상식적인 풍경이 묘하게 그립게 느껴진다
마침내 식사가 끝이 나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던 그들이 서로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가장 왼쪽에 있던 남자가 의자 팔걸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눕힌채로 한 손엔 도끼를 쥐어들어 빙빙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나 고재봉이라 하오. 내가 이 도끼 하나로 일가족 6명을 신명나게 찍어버렸지. 내가 생각해도 꽤나 멋지게 다져놨던거 같어. 흐흐흐"
자신을 고재봉이라 소개한 남자의 옆에 앉아있던 마르고 초췌해 보이는 한 남자가 바닥에 놓여있던 망치와 절굿공이를 어깨에 걸치며 말을 꺼냈다
"아따 시방 나는 김대두여 15명 정도 죽여버렸당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구먼 거 도끼보다는 망치가 손맛이 죽여불제~ 그렇게 생각안하요?"
그 말에 입술이 비틀며 씨익 웃음짓던 고재봉의 도끼를 쥐고 있던 손의 핏줄이 음푹 솟아오를즘에 깔끔한 순경복을 차려입은 우람한 덩치의 사내가 식탁위에 카빈소총과 수류탄을 올려놓으며 고재봉과 김대두의 사이에 서서 괴소를 터뜨렸다
"으허허허 으허허 이 형씨들 상당히 귀엽게들 노시네들 허허~ 도끼? 망치? 저건 또 뭐야 절굿공이로 떡이라도 한판 치시게? 크허허허 그라고들 사시니까 고거밖에 못 죽이지 않겄소 남자라면 뭘 하던간에 제대로 허야지 응? 나 우범곤 이라고 하는데 내가 마을 하나를 그냥 박살냈소 5~60명정도 죽었을걸? 그리고 손맛? 손맛이고 자시고 박살내는덴 수류탄이 최고지"
"뭐야? 이 젖비린내나는 새끼가 누가 누구보고 귀엽다고? 니가 뒤지고 싶구나"
"워따 시방 떡으로 만들어벌랑게 잠깐 와봐라잉"
의자를 거칠게 밀쳐내고 일어난 재봉과 대두를 노려보던 우범곤은 능숙한 동작으로 카빈에 실탄을 장전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자세를 잡던 그 순간 한 곳에 뭉쳐서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일단의 무리중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접시를 그들에게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 씨발 늙다리 새끼들아 한 판 벌일거면 딴데 나가서 벌이던가 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기가 존나 맘에 들거든? 여기서 우리 지존파의 전설을 다시 만들어 나갈거야 나름 꽤 괜찮은 아지트인거 같다고 여긴 우리가 접수할 거니까 더럽지히 말고 다들 좀 꺼져줘라"
접시가 깨지면서 튀긴 파편에 인상을 찌푸린채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 말쑥한 차림의 성실해 보이는 회사원 느낌의 남자가 소리를 쳤던 무리의 리더를 조용히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네는 뭐하는 새끼들이냐....?"
"크히히.. 우리로 말할거 같으면 이 더러운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뭉친 선구자들이지!! 이름하여 지존파 라고 한다 너네같은 저급한 이유따위로 하는 살인이 아닌 세상정화를 위해 위대한 살인을 행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내가 보기엔 그냥 미친놈들 같은데...."
"아 근데 이 아저씨가 돌았나? 지금 우리한테 시비거는거여? 지금 콱 뒤져버리고 싶냐?"
"해봐.... 쓰레기들...."
회사원차림의 남자는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리고는 한 손에는 칼을 쥐어들고 나를 스쳐지나 무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