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몽증이 의심될 정도로 많은 꿈을 꿉니다. 또 생생하기에는 엄청 생생하구요.
악몽이라고 해도 귀신이 나오지도 않고, 나오더라도 별로 무서워 하는 편도 아니에요. 그렇다보니 예지몽이나 창작소재로 쓰기 좋은 신기한 꿈들, 몇 년 주기로 꾸는 똑같은 꿈들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꿈을 꾸면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몇 달전, 어쩌면 더 오래 전에 꾸었을 꿈 하나는 여전히 지금도 그 촉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꿈에서는 날씨나 분위기보다는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인데, 왠지 그 꿈은 조용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온 사방에서 뿜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옅은 주홍빛이 돌았습니다. 하늘도 어둡다기 보다는 빛바랜 오랜 책같은 흐리멍텅한..느낌이었어요.
어쩐지 저는 외진 곳에 있는 어느 대학 병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건물 안에도 밖의 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듯한 분위기였구요. 대학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카운터에 간호사 언니가 한 분 계셨고, 그 옆엔 약국이랄지, 한의원이랄지, 조금 작은 상점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병원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다 저를 쳐다보고 있더군요. 눈이 다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점 안에 앉아 있던 남자와 간호사 언니, 지나가던 환자 몇 분까지도. 너무도 조용했습니다. 순간 그 분위기에 압도된 저는 어지러움을 느꼈고, 상점 안에 있는 침상에 잠시만 앉아있게 해달라고 남자분께 부탁했습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저를 보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그때 아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느낌에 조금 소름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너무 어지러웠으므로, 그 침상에 누워 이불을 덮고는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침대의 매트리스가 너무 푹신해서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졌죠. 그래도 역시 너무도 조용했고, 그 와중에도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잠이 들려는 그 찰나 무언가 내 눈앞에서 흔들리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떴고, 눈 앞에 창백한 발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순간 흠칫 놀라 위를 보니, 누군가 그 짧은 순간에 천장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한 것입니다. 머리가 긴 여성의 몸이 바로 제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어요. 너무 놀란 저는 비명을 지르며 저를 지켜보던 남자분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알겠노라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는 그 시체를 내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내리시는데, 그 모든 순간에 시선은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한 두 번 정도 또 내 침대위에서 사람이 자살을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덜덜 떨면서 그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이불로 몸을 덮었습니다.
너무 떨려서 몸이 기울기에 손으로 매트리스를 눌러 몸을 지탱했습니다. 순간 매트리스의 느낌이 너무도 이질적이라는 걸 감지했습니다. 분명 앉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 푹신했었는데, 무언가 확실히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튀어오르듯 침대에서 내려와 침대의 커버를 벗겼고, 제가 본 것에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침대를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은 랩에 싸인 시체더미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땐 잠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인 것은 아까 이 방에서 자살한 시체들을 랩에 싸 다른 매트리스안에 넣는 간호사와 그 남자였습니다.
시체를 넣는 와중에도 시선은 절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방에 갇혀 체념한 저는 남자가 앉아있던(침대가 아닌) 의자에 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제 나이의 또래가 이 병원에 들어왔고, 전 그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역시 저처럼 이 방 침대에서 잠시 쉬겠다고 제게 말했고, 저는 왠지 난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이가 자는 동안 목을 매었고, 막히는 숨에 잠이 깨었습니다.
잠에서 깨기 직전에 본 것은 저를 올려다 보며 미친듯이 웃는 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