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병원서 지금까지 15명 감염…정부는 '주의' 단계 고집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유입 13일째인 1일 국내 감염 환자가 18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한 명만 더 추가되면 세계 3위 발생국인 요르단과 같은 규모가 된다.
하지만 정부는 발생 2주가 다 되어가도록 위기경보는 '주의' 단계를 고집하고 있어, 여전히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같은 병동 있던 3명 추가 확진…11명이 '초기 격리'서 빠져이날 오전 새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최초 환자인 A(68)씨와 지난달 15~17일 경기도 평택 ②병원의 같은 병동에 있던 환자 P(40)씨와 R(77·여)씨, 또다른 환자의 아들인 Q(45)씨 등 3명이다.
발열 등 증상을 보여 유전자 검사한 결과 최종 양성으로 확인돼, 모두 음압격리병상으로 이송됐다.
이로써 지금은 자진 휴원해 사실상 폐쇄된 ②병원에선 A씨로부터 15명이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3명 역시 당초 당국의 격리 대상에선 빠져있던 '비격리 확진' 환자들로, A씨를 제외한 17명의 감염자 가운데 무려 11명이 초기 방역 대응에서 방치돼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격리중인 밀접 접촉자는 129명으로, 당국은 이들의 최대 잠복기가 끝나는 3일쯤이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하면서 전날 격리 방침도 바꿨다. 이들 '자가 격리자' 가운데 50살 이상으로 당뇨병 등 기저질환을 가진 40명가량을 외부 별도 시설에 격리,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추정과 가설 근거한 '낙관주의'…당국 '오판'이 화 불러하지만 기존 격리 대상의 '바깥'에서 환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격리 확진 환자들이 짧게는 닷새, 길게는 열흘 넘게 평소 생활반경에서 움직여온 만큼 이제는 '격리 대상'을 좁히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보건당국의 '오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기존 지침과 이론, 가설을 지나치게 고집하면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단 얘기다.
당국은 그동안 "환자 1명당 전염력이 0.69명에 불과하다", "2미터 안쪽에서 한 시간 이상 노출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공기 전파는 아니고 비말 전파로 추정된다", "잠복기일 땐 전염되지 않는 걸로 보고 있다" 식의 가설에 근거해 방역체계를 운용해왔다.
하지만 메르스의 감염 경로나 전파 방식에 대해선 사실 정확히 알려진 게 없고 모두 추정일 뿐이다. 백신이나 치료제마저 없는 실정인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낙관 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다.
대량 전파가 우려되는 감염병 사태인만큼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응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정반대로만 움직였다. 가령 기존 가설이나 예상과 달리 국내에서 '환자 1명당 17명'의 전염력을 보였다면, 바이러스의 변이 가능성도 당연히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느슨한 지침·가설만 '고집'…주요 점검에선 '구멍'그런데도 당국은 기존 가설만을 전제로 초기 격리대상조차 너무 좁게 선정했다. 64명이던 격리 대상자가 두 배로 늘어난 게 그 반증이다.
최초 환자와 같은 병실도 아닌, 같은 병동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감염된 환자가 벌써 10명이다. '공기전파' 가능성을 무조건 배제하는 정부 방침으로는 설명할 길조차 없는 환자도 여럿 있다.
당국은 심지어 최대 감염이 이뤄진 같은 병실에 있던, 문병간 아들의 존재까지 까맣게 몰랐다. 그 아버지와 누나가 모두 감염됐는데도 중요한 관리 대상을 점검조차 안했단 얘기다.
이 아들이 열흘 넘게 직장에 출근하고, 국가방역망을 뚫은 채 홍콩과 중국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정부 당국은 "광범위하게 격리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얘기만 반복해왔다.
정부는 또 "지금까지 3차 감염은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적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방치됐던 환자들이 어디서 누굴 접촉했는지조차 전혀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메르스에 감염됐지만 증상은 없는 일명 '무증상 감염자'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조차 없다. 증상을 보일 때만 확진 여부를 판정하고 있는 건데 "이미 통제 불능 상태"란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까닭이다.
◇위기단계 '경계 격상' 검토 필요한데도 '입막음'만 급급그런데도 정부는 메르스 발생 2주가 지나도록 위기경보는 '주의' 단계를 고집하고 있다. 3차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다. 당국이 좀더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면, '경계' 격상을 검토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는 의견도 많다.
정부 설명과 달리 빠르게 환자가 늘다 보니 국민들의 불안감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포털 카페나 SNS를 통해 환자 발생지역이나 병원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당국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유포자를 색출해 처벌하겠다는 경고만 날리고 있다. 해당 정보들을 공개할 경우 국민적 혼란과 불안만 가중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소위 '유언비어' 가운데는 사실로 확인된 내용들도 많다. 오히려 정보를 너무 숨기는 데 급급하다 보니 아무 문제없는 병원조차 가길 꺼려하게 되고, 그릇된 정보에도 솔깃하게 되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따라서 정말로 국민적 혼란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선 일정 시점에서 적정 수준의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방역 전문가는 "정부 대응이 오히려 불안과 불신만 조장하고 있다는 국민 여론을 되새겨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