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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라 패치 기념 올려보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몽라 꿈 썰
게시물ID : mabinogi_1407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lpida
추천 : 12
조회수 : 107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3/19 21: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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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우 부끄럽지만 올려봅니다.
으엉엌 실친이 제 닉을 알아서 안 까려고 했는데 어차피 일코는 해제되어따!!!!!!
2월 11일에 길드원들이랑 몽라 던전 도는 꿈을 꾸고 그걸 바탕으로 썼던 소설입니다.
베리 길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
 
 


몽환의 라비 던전 탐험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파티는 몇 번이고 던전 끝까지 다녀온 사람들로 꾸려졌고, 우리는 요령을 알았다. 의례적인 역할 분담을 했을 뿐으로,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모두가 처음과는 달랐다.

던전조차, 처음과 달랐다.

<SYSTEM> 약속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눈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수다에 묻혀 곧 사라졌다.



이상을 깨달은 것은 던전의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방에서였다. 프리페 님이 행동 불능 상태에 빠졌고, 던전에서 나가기 위한 명령어를 입력했다.

<SYSTEM> 유효하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저……. 로그아웃이 안 되는데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는 몹을 잡느라 자세한 상황을 묻지 못했다. 여신상 역할을 하던 나만 어울려서 왜 로그아웃이 안 되는지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곧 방문이 열렸다. 피닉스의 깃털을 사용했고, 효과음이 들렸고, 모션도 훌륭했고, 인벤토리에서 피닉스의 깃털이 하나 차감됐다. 그리고 프리페 님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프리페 님, 깃 좀 다시 띄워보세요."

깃털 한 뭉치를 다 쓸 때까지도 프리페 님은 부활하지 못했다. 버그인가? 얼마 전에 버그 패치를 했으면서도 여전히 문제 덩어리였다. 프리페 님의 시체 주변에서 빙빙 돌다가, 결국 셋이서 던전을 진행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프리페 님은 스크린 샷을 첨부해서 리포트를 작성하겠다고 한 뒤 잠시 말이 없었다.

좀 더 진행할 동안 다행히 소호 님도 우연마마도 죽지 않았다.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팬텀은 평소보다 자주 포효했고, 그 시끄럽던 속성 서큐버스들은 단 한 번도 대화창을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말해도 되나? 그냥 내 기우 아닌가? 두 분이서 열심히 싸우고 계신데 별 거 아닌 내 감을 떠들어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사이에 파티 채팅창에 프리페 님의 말이 떠올랐다.

프리페 : 좀 이상해요
프리페 : 시스템 메시지 보이세요?
프리페 : 나만 보이나
프리페 : 자꾸 서큐버스 퀸이 슬퍼한다는데
프리페 : 시스템 탭으로 돌려보세요
프리페 : 이거... 약간... 음
프리페 : 소름돋...는데...

나는 로그창을 띄워 시스템 탭을 클릭했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는 팬텀의 파이어볼을 피하는 중이었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슬퍼합니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비탄에 빠집니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슬퍼합니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흐느낍니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초의 불을 끄기 시작합니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슬퍼합니다.

비슷한 메시지가 위로 쭉 나열되고 있었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도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신 듯 했다. 일단 방을 클리어하고 다시 얘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났다. 시스템 메시지 로그를 계속해서 올리다가 발견했다. 제일 처음 이 던전을 생성했을 때 떠올랐을 메시지.

<SYSTEM> 약속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약속의 던전? 이거 몽라 아니에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터졌다. 손가락 사이가 찌릿, 저렸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는 약속의 던전이 뭐냐고 물을 뿐이었다. 히든 스테이지인가. 애초에 난이도 최상위 던전이라고 만들어놓고는 유저 때려잡기 식의 몹을 풀어놓은 던전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원래 이 던전에 입장할 때 뜨는 메시지였나. 왜 여태 몰랐지? 로그를 전체 채팅창으로 돌려놓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SYSTEM> 서큐버스 퀸이 당신을 던전의 침입자로 규정합니다.

"우리야 원래 침입자잖아. 뭘 새삼."

소호 님이 말했고, 우리는 동조했다. 심각하게 생각할 만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프리페 님이 파티 창으로 다시 빠르게 말을 올렸다.

프리페 : 이상한 거 떴어요
프리페 : 위에 아이콘
프리페 : 눈 모양
프리페 : 저는 지금 죽어서 클릭이 안 돼요
프리페 : 아 느낌 진짜 이상하다
프리페 : 이거 몽라 맞나

목 뒤부터 정수리까지 열이 확 찼다. 찬 물을 맞은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알던 던전 맞나. 언제부터였는지, 프리페 님이 말한 눈 모양 아이콘이 그림자 미션을 수행할 때의 EXIT 버튼 자리에 떠 있었다. 클릭하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서큐버스 퀸은 자신의 아이들과 던전의 수호자를 학살하는 방문자를 수없이 용서했고, 방문자는 그에 답해 그녀의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서큐버스 퀸은 그 많은 용서와 약속을 계속해서 배반하는 당신을 더 이상 용서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아이들을 방치하지 않고 본인이 침입자를 처단하고자 합니다.


서큐버스 퀸의 영향력이 미치는 던전 안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영웅이라 할지라도 부활할 수 없습니다.
상처 회복 속도가 감소합니다.
생명력 회복 속도가 감소합니다.
마나 회복 속도가 감소합니다.
스태미나 회복 속도가 감소합니다.
포션의 회복 효과가 감소합니다.


서큐버스 퀸이 움직이며 촛불을 끄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행동에 제약이 따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이동속도가 감소합니다.
어둠에 대한 공포로 몸이 위축되어 공격력이 감소합니다.
공격이 빗나갈 수 있습니다.
-

침묵이 흘렀다. 처음 던전이 열렸을 때의 부활 금지, 속성 서큐버스의 노 쿨 인스턴트 캐스팅, 베이비 서큐버스의 노 쿨 슈팅러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패널티였다. 이게 뭐지.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프리페 님만이 뭐냐고 내용을 궁금해 했다. 내가 더듬더듬 파티창에 패널티 사항을 옮겨 적어 상황을 알리는 동안, 소호 님과 우연마마는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죽으면 부활이 아예 안 된다고? 아까 그래서 프리페 님 못 살린 건가봐요."
"안 그래도 포중인데 회복도 힘들면……. 맞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밖에서 하이드라 깔까요?"
"근데 몸 사리자고 천천히 싸우면 나중에 더 힘들어져요."
"그것도 그렇네. 아 진짜, 이거 깨라고 만든 건가."

긴장감에 손끝이 파래졌다. 손을 몇 번 주무르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봐야 던전이야. 어쨌든 게임 컨텐츠인데 못 깨면 던전 실패인 거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 프리페 님이 재차 로그아웃 시도를 했다.

"일단 방법이 딱히 없으니 진행하죠."

소호님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여기서 미적거려봐야 좋은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촛불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니 그게 맞는 말이었다.

"죽으면 어차피 못 살리니까 여신상 역할은 필요 없……죠? 저도 같이 싸울까요?"

내가 합세한다고 전력에 큰 차이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무서웠다. 그냥. 내가 죽어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더라도 방 밖에 혼자 있기가 싫었다. 던전 공기가 묘하게 끈적거렸다. 지하 던전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프리페 : 로그아웃 시도하면
프리페 : 사념파가 떠요

사념파? 무슨 사념파? 내가 파티창으로 물어봐도 프리페 님은 묵묵부답이었다.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1층의 방은 이제 여섯개 정도가 남아 있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베이비 서큐버스의 총에 아무리 맞아도 내가 죽지를 않았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는 피가 닳을 때마다 꾸역꾸역 포션을 마셨다. 목이 따끔거렸다. 파이어볼트를 차지해 팬텀에게 날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의 머리 위로 대미지가 떠올랐다. 꽤 높은 숫자들. ……내 머리위로 떠오르는 숫자는 1뿐이다.

"소호 님, 우연마마. 이상해요."
"맞아요, 여기 원래 이상해요."

소호 님이 슈팅러시로 몹 사이를 빠져나오면서 말했다. 우연마마는 계속해서 따라 붙는 베이비 서큐버스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제가 안 죽어요."
"안 죽으면 좋은 거죠. 컨트롤이 좋아졌나?"
"대미지가 1만 떠요."

소호 님과 우연마마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마침 팬텀이 날린 파이어볼이 내 위로 떨어졌다. 옆에 서 있던 소호 님이 멀리 튕겨져 나갔다. 파티원 창에 표시되는 소호 님의 생명력이 주르륵 깎였다. 내 생명력은 699/710. 우연마마가 다급하게 외쳤다.

"일단 라체 님이 몸빵 좀 해주세요!"

그래. 이상한 건 이상한 거고. 안 죽으면 좋은 거다. 장비를 총으로 바꿔 끼었다. 팬텀의 투명한 보라빛 몸체 너머로 베이비 서큐버스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베이비 서큐버스가 정말로 '베이비'로 보였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내가 쏘아내는 대미지는 형편없었지만, 일단 내가 어그로를 끌고 나면 소호 님과 우연마마가 편하게 몹을 잡았다. 프리페 님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몹이 하나 죽을 때마다 서큐버스 퀸이 슬퍼한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분명 잘 진행되고 있는데. 팔뚝을 문질렀다. 익숙하지 않은 옷의 감촉. 우리는 1층의 마지막 방 앞에 다다랐다.

"여기서 잠깐 정비하고 가요."
"그래요. 생각보다 빨리 깨기도 했고 아래 층부터는 어두운 방이 많을 테니까 풀피로 가고 싶어요."

완전 회복 포션을 먹어도 이름답지 않게 생명력은 80%밖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포션 중독은 그대로 걸리고, 스탯도 평소와 같이 깎이니 응급치료와 힐링으로 회복하는 게 나았다. 잠깐 쉬는 틈을 타 파티 채팅 로그를 띄워도, 여전히 프리페 님은 대답이 없다.

프리페 : 로그아웃 시도하면
프리페 : 사념파가 떠요
라체베르타 : 사념파?
라체베르타 : 중요한 내용이에요?
라체베르타 : 프리페 님?
라체베르타 : 어디 가셨나

정비를 마치고 마지막 방에 입장했다. 화로의 불을 끄자 몹이 등장했다. 소호 님과 우연마마를 등 뒤에 세우고 총을 장전했다. 철컥, 하는 소리에 몹의 시선이 집중됐다. 안 죽는 걸 알면서도 긴장이 됐다. 입이 바짝 말랐다. 서큐버스가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사냥이 시작됐다.

어느 순간엔가, 배경음이 바뀌었다.

언제 바뀐 거지. 번개 치는 효과음와 어우러져 웅장하던 배경음은 어디로 가고, 잔잔한 피아노 곡이 흘렀다. 베이비 서큐버스가 일제히 대화창을 띄웠다.

'엄마.'
'기다렸어요.'
'보고 싶었어요.'
'여왕님.'
'엄마.'

여태까지 조용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손이 너무 차가웠다.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우연마마와 소호 님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잘 싸우고 계셨다. 괜찮아. 버그겠지. 이렇게 긴장해서는 될 것도 안 된다. 우연마마에게 다가가는 팬텀에게 총을 갈겼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름이 돋았다.

"문 열리는 소리 안 났어요?"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미처 다른 대화를 이어갈 틈도 없이, 발견했다.

아직 방 안의 몹을 다 잡지도 않았는데,
열려버린
마지막 방의 문을.




우연마마도, 소호 님도, 나도, 팔을 늘어뜨렸다.

사뿐사뿐 가볍게 내딛는 발걸음은 느린 듯 빨랐다. 위기감이 폭발하는 이런 순간마저 감탄하게 만드는 미모. 서큐버스 퀸의 뒤로 네 마리의 베이비 서큐버스, 서른두 마리의 팬텀, 두 마리의 네크로맨서 스켈레톤이 따랐다. 그리고.

"프리페 님……?"

초점이 없는 눈으로 퀸의 왼편에 둥둥 떠 있는 프리페 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큐버스 퀸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소호 님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우연마마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빠르게 온다고 했는데 벌써 1층에는 이 아이들밖에 남지 않은 거군요……."

퀸의 목소리는 흐렸고 매우 작았지만, 그럼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소호 님이었다. 순식간에 무기를 브류나크로 바꿔 장착하고 서큐버스 퀸에게 돌진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깼다. 일단, 일단 프리페 님을 데려오자.

공중에 떠 있는 프리페 님을 끌어내리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닿지 않았다. 내 손은 프리페 님의 발목 언저리를 계속 통과하기만 했다. 내 손이, 투명했다. 어느 샌가 하이드가 씌워져 있었다. F1을 연타해도 하이드가 풀리지 않아 확인하니 하이드 단축키가 사라져 있었다. 액션 창에도, 하이드가 없다.

"제게,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오르골이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 우연마마가 갑자기 푹 쓰러졌다.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참고 우연마마에게 달려가는데, 우연마마가 스스로 비척비척 일어섰다.

"괜찮으세요? 우연마마! 왜 그러셔요?!"

우연마마는 답 없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흐리멍텅했다. 초점도 맞지 않고. 주변의 사물을 비추지도 않았다. 우연마마가 발을 질질 끌며 서큐버스 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워서 우연마마 앞을 가로막아도 보고, 소리도 쳐보았지만 소용이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망할 하이드, 빌어먹을 하이드. 손이 덜덜 떨렸다.

"소호 님! 소호 님! 우연마마가 이상해요!"
"여기서 안 이상한 게 어딨어요……! 라체 님 빨리 다른 애들 어그로 좀!"

내가 우연마마에게 신경쓰는 동안 소호 님은 혼자 고군분투하고 계셨다. 내가, 뭐라도, 어떻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하이드가 풀리지 않았다. 팬텀이 포효를 해도, 범위기 공격에 몸을 던져도 모든 게 다 통과하기만 했다. 소호 님은 팬텀에게 둘러싸여 퀸에게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고, 우연마마는 퀸의 지척에 다다랐다.

퀸이, 잘했다는 듯 우연마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것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는 나한테 짜증이 일었다. 우연마마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계단이라도 놓인 듯 차근히 밟고 올라가 프리페 님의 옆에 섰다. 서큐버스 퀸이 소호 님을 돌아보았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린 양, 소호 님 주변의 몹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그 짧은 사이에 소호 님은 엉망이 됐다. 피가. ……피? 이거 마비노기잖아. 근데 피? 게임 아냐?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서큐버스 퀸이 손짓했고, 방 안의 촛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소호 님이 다급하게 퀸에게 접근했지만 공격이 성공하진 못했다. 초를 살려야 해. 나는 아직 불이 남아 있는 촛대를 감싸 안았다. 눈물 범벅인 얼굴로 퀸이 웃었다.

"살아 있다면, 다시 올 거잖아요. 우리는 그냥 여기에 있었을 뿐인데."

퀸이 분홍빛 구체를 여러 개 소환했다. 소호 님은 입술을 짓씹으며 뒤로 물러났다. 구체는 평소 사방으로 뻗치던 것과 달리, 소호 님만을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초는 계속해서 꺼지고 있었고, 방은 점점 어두워졌다. 소호 님이 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늦어졌다. 하이드를 쓴 내 몸 안에서 초가 희미하게 빛났다. 제발 꺼지지 마. 너만이라도 꺼지지 마. 처음 한두 개는 잘 피하던 소호 님도 결국엔 구체를 맞고 나뒹굴었다.

묵직한 소리가 들리고, 소호 님의 입가로 피가 흘렀다. 옷의 팔뚝 부분이 타서 없어지고, 그 밑의 피부도 보호받지 못해 물집이 차올랐다.

"도대체 뭐야……."

소호 님의 목소리가 희미했다. 베이비 서큐버스는 퀸의 뒤에 붙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퀸은 아이를 달래려는 듯 소호 님을 향해 다시 구체를 날렸다. 소호 님은 거의 바닥에 구르다시피 해 공격을 피하고, 이제는 윤곽만 어렴풋이 보이는 퀸에게 달려들었다. 퀸이 두어 대 맞자 베이비 서큐버스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호 님을 내팽개쳤다. 그 위로 팬텀이 파이어볼을 날렸다. 소호 님은 파이어볼을 정통으로 맞진 않았지만 폭발의 여파에 휘말렸다.

연기가 가라 앉았을 때, 소호 님은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뭔가 뚝뚝 타고 흘러내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초는 이제 내가 품은 것만 꺼지지 않고 남았다. 서큐버스 퀸이 다시 구체를 소환하자 소호 님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 반쪽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도대체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로그아웃.

로그아웃을 하자. 지금은 버그 때문에 하이드가 안 풀리니까.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같이 공격할 수 있을 거였다. 왠지 모르지만 난 대미지도 거의 안 받으니까 소호 님 대신 내가 공격 받고. 지금까지처럼. 나는 떨리는 손으로 로그아웃 명령어를 입력했다. 오타가 여러 번 나서 수정하기가 힘들었다.

<SYSTEM> 유효하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사념파가 떴다.

서큐버스 퀸의 증오가 목을 휘감았다.

서큐버스 퀸이 칭찬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그녀의 옆에, 목을 멘 우연마마와 프리페 님이 보였다. 그리고. 내 몫의 밧줄도.

옆으로 기우는 시야 한 켠, 소호 님이 퀸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것이 잡혔다. 다리가 반대로 접혀 있다.

마지막 촛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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