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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 자신이 너무 역겹고 혐오스럽습니다.
게시물ID : gomin_16066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ALDRIX
추천 : 0
조회수 : 45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3/20 20:29:03
현역병사로 복무중인 23살 군인입니다.
제 꿈은 성우입니다.
평생 하고싶은게 뭔지 모르다가 남들 다 공부에 열중할 고3 막바지에 겨우 찾은 꿈이었습니다.
성우관련 학과가 있는 교육기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반대로 욕만 먹고 문과인 제가 공대에 갔습니다.
당연히 적응을 못해서 학사경고를 받았고 입대를 핑계로 휴학했습니다.
철없는 저는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부모님 몰래 계속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연습은 거의 의미가 없었고 설상가상 같이 꿈을 키워가던 지망생 모임은 몇달 못가서 해체되었습니다.
늘지않는 실력, 부모님께 숨겨야한다는 죄책감외에도 스트레스때문인지 천성인지 몸무게는 100kg에 육박할만큼 불어났고
글을 읽을 때 숨을 헐떡이고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고 녹음만 하는 제 자신이 너무 쓰레기같고 표현할 수 없을만큼 역겨웠습니다.
그러던 중 결국 입대날짜는 한달앞까지 다가왔을 때, 즐겨하던 N사 C모 게임에서 캐릭터 보이스 오디션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차피 입대할거 후회없이 한번 질러보자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아마 우연이거나 운이었거나 전산오류였겠지만 1500명중 150명이 본선에 갔는데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본선에서는 탈락했습니다만 쓸데없이 희망을 조금 맛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7개월이 지났습니다.
전역이 8개월 남아서 전역 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우라는 직업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직업입니다.
경쟁률은 수백 : 1.
하지만 합격해도 2년간은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월급, 그 이후에도 프리랜서로서 불확실한 미래만이 남는 직업입니다.
스타성우가 아니면 중소기업 초봉만도 못한 연봉을 벌기 쉽상이죠.
사실 저하나 먹고사는건 상관없습니다.
단칸방에서 전기장판깔고 하루 컵라면 세개먹으면서 지내도 괜찮아요.
근데 세상을 저혼자 사는게 아니잖아요...?
부모님이 가족친지들 얼굴은 어떻게 볼 것이며 부모님 부양은? 
후자는 다소 먼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시선도, 금전적으로도 상당히 힘들겁니다.

근데
포기가 안됩니다.
아무리 머리로 '이걸 할 이유가 없다' '인생 최악의 선택이 될거다' '해보나마나 안된다' '시간날린거 평생후회할텐데'
이런 생각을 해도 
지나가는 말로라도 누군가 '너 목소리 좀 좋다' 같은 얘기를 하면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고 TV나 인터넷에서 성우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집중하게되고
더빙된 영상을 보면 '난 저 역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듭니다.
종이에 글이 적혀 있으면 '아 대본읽기하기에 좋겠다'같은 생각을 합니다.
사지방(군대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 오면 가장 먼저 새로 올라온 단문이나 대본은 없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녹음했는지 찾아봅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입대 직전에 그런 오디션을 보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역까지 앞으로 8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대다수는 남는 시간에 필사적으로 영어라든가 전공과목 공부를 합니다.
2년간 뒤쳐진 공부를 어떻게든 따라잡고 싶은거죠.
근데 전 쓰레기가 널려있는 창고같은 방에서 혼자 녹음하기 바쁩니다.
이런글을 쓴다는 것 자체부터가 포기가 안된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철없는 제자신이 역겹습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80kg까지 감량했지만 운동자체를 호흡량을 위해 한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운동할때도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턱끝까지 올라옵니다.
하루 5~6잔씩 따뜻한 물을 마실때도, 목에 땀띠가 나도 잘 때 꼭 목에 뭔가를 두르고 잘 때도, 일을 제외한 다른 모든걸 할때
전부 꿈때문에 한다는걸 속으로는 알고있기때문에 포기를 못하는 저 자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역겹고 혐오스럽고 이런 글을 적는 것 자체도 손끝이 떨릴만큼 욕지기가 치밀어 오릅니다.
언제쯤 철부지가 아닐 수 있을까요.
언제쯤 포기할 수 있을까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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