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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 이후의 이야기(2)
게시물ID : history_257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침
추천 : 10
조회수 : 11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20 2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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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전에 장황후와 이보국이 깽판치는 이야기까지 적었습니다. 잠시 숙종의 가족관계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아들이자 황태자인 이예李豫는 장황후의 친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예의 어머니는 오씨吳氏였는데, 아버지가 어떤 일에 연류되어 관직을 잃어서 어려서부터 궁중생활을 했다고 사서에 적혀있네요. 남편 이형과 만났을 때 그녀는 열여덟. 총애를 얻어 다음 해에 이예를 낳았다 합니다. 안타깝게도 박복했는지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예로서는 10대시절에 어머니를 잃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예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효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안사의 난 때는 아버지를 도우며 공을 세우기도 했었고요.


<당 대종 이예>


장황후는 숙종 사이에서 753년에 아들을 낳고 이소李佋라 이름붙였습니다. 장황후는 개념이 없었는지 제 아들을 황태자로 세워야 한다고 숙종을 다그칩니다. 하지만 숙종은 이를 거부합니다. 이 이소라는 아이는 일곱살에 죽었으나 그 후에도 장황후는 이예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를 바득바득 갈았습니다. 게다가 이보국도 점점 자신을 경계하는것 같아 똥줄이 타던 장황후는 결국 맛이 가버려 지 아들도 아닌 손궁인 소생의 아들 월왕 이계李係를 후계자로 세우려다 발각되어, 이보국이 금군을 거느리고 장황후와 연류된 인물들을 모두 체포해버립니다. 혼비백산한 장황후는 숙종의 침궁으로 몸을 피하였으나 금군들은 그곳까지 쳐들어와 장황후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궁중에 유폐시켜버리자 숙종은 쇼크로 얼마살지못하고 죽습니다. 



사실 장황후와 이보국이 처음에는 쿵짝이 잘맞았습니다. 그러나 숙종이 병에 걸려 오락가락하니 황제가 죽은 뒤 권력을 자기가 독식하고 싶었던 둘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움직인 측은 장황후였습니다. 장황후는 그렇게 싫어하던 이예에게 들러붙어 이보국을 죽여버리자고 꼬드겼으나 이예가 겁이 많았던지 말을 다 듣고 울어버립니다(?). 이예에게 걸었던 희망이 사라지자 차선책으로 이계를 찾아갔고, 황제자리에 앉혀준다는 황후의 말에 넘어간 이계는 이에 승낙해버리지요. 이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결국 장황후의 계략은 이보국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황제가 죽은 후 자신도 같은 해에 살해당합니다. 이때가 762년.


(이보국 개객끼)


이예는 이보국에 의해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예를 대종代宗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대종은 (사실 따지고보면 자기가 황태자니까 이보국이 없어도 황제자리에 올랐겠지만) 어쨌거나 '이보국 덕분에' 황제가 된 것이니 이보국을 극진히 대접해주어야만 했습니다. 이보국은 대종이 황제가 된 해에 곧바로 재상자리에 앉았고, 식읍 800호를 받습니다. 이보국은 또한 대종에게 공공연히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폐하는 앉아 쉬십시오. 모든 일은 이 노비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놈을 어느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다만 대종은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때를 기다릴 따름이었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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