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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단편)제국의 아이들
게시물ID : readers_244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맘대로리뷰어
추천 : 1
조회수 : 4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3/22 03: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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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당신에게 이 아이를 맡기겠어요. 부디 훌륭하게 길러주십시오.>

열 살짜리 여자아이는 처음 보는 나에게도 방긋 웃어주었다.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나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빠, 안녕하세요?>

아이가 나에게 첫인사를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이에게 공부시간과 노는 시간을 적절히 분배해서 시간표를 짜주었다. 아이가 시간표를 따라 공부하고 놀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나도 같이 미소가 지어졌고 아이가 실수를 할 때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아이의 모습은 무엇을 하고 있든, 잘하든 못하든, 언제까지나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점차 자랄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나에게 감동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순간순간이 꿈결 같이 흘렀다.

아이의 독립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친구는 독립한 자신의 아이들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아름답고 우아하며 사회적인 명성과 명예, , 권력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굳이 누구와 비교 할 것도 없이 완벽했다. 처음으로 내가 키우는 딸 아이가 부끄러워 졌다. 아니 부끄러운 것은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자신이었다. 모든 게 부족한 내 탓이었다. 내 아이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었고 그것을 꽃피우게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사랑스러운 내 딸 아이를 남부럽지 않은 최고의 아이로 키우기로 말이다.

나는 이 아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지며 다른 사람들이 올린 아이 키우는 법이 적혀 있는 블로그, 카페, 사이트 등을 찾아다녔다. 수많은 아이 키우기 방법이 널려 있었다. 아이가 자라서 될 수 있는 직업은 무궁무진했다. 농부, 상인, 학자, 기사, 성직자, 아내 등등…… 하지만 나의 아이는 최고가 아니면 안 되었다. 저런 평범한 직업들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정보를 모아 통합하고 최고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 키우는 아이는 최고의 아이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선택받은 아이는 처음부터 달라야만 했다. 아이를 입양 받은 날 아이와 나누었던 몇 가지 대화, 아이의 이름, 아이의 생일, 모든 게 잘못되었다. 그런 식으로는 최고의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의 첫 아이었다. 아이는 최고가 되지 못한 자신을 보며 날 원망하지는 않을까? 되돌릴 수 있을 때 되돌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이전의 아이는 사라지고 나에게 새로운 아이가 입양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세심하게 아이를 다루었다. 나는 딸에게 아주 품위 있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머릿속에는 이 아이를 이제부터 어떻게 길러야 할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

1년 차는 기초지식부터 쌓아야 한다. 문학으로 지식을 높이고 무예를 닦아 체력을 올렸다. 그리고 주말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인맥을 쌓게 했다. 2년 차는 예절, 무용 등을 배우며 기품을 갈고 닦았다. 양심과 도덕성, 체력 등에도 신경 쓰며 매년 한번 이상 휴가를 통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감수성을 올려주었다. 또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신이 쓰는 돈은 자신이 벌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가 짜놓은 시간표는 전혀 빈틈이 없었고 이대로만 따라온다면 내 딸은 정말 최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딸아이는 점점 나의 뜻을 거스르는 아이가 되어갔다. 학업성취도는 매우 떨어졌고 매년 있는 대회에서는 단 한번도 1등을 하지 못했다. 적절한 휴식시간을 분배했는데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는 낮아지질 않았고 매일 아프다고 누워있으면서 꾀병을 부리기만 하였다. 그간 힘들게 가르쳐 놓았던 지식과 예술성, 도덕심은 하염없이 내려가기만 했다. 나는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었다. 내 딸로 인정할 수도 없었다.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다시 새로운 아이를 입양했다. 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나는 전에 키웠던 아이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다시 한번 완벽한 시간표를 짜놓았다. 더 이상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공부하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내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과정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능력치로 반영되고 나는 성적표만 확인하면 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럭저럭 내 뜻을 잘 따라 주는 아이였다. 아이의 능력치는 내가 생각하던 것에 거의 근접했고 이제 슬슬 마지막에 가까워져 갈 무렵, 무언가 이상했다.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몇 날이고 궁전 앞에서 왕자를 기다렸지만 왕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놈의 인맥이 문제다. 궁전 앞을 지키는 병사부터해서 그 위에 대장, 대신, 왕까지. 아무리 내 딸이 잘나고 능력이 뛰어나도 혈연, 지연, 학연, 이런 게 없으면 절대 최고가 될 수 없었다. 남부럽지 않게 키운 내 자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 나부랭이가 만나 주지 않다니. 너무나 분했다. 내 딸을 만나주지 않는 왕자에게도 화가 났고 왕자와 인맥을 쌓아놓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기껏 열심히 올렸던 능력치도 아무 쓸모없어졌다. 내 딸은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성급하게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신중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꼼꼼하게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금까지 읽어왔던 모든 방법을 차분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아이가 입양되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모든 만남, 능력치, 학습활동, 모두 완벽했다. 이제 내 딸은 최고가 되어 내 품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고마워요. 아버지 절 이렇게 길러주셔서.>

내 딸은 고귀하면서도 아름답게 자랐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전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거에요.>

정말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지겨웠다.

<아버지에게 저도 보답하고 싶어요.>

어라? 뭔가 이상한데?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내 딸은 아름답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버지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가 버려진 언니들의 인생과 또 나를 위한 복수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너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나의 말은 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저를 위해서라고 하지 마세요. 전 그저 아버지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였으니까. 제가 살아온 시간들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었어요, 전부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었지. 공부, 놀이, 휴식, 어떤 친구와 만날지,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까지 저의 모든 일과는 모두 아버지의 뜻대로였어요. 이제 아버지의 뜻대로 전 최고가 되었으니 마지막은 제 뜻대로 하겠어요. 그럼 안녕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딸은 나에게 반항을 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던 딸아이는 가장 아래로 추락하였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금까지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 End.>

철호가 망연자실 The End라는 글자를 보고 있을 때 밑에서 어머니가 부르셨다.

철호야, 4시다. 영어학원가야지.”

철호는 왈칵 짜증이 일었다. 게임도 이상하게 끝이 난데다가 또 학원에 가야 한다는 소리가 지긋지긋했다. 자연히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다.

알았어요.”

대충 정리를 하고 방을 나오니 어머니가 주스를 한잔 건네주셨다.

오늘 530분부터 과외 있는 거 알지? 학원갔다가 바로 와야 한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신발을 꾸겨 신었다.

아들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파이팅!”

쾅하고 문 닫는 소리가 철호의 대답을 대신했다. 어머니는 빈 잔을 들고 갔다.

요즘 철호가 도덕심도 떨어지고 불량하단 말이야. 얼마 전에는 나 몰래 학원에 빠지고 이번 학기 성적도 별로였지. 아무래도 이번 아이도 성공하기는 글렀군. 다시 키워봐야겠어.”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출처 2011년 쯤? 가수이름으로 제목을 짓고 싶어서 썼던 글.

누구라도 알 것 같은 그 게임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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