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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스압) 피부염 고쳐가고 있는 이야기
게시물ID : beauty_592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비향
추천 : 8
조회수 : 118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03/24 13: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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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지금 생각해보면
제 몸 여기저기가 망가지기 시작했던 건 2년 전부터 였던 것 같네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루종일 앉아있고 햇볕 쬘 시간은 없으며,
먹는 음식들은 부실하고(칼로리는 부실하지 않지만ㅋㅋㅋ) 집에 와서도 늘 누워있었던 생활이 반복됐죠.
 
 
늘 머리가 아팠고 피곤했고 눈과 얼굴에서 열이 났고
소화가 안되고 화장실도 잘 못가고
잠 자려고 누웠을 때 항상 발이 너무 시려웠던 게 생각나네요.
당연히 깊이 자지 못하고 자고 나면 더 피곤했던 것 같고요.
 
 
하지만 놀랍게도 피부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물론 뭘 발라도 늘 뭔가 2% 부족하고 파운데이션은 종류에 상관없이 다 떴지만
어쨌든 그렇게 심각한 피부는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게 가끔 뾰루지도 나고 기미도 나는 보통의 얼굴이었죠.
일찍부터 습윤밴드로 관리도 하고 그래서 흉터가 생기진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1년 전부터는 점점 더 피부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냥 만지기에도 거칠거칠하다는 게 느껴졌는데
전 그게 화이트헤드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닦토도 살살 하고 맨들맨들해진 콧등을 좋아하기도 했죠.
보습제를 충분히 발라주라고 해서 두껍게 올렸다가 다음 날 미끄러지는 느낌을 즐기기도 하고ㅋㅋㅋ
거칠지만 그래도 심하지 않으니까 열심히 관리한다고 했는데
 
그게 피부의 마지막 발악이었다는 걸 몰랐던 거죠.
 
 
작년 겨울무렵부터 서서히 볼에 홍조 비슷한 게 나타나더라구요.
마침 겨울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던 때라 그냥 홍조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생활은 똑같이 돌아갔죠.
어느 날은 눈에 띄게 빨개져서 사람들이 "ㅇㅇ씨도 촌년병 있었구나ㅎㅎㅎㅎ"언급하기도 했어요.
그 때부터 바깥 찬 공기에 있다가 아주 조금, 바람이 조금이라도 덜 부는 실내에 들어가면 얼굴이 불타는 것 같았어요.
색깔 말고도 제 스스로 열감이 너무 심하더라구요.
 
부채질을 1초도 쉼 없이 거세게 해야만 조금 참을 만하고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새빨간..)
일단 한번 열이 나면 물을 마셔도, 다시 시원한 곳에 가도 가라앉힐 수 없었어요.
참을 수 없어서 메이크업한 얼굴에 미스트나 물을 계속 뿌리기도 하고
봉지에 찬물을 담아서 얼굴에 올려놓고... 화장이 망가지든 말든 제 모습이 추하든 말든 신경도 안 써지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저보고 '20대에 갱년기냐'며..ㅎㅎㅎ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당장 피부과에 갔어야 하는데
그 때는 매일 피부과 '전문의'만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뭐 믿을 수가 있어야지'만 반복하고 있었죠.
사실 무의식적으로도 '이건 피부에 뭘 발라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몸의 문제다, 피부과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
 
 
그렇게 더 자주 열이 오르게 되었고,
피부과에 가기로 결정했었던 1주일 전에는 그냥 항상 얼굴이 빨갰어요.
땀띠나 열꽃처럼 양 볼 전체에 줄지어서 빨간 좁쌀 같은 게 생겼구요.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열이 확 오르면서 따가웠어요.
더 이상 안되겠다, 하고 가장 가까운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갔죠.
(http://www.akd.or.kr/ 여기서 찾았어요.)
 
 
막상 가서 원장님을 만나보니까 하시는 말씀이 너무 평범하고, 또 짧았어요.
들어가서 앉자마자 딱 1분.
"자, ㅇㅇㅇ씨? 염증이 있네요, 그렇죠? 얼마나 됐어요? 그렇게 오래 놔두면 안 되는 거지. 감기 걸리면 바로 병원 갈 거면서. 주사는 안 놓을 거고 연고랑 약 처방해줄게요. 매운 거, 뜨거운 거 먹지 말고 사우나 찜질방 가지 말고, 술, 카페(fㅔ)인 하지 말고, 보습제 수시로 바르고? 연고는 이틀 바르고 하루 쉬고. 약은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번 먹고. 그렇게 합시다? 일단 그렇게 하고 (4일 뒤)월요일날 다시 봅시다. 알겠죠?"
 
느리고 리드미컬하고 높낮이가 있는 게 레미제라블 보는 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떨떨하게 돌아나와서 8천원 결제하고 처방전 받고 보습제 받고 정신차려보니 병원 문 밖이었습니다.ㅋㅋ
약국에서 3천원 결제하고 나오니 손에 베*드크림이라는 스테로이드 연고 5g과 알러지약,위장운동촉진제 4일 치가 있었고요.
 
 
그 땐 뭔가 '속았다!'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날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평소에 나름 나쁘다는 음식 최대한 안 먹고 집밥 먹으려고 하는데 음식조절로 된다는 거야 뭐야 이런 느낌. 
 
게다가 스테로이드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있어서
스테로이드 원리, 스테로이드 부작용, 베*드크림 부작용을 폭풍검색하고
접촉성과 지루성 피부염의 차이(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전 둘다?), 극복수기가 적힌 카페와 블로그 또 폭풍검색하고 좌절하고
지루성인 거 같은데 난치병이래 내 인생은 망했구나 되뇌고 아무튼 난리였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최소로 세안하고
물이 닿는 것도 부담스러운 따갑고 뜨거운 볼에 정말 개미눈물 만큼만 펴발랐습니다.
근데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또 수분이 있을 때 바르면 흡수가 빠르군 하고 물 떨어지는 얼굴에 바로 펴발랐네요ㅋㅋㅋㅋㅋㅋ이 모순된 심리ㅋㅋ
 
 
그 날이 1주 전 목요일이었어요. (이 날부터 오늘까지 고춧가루 한 톨도 먹지 않았어요! 파, 양파도..)
그렇게 하루 저녁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뭔가 좋아진 느낌적인 느낌이 들길래 "아 진작 피부과 갈걸!" 하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또 아침에 물로 세안을 하고 스테로이드를 펴바르고 보습제를 수시로 계속 덧바르는데 열이 계속 오르더라구요.
여전히 따갑고 빨갛구요.
열이 오를 때마다 그냥 계속 보습제를 덧발랐어요. 바르고 또 바르고 바르고 또 바르고..
바를 때마다 진정되는 것 같긴 했는데 또 금방 열이 오르더라구요.
저녁이 되어서 스테로이드를 또 바르게 됐을 땐 엄청 따갑더군요. 겁이 날 만큼..
 
 
그렇게 토요일 아침에 딱 일어났는데
세상에, 제가 봤던 제 얼굴 중에서 가장 시뻘건 거예요. 지금까지도 정말 심했는데!
정말 경계선이 딱 지어져 있었죠. 꼭 2D 캐릭터 같았어요.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하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오래요.
 
그냥 그 상태로 바로 갔더니 원장님이 또 그 노래하는 말투로
"피부염이 그만큼 심하다는 거예요. 지금은 스테로이드 용량은 안 올릴 거고, 주사 한 대 놔줄게요. 맞고 가요~ 더 심해지면 스테로이드 용량을 올려봅시다." 하시는 겁니다...제 하늘은 이미 노래졌는데 엉엉엉
이 말에 "예...?????? 더요???????(청천벽력)" 충격받은 얼굴을 했더니
"지금 바르는 건 스테로이드 끊을 때 쓰는 거예요, 최소라고~ 허허허허" 하셨습니다..
너무 충격받아서 제가 뭔 주사를 맞는 건지 물어보지도 못했네요. 스테로이드거나 항생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아무튼 그날 저녁 되니 따갑던 건 가라앉아서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제 몸의 변화는 여전히 빨개질 때도 있고 했지만 하루에 한번 정도로 줄었습니다.
일요일 낮에도 한번, 토요일 아침처럼 캐릭터가 됐었지만 봉투에 넣은 상온의 물로 찜질을 했어요.
아주 찬 물이 아니라 그냥 미지근한 물이어도 이미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이기 때문에 충분히 찜질이 됩니다.
 
그렇게 월요일은 그럭저럭 열없이 지나갔는데 화요일 아침이 되니 또 빨갛더라구요.
그 때는 열감은 없었는데 아무튼 빨갰습니다.
 
 
그래서 화요일에 세번 째로 피부과에 갔지요.
좀 어떠냐고 물으셔서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빨갛게 올라올 때가 있다'고 했더니
그대로 하면서 4일치 약을 똑같이 지어줄 테니 4일 뒤에 또 오라고 하셨네요.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피부과 진료를 받은 지 딱 1주일 되는 날인데
지금의 제 피부는 아주 약간의 발그레함과 엄청나게 미끈미끈합니다.
이건 스테로이드의 힘이겠죠? 전 이걸 끊어야 하는 거구요.
어제 아주 피부가 꿀피부!! 열없음!! 미끈미끈!!하길래 
오늘 아침에 시험삼아 스테로이드를 바르지 않아봤더니 역시나 지금 약간 빨개졌네요.
 
 
하지만 지금 제가 더 의미있게 생각하는 변화는 피부보다도 속이 편한 거에 있어요.
늘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아서 점심을 안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소화가 너무 잘 돼서 삼시세끼 밥을 안 먹으면 배고파 죽을 지경이에요.ㅎㅎ
고춧가루를 못 먹으니 버섯, 깻잎, 계란국, 미역국, 김밥 이런 걸로만 일주일을 채웠습니다.
물론 이 속의 편안함은 위장운동촉진제, 약이 만들어 준거고,
제 염증을 가라앉히고 있는 것도 알러지약이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아프지 않기 위해 최소한 뭘 해야 하는 지는 알게 된 거잖아요.
약도 안 먹고 스테로이드도 안 바르려면
전 제 위장이 움직이도록 유산균도 먹고 운동도 하고 햇볕도 봐야겠죠.
원래 엄청 좋아하던 매운 것도 이제 최대한 먹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거고
알러지 검사도 해서 제가 과민반응하는 항원이 있다면 그게 뭔지 알아낼 거고요.
 
 
제가 스테로이드의 원리에 대해서 찾아볼 때 되게 쉽게 와닿았던 비유가 있는데요.
한마디로 '일단 후퇴'라고 하더라구요.
아군과 적군이 시가전을 치루고 있는데, 둘이 너무 팽팽해서 도시가 다 무너지고 있대요.
민간인 피해도 극심한 거죠. 폭격을 하면 적군은 죽지만, 아군도 죽고 도시도 폐허가 되고.. 
여기서 스테로이드의 역할은 아군을 일단 뒤로 빼내는 거죠.
적군은 여전히 날뛰고 있지만 너무 커지는 피해를 잠깐 줄이는 거라고..
 
이 말은 즉
스테로이드가 절대 마지막 치료약이 되지는 못한다는 거고요.
 
 
결국 면역력이더라구요.
지금까지 막연하게 '면역력'이라고 하면 완전 민감하게 병균이랑 싸우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면역'이라는 게 뭐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까 이렇게 나왔는데요,
 
면역1免疫 [며:녁]
 
여기서 말하는 '면역'은 물론 첫번째 의학적 용어겠지만,
'무뎌지거나 무감각해짐'을 보니까 좀 생각이 달라지더라구요.  
즉 전쟁을 벌일 필요도 없는 걸 보고 면역력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병균이라도
몸 속의 치안이 엉망이면 무슨 쿠데타처럼 느껴지겠지만
치안 좋은 몸 속에선 소매치기범 정도?ㅋㅋ
군대가 나설 필요도 없고 도시 피해도 없고 민간인 피해도 없고
그냥 경찰이 너 체포ㅋ 하면 끝나는.. 아주 작은 사건.
 
 
알러지도 결국 다른 사람은 무던히 넘어가는 특정한 항원을 내 항체가 유난히 공격해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알러지는 넘어설 수 없는 타고난 약점 같은 거지만..
저한테는 꼭
마음이나 몸이 아픈 사람이, 평소엔 넘어갔을 사소한 일도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거랑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무던하게 스무스하게 넘길 힘도 없으니까 이러는 거구나 하고.
 
 
결국 내 몸이 그만큼 병들었다는 증거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 돼요!!!
기승전 부지런!
 
 
너무 심하게 긴 글이라 죄송해요ㅜㅜ 이것저것 쓰다보니..
여기까지 쭉 따라 읽어오신 분들 진심 존경합니다ㅋㅋㅋ
기니까 요약을 해봐야겠어요. 
 
 
pc버전 세줄요약:
1. 피부과 갈까말까 고민될 땐 무조건 빨리 가세요. 뭐 시술하라고 개소리하면 그냥 "안해욧!"하고 다른 곳 찾으면 돼요. 두려워마세요.
2. 술,카페인 줄이고 너무 매운거 줄이고 운동 꼭꼭꼭 하세요. 
3. 스테로이드 무조건 개객끼 아니에요. 근데 절대절대 매직 솔루션도 아니에요.
 
모바일버전 세줄요약:
1. 심해지기 전에 피부과 가세요.
2. 운동 꼭 하시고, 먹는 거 조심하세요.
3. 스테로이드, 증오도 맹신도 마세요.
 
 
세줄로 요약하니 무슨 공익광고같네요...........
매일 지키기 어렵더라도 꼭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고
이런 상관관계들을 자주 떠올려 보세요! 꼭!! 꼭꼭꼮!ㄱ꼬꼬꼮ㄲ꼭꼬!!!!!!!!!
 
작심삼일이면 삼일에 한번씩 다짐하세요! 꼮!!!!!
 
 
 
출처 엉망진창인 내 몸 속의 치안과 안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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