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보인다. 동시에 검붉게 변한 들판의 모습과 고통에 찬 절규가 들려왔다. 난 이곳이 생사가 교차하는 장소임을 깨달았다.
러스트는 저멀리서 로얄 가드들을 침식하는 괴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날 이끌었다. 우린 그것들의 영역으로 점차 다가갔고, 점점 서늘한 기운과 함께 본능적인 공포가 느껴졌다. 내가 어태껏 이런 위험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니. 내가 어렸을 적부터 저렇게 포니들이 죽어갔는데, 난 그저 아무것도 모른채 천진난만하게 자라났다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숨기시는 진실을 알고싶은 마음은 커져만갔다. 러스트와 난 새롭게 전선으로 투입되는 로얄가드들의 군중속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로 뒤덮였고, 밤하늘은 더이상 아름다운 별들을 간직하지않았다. 단지 혼란과 공포만을 담고있었다. 미세한 피비린내와 함께 저멀리 검은 빛깔의 불길이 보였다. 빛을 집어삼키는 불은 내 정신을 괴롭게 만들었다. 지평선에 다가가기도 전 긴장하는 나와는 달리 러스트는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2년의 경험이 그에게서 두려움을 감추는 법을 알려준것이었다.
" 도착하기도 전에 네 팔다리가 뜯겨나가는 걸 보기 싫다면 절대 뒤돌아보지마. 저 괴물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읽어. 그들에게 나약함과 빈틈을 보여준다면 끝장이야. 놈들에게 두려움의 냄세를 맡게 허락하지마. 절대 놈들의 사냥감이 되지마.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저항하는 저들을 믿고 전진해. 꼭 지평선까지 살아남으라구 신참. "
그는 가드들의 대열을 살피며 날 어둠으로 휩싸인 언덕쪽을 향해 밀쳤다. 밀쳐지고, 내리막길을 따라 난 굴러갔다. 내가 숨막히는 그곳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밤의 괴물들과 싸우는 영락없는 용맹한 전사들중 한명이었다. 러스트는 괴물들의 관심을 그에게로 돌려 내가 안전하게 그곳을 빠져나가도록 도와주었다. 난 그와 내형제들, 그리고 끔찍한 피조물들을 뒤로하고 잔디가 무성한 어두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 헤헤....꼭 뭐가 있나 보고 오라고......"
난 계속 흙속을 헤멨다. 다리가 진흙으로 더럽혀지고, 사방에서 이슬이 맺힌 풀냄새가 났다. 난 시간이 지날수록 내눈이 어둠에 익숙해질줄알았다. 하지만 난 계속 어둠속에서 헤멨다. 내 눈을 가리는 것들은 단순한 어두움이 아니었다. 난 어느샌가 날 따라붙은 괴물 한 조각을 의식했다. 고개를 돌리지않고 굶주린 놈을 바라본다. 녀석은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박쥐 날개를 가진 무장하지않은 검정색으로 뒤덮인 로얄 가드의 모습. 그것은 포니가 아니였고, 살아있는 생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괴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분나쁜 껍질의, 마치 검게 썩어들어간 폐수같은 액체 (사실 액체인지 고체인지는 분간이 힘들었다. 그러나 소름끼치게 기분나쁜 가죽이라고는 말할수있다.) 가 뭉쳐진 우리를 본따 만든 인형같은 모습이었다. 놈에게는 이빨도, 위협적인 발톱도, 무기도 없다. 단지 괴물들은 우리들을 감싸안았고, 그럴때마다 숯덩이같이 타들어간 가드들의 시체가 초원에 쓰러졌다. 그나마 대항할수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난 그것을 경계하며 언덕의 정상에 올라섰다. 눈 앞에 펼처져있던 광경에 두눈을 의심했다. 만약 두려움을 갖지말라는 러스트의 경고가 없었다면 난 벌써 뒤에서 쫓아오는 악몽 한 덩어리에게 잡아먹혔을거다. 난 최대한 놀란 마음을 쓰러내렸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놈은 바짝 다가와 눈에서 역겨운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놈이 조금만 더 애쓰면 내 몸 전체를 이런식으로 먹어치울수있을 것 같다. 난 녀석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창을 휘둘렀다. 괴물은 한발짝 물러서고, 날 응시하다 땅으로 스며들어가 사라졌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수가 있어.....난 잠시 긴장을 풀 시간을 가졌다. 회색빛 구름사이로 고개를 감추려고 노력하는 지배자의 검푸른 달이 하늘위에 걸려있었다.
군데군데 펼처진 시커멓고 불길한 기운이 건너편 초원을 조금씩 갉아먹고있었다. 난 그것이 처음에는 어둠 때문에 검게 물든 작은 웅덩이들인줄 알았다. 꽤 멀지않은 곳에 땅의 경계가 보였고, 난 지평선을 향하는 웅덩이가 많은 초원을 걷고있을때 질척거리는 덩어리들이 웅덩이가 아닌것을 알아챘다. 주위에선 한번도 맡아본적없는 냄새가 났다. 맡기 꺼려지는 그 냄새는 날 멈추게 만들었다. 이상한 낌새가 내 갈기를 곤두세웠다.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멈추지 말았어야했다.
내눈은 걸음을 멈춰서야 어둠속에 익숙해졌다. 난 혼자 남아버렸고, 날 지켜보던 괴물은 한마리가 아니였다. 사방에서 놈들의 눈동자가 보였다. 진실을 알수있는 장소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도 시간이 너무 많았다. 말없이 창을 들어 놈들을 경계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신입 로얄 가드만의 반드시 사수할 영역을 만든다.
" ..............ㅇ.......ㅁ............ㅈ....."
놈들은 이상한 소리를 속삭인다. 난 먼저 달려드는 그 진흙 덩어리들을 찌를 준비가 되어있다.
" 진..........루...나..............찾......ㅇ......."
그들의 속삭임 마치 누군가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애절함이 느껴졌다. 거짓말. 그건 그저 감정에 휘둘리게 하려는 하찮은 술수일 것이다. 놈들에게 관심을 보여선 안된다. 난 사방에서 점차 내 영역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뼛속까지 한기가 밀려온다.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잔디에 떨어질때쯤 난 괴물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녀석들은 내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는듯 더욱 천천히 다가왔다. 날 조롱하며, 갖고 놀다 그들의 일부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난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기분나쁜 미소를 짓는 괴물 한마리를 벴다.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지만 난 얌전하게 잠들 생각은 없었다.
사악함으로 만들어진 꿈 덩어리들의 행동이 180도 달라졌다.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난 무섭지 않았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날 지켜주실거라 믿고있었다. 아침의 내모습과는 모순되는 점이 많았다. 위기감이 내게 믿음을 안겨주었다.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허공에서 파란 빛을 내며 사라지는 괴물들은 내 마지막 눈요기로 충분해 보였다. 난 점점 지쳐가고, 내 믿음은 누그러졌다. 내가 저항하는 것을 포기한 쯤에는 이미 창은 부러져 있었다.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몸에 싸우다 생긴 상처에 그들의 피가 스며들었다. 매우 쓰라리고, 기분이 불쾌해진다. 놈들의 눈은 남청색이다. 마치 변하기 전 루나 공주의 호수같은 눈동자처럼. 그것들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날 산채로 잡아먹으려 달려들었다. 놈들중 한 녀석이 날 덮쳐 뱀이 토끼를 잡아먹듯 날 집어삼키려 발광한다. 난 검게 타버린 잔디위에 엎어진채 내 위에 올라탄 포니를 뜯어먹는 들개같은 그 짐승과 몸싸움을 벌인다. 하나, 둘, 셋, 넷.......내 몸에 달라붙은 괴물의 숫자가 늘기 시작한다. 난 눈을 감고 내게 기회를 줬던 부상당한, 하지만 아직도 그 초원에서 괴물들과 싸우고있을지도 모를 포니에게 미안함을 마음속으로 표했다. 그리고 공주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름답고 기품있으신 공주님. 난 그녀에게도 미안하다 말했다.
' 아무래도 오늘이후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볼때 함께 할수없을 것 같습니다....죄송합니다. '
몸을 기어오르는 질척한 것들이 느껴진다. 뒷다리부터 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진다. 난 포기하진 않았다. 진실을 알고싶었다. 난 새벽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않았지만, 여전히 지평선을 바라보며 불가능한 가능성을 기대한다.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두려움을 느끼지않으려 생각을 비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리에 고통이 사라졌고, 닫혀버린 눈꺼풀 너머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고, 안개낀 초원에는 날 엎드린채 바라보는 한 포니가 있었다. 그녀의 갈색 갈기, 생명이라는 것이 담긴 신비로운 하늘색 눈동자와 드문드문 몸에 새겨져있는 줄무늬는 그녀가 내 목숨을 구했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난 짙은 안개속에서 날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기회를 한번더 가.... "
" 자네는 변절자이자, 개척자가 될 운명이군. "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난 침묵했고, 의문의 얼룩말이자 내 생명의 은인은 말없이 일어나 안개속으로 걸어갔다. 난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가 뒤를 돌아 고개를 끄덕거린다. 따라오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