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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장례식.txt
게시물ID : freeboard_12958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밀랍양초
추천 : 2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28 23:34:58


조금은 날씨가 풀어져 가는 봄의 새벽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휴일의 시작. 가볍게 씻고서 뭐라도 하기전에 배가 고파 밥을 떠 먹으려는 그 때 전화를 걸기엔 너무도 이른 시간에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낯설지 않은 발신자. '아버지'
나에게는 아버지가 두 분이 계셨다. 나를 낳아주고 떠나간 생부와, 아버지가 떠나간 자리를 채워주신 양부.
양부께서는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니, 나에게 전화를 건 아버지는 당연히 생부였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로도 나는 생부를 자주 만나곤 했다. 어머니께서 아무리 반대하셔도 말이다 이 전화가 걸려온 오늘의 어제에도 나는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왔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일없이, 그냥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자주 하셨으므로 나는 그런 전화일거라 생각하고 수화버튼을 눌러 아버지와 통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나는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통해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말없이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 곳에는 집안이 갈라선 이후로 거의 12년 만에 보는 식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 분들이 나를 아무리 반갑게 맞이한들 나는 스스로 나도 모르게 벽을 세우고 있었다.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멍청하게도.
나는 정장을 입어본 적이 없다. 돈도 돈이거니와 아직 이런 곳에 올 일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정장은 나중에 사는 것이 낫겠지 하며 항상 차일 피일 미루어 왔었다. 하지만 내 첫 셔츠와, 넥타이와 검은 자켓이 이런일로 결정 될 줄은 몰랐다. 누구라도 몰랐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픈 곳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고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어른들에게 하나씩 배우고, 조문을 위해 찾아오는 낯선 빈객과 낯선 가족들을 나는 맞이했다. 마음 속으로 반가움과 서운함,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흙탕물 같은 마음으로 나는 그 들 모두와 예를 갖추고 인사를 나누었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 얼굴이 익숙한 나의 사촌형들과 누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도와서 일을 함께 헤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나의 역할은 그것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주의를 주셨다.
떨어져 나온 지가 12년. 나는 그 12년동안 안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서툴지언정 대충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는 알았기에 함께 일을 하고싶었다. 눈치를 보고 빈객이 찾아오지 않을때에 잠깐 나가 일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왔다. 그 정도라도 같이하는게 낫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 홀로 어린 형제를 키우기에는 지금보다 과거엔 사회의 눈빛과 경제적인 활동이 많이 어려웠다. 그래서 밑바닥부터 그것이 어떤 일이든간에 안해본 것이 없었다. 아 물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진 않았다. 그러면 가족에게 오히려 짐이 되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것은 이미 너무나도 많긴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 가족들을 싫어하는 어머니의 만류를 무릎쓰고 왔기 때문이다. 돌아가면 더 잘해드리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양부께도 조심히 말을 꺼냈다. 잘 다녀오라 하셨지만 나는 이 죄스런 마음을 덜어내고 다녀 올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죄스러운 마음도 저 가족들에겐 고마운 마음이 되는것일까, 나는 이 생각을 끝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가장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첫째 고모님의 차남인, 나보다 훨씬 나이가 있고 어린 나에게 잘 해주었던 그 형의 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아이 때문에 삼촌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아이에겐 나는 수많은 삼촌 중의 하나겠지만 나는 그 아이 하나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 특별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떨어져 살게된 이후로는 글로 표현하면 한 문장으로 밖에 쓸수없는 글자들로만 그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날에 고모님의 집에 들러 인사를 드리려던 그 날에 나는 내 조카를 다시 만났다. 나를 잊은 눈빛이였지만 나는 한가지를 약속했다. 훈련소에 다녀오고 나의 복무가 끝나면 너에게 기분좋게 찾아와 용돈을 주기로.
누군가는 인사차로 하는 말로 생각할지도 모르는 말이였지만 장례식장에서 내 조카는 그 말과 함께 나를 기억해 주었고 나는 너무나도 고마워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조카에게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들어주기로 했다. 밤에 잠이 없으니 같이 놀아달라는 말에 나는 그대로 해주었다. 그리고 조카는 시간 날 때마다 나와 함께 해주었다. 나는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너 덕분에 내가 여기서 쉴때라도 웃을 수 있어'라며 마음속으로 편지를 전했다.


이튿 날. 수의를 입고 계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나온 후에. 마음은 더욱 가라앉았지만 울지 않았다. 슬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세워 둔 벽 때문인지 나는 괜찮다, 괜찮다하며 스스로를 계속 속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슬픔은 모른 척 할수는 없었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아버지를 안아드렸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한참을 서로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시간이 지나 더 찾아오는 사람이 없자 우리는 모두 쉬었다. 누나들이 사온 술과 과자, 안주들로 천천히 배를 채우며 그 동안 못했던 말들을 하며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때 만큼은 행복했다. 복잡한 마음일 들지 않았다.


마지막 날. 하얀 장갑을 끼고 나는 위패와 영정을 모셨다. 할아버지를 태운 검은 차에 앉아서 가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육체는 화장을 위해 불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예배시간. 나는 이 종교를 믿진 않지만 할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참여했다.
추도자들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나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듣자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마지막, 할아버지가 화장되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아버지에게 나는 괜찮다고 여태까지 표현해 왔건만. 나는 끝내 내 소매를 눈물로 적셨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울지않을 것 같던 조카가 울고 있었다.


먼저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 옆에 할아버지의 방이 마련되었다. 할아버지의 위패와 함을 묻고서, 내 앞에서 울지 않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셨다. 두번째 삽은 내 몫이였다. 늘 하던 삽질이기에 흙을 퍼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이제 흙을 부으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거라고.. 하지만 바로 마음을 잡고 흙을 지나간 가랑비처럼 천천히 내렸다.
마지막은 조카였지만 힘들어 해서 내가 흙을 담아서 주었다. 조카가 마지막으로 흙을 넣고. 이내 땅을 다지고 절을 드렸다.
할머니만 묻혀 계시던 이 곳이 언젠가는 두 분 모두 여기 계실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지금 이렇게 다가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병신처럼 울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조카도 저렇게 숙연한데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영정을 들고 산 길을 내려가며 솔직히 말해 몇번이고 넘어졌을 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없이 발 가는 대로만 길을 보지도 않고 혼자 터덜터덜. 그렇게 걸어 내려가기만 했다. 그리고 누군가 내 머리위에 손을 올렸다
"기운내"
조카였다. 고맙다. 못난 삼촌 위로해줘서.


가족 모두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누나들도 형들도 어른들도 모두. 조카도 집으로 떠났다. 나와 아버지만이 남아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내 동생에게 서류를 주기 위해 모두 함께 살았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동생을 만나러 갔다.
동생과 아버지는 만나서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고 장난도 치면서 짧지만 자주 있지는 않은 귀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걱정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둘이 살았던, 이제는 혼자 살게 될 집으로 다시 떠나셨다.
어머니도, 양부도 이런 나를 이해해 주셨고 지금의 내 새로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나를 이해해 주시고 먼저간 고인에게 명복을 빌어주셨다.


지금 나는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내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있다. 곧 마무리되고 다시는 겪고싶지 않을 이 이야기를. 마음과 머리가 싸우며 가족을 만나는것이 편하지만은 않은 내가, 그리워 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나에게 장난치면서 웃게 해주던 그 목소리가 벌써 그립다. 모두를 그리워 하고있다. 할아버지, 고모와 고모부들, 형제 자매들, 나의 조카, 나의 아버지. 이 이야기가 끝이 났다. 누군가는 슬퍼할, 그리고 점차 잊혀져 갈 이 날의 노래와 나의 눈물도 모두. 내가 엔터 키를 누르면 확실히 끝이 나겠지. 더 쓰고 싶지만. 모두에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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