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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죽음이 사라진 세계
게시물ID : bestofbest_119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라부
추천 : 403
조회수 : 59578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7/22 11:53:13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7/21 19: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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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은 3D프린터였다.

종이가 아닌 공간에 물건을 바로 뽑아내는 신기한 기술이 세상을 바꾸었다.


3D프린터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1.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설계도를 3D 데이터로 저장한다.

2. 설계도의 레이어를 무한대에 가깝게 나눈다. 즉 미분한다.

3. 첫번째 레이어부터 순서대로 인쇄해 나간다. 즉 적분한다.

처음엔 어떤 제품을 출시하기 전 시험판 정도를 만드는 용도로 쓰였던 이 3D프린터는

기술의 발달로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에 쓰인 것은 '조리'였다.

햄버거의 설계도를 3D프린터로 인쇄하면 직접 만든것과 차이가 없는 햄버거가 생겼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음식의 설계도가 공유되었다.

우습게도 만든 것과 인쇄된 것의 차이가 전혀 없었기에 각종 자영업자들이 몰락하는 것을 막기위해

우리나라는 3D프린팅을 이용한 조리를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3D프린팅을 이용한 기술이 군사, 전자산업을 비롯하여 가정의 아주 사소한 물품에까지 쓰이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었으며

그것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은 그 시기를 살짝 미룬것에 불과했다.


그러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생물도 인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시작되자마자 인터넷은 PC통신의 등장 이후 200년 역사상 가장 뜨거운 토론장으로 변했다.

혹자는 이미 이에 관련된 기술을 중국이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내린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일단 스캔 과정에서 매우 뜨거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의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인쇄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애초에 미분과 적분은 개념이다. 레이어를 무한히 나눈다는 상상은 할 수 있어도

실제로 무한히 나눌 수는 없다. 1cm를 백만층, 천만층으로 나누어도 결국 오차는 생긴다.

그 정도 오차는 무생물을 인쇄하는 데는 문제가 거의 없지만, 생물에는, 특히 뇌와 같이 정교한 부위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생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층부터 차례대로 인쇄하는 3D프린터의 원리 그 자체였다.

당신은 반정도만 인쇄된 개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거였다.

생물은 1층부터 차례대로 인쇄하는 3D프린팅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었다.

많은 윤리적, 기술적 논란을 가져온 이 질문은 그렇게 일단락 되는 듯 싶었다.


문제의 시작은 2년 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어났다.

몇차례의 잇다른 원전폭팔과 대규모 자연재해로 국가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가던 일본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려는 야욕으로 생물을 프린팅하는 기술을 개발 성공시킨 것이다.

일본은 이 프린팅 기술의 핵심을 독점하려 했지만 일본의 지나친 요구에 화난 세계연합은 일본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했다.

안그래도 좋지 못한 상황에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 일본은 얼마못가 파산했고, 기술은 공개되어 각 나라로 퍼졌다.


그 뒤로 인간의 프린팅이 가능해지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데이터화하여 저장하는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제 인간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나라마다 짧게는 하루, 많게는 1년을 주기로한 데이터 백업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죽으면 저장되지 못한 기억을 잃을뿐 재료비만 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자아실현? 사랑?

거짓말이다. 생존에 목적이란 없다. 생물이란 원래 생존과 번식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당신은 왜 열심히 사는가? 언제 생존이 멈출지 모르기 때문이다.

생존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언제 죽을지 불안해하며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사람들은 자유로워졌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못한다. 자살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벌금과 재료비를 청구하면서 사람들을 살려낸다.

다시 죽어봤자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국가는 청구한 돈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켰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삶으로부터의 속박을 의미했다.

죽지도 못하고, 고역스러운 일만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고통은 계속되지만 죽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세상은 지옥이 되었다.


나는 생물학자였다. 그리고 '생물도 인쇄가 가능할까'는 첫번째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 질문을 한 순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세상이 지옥이 될 것이란 사실을.

그때부터 나는 생물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생물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생물은 완벽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이토록 발전이 가능했던것은

그만큼 많은 약점을 가진 불완전체였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죽지않게된 인간, 즉 완벽해진 인간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한 신의 느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든 생물에게 다른 생물들이 가진 일반적인 본능외에 두가지 본능을 더 추가했다.

하나는 내가 조물주이며 나를 섬겨야한다 사실과, 다른 하나는 인간을 죽여야한다는 사실이었다.

과정은 아주 쉬웠다. 죽음이 의미가 없어진 세계에선 군대도,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죽여주는 것을 고마워 할 정도였다.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기까지는 단 이주일이 걸렸고, 그렇게 나는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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