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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고 싶었던 글
게시물ID : readers_245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10
조회수 : 71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4/01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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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일이었다. 수업을 끝내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에어컨이 없는 방이었다. 천장의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침대 옆에 서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땀을 흘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큰일 났다는 아빠의 메시지가 와 있었고 서둘러 뉴스를 읽었다. 바다에 갇힌 사람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너무 더워 진절머리가 난다는 생각을 순간 잊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부터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거의 매번 혼자 밥을 먹는 나였기에 다행이었다. 어느 날 아침엔 한 아버지의 편지를 읽다 울었다. 아무도 그런 날 눈치채지 않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사고가 일어나기 며칠 전 들은 수업이 생각났다. 잊어야 한다고 말하는 한 미국 기자의 글을 읽었다. 수업을 듣던 나를 포함한 열 몇 명의 학생들은 모두 잊어선 안 된다고 차근차근 반박했다. 그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내주신 인터뷰 과제도 생각났다. 나는 아빠를 인터뷰했다. 1980년 5월 18일. 스무 살의 아빠는 그날 광주에 계셨다. '나의 영웅이었던 사람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빠의 고백이 무너질 듯 말 듯 휘청였다. 스무 살의 나는 고작 내 고집에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었다. '엄마, 나는 조금 더 일찍 태어나고 싶었어.' 엄마와 통화하던 중에 내가 불쑥 꺼낸 고백이었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만난 사촌 언니의 목소리도 생각났다. '어쩔 수 없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앞의 만두만 집어삼켰다. 언니는 '너는 외국에서 살고 자랐으니까'라는 말 대신 '나도 외국 나가서 살고 싶다, 진짜'라고 했다.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본 적 없는 또 다른 사촌 언니가 오래전 버릇처럼 했던 말도 생각났다. '나는 한국 싫어.' 

가끔 나의 슬픔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눈물이 멎는 순간 창피해지고 만다. 울고 있던 얼굴이 서서히 피는 그 어색한 과정이 마치 커다란 잘못처럼 하나하나 머리에 박혀 남는다.

오늘은 한 어린아이의 노래를 듣고 울어버렸다. 날씨가 참 좋았고 밥도 맛있게 지어졌다. 운동 후에 마시는 시원한 물은 언제나 달다.

그리고 잘못 이해한 말들을 발견했다. 그래도 멀리 멀어진 나의 말에 가까이 다가와 준 따뜻한 말을 발견했다. 삶은, 닿아 있고 고마운 것투성이였다.

또 하나 생각났다. 내가 외운 유일한 시.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스치운다'라는 말이 '스친다'보다 '운다'에 더 가깝게 들려 울지 않을 수 없는 시. 그래, 부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출처 87kcal 님의 '그래도'라는 시(http://todayhumor.com/?readers_24555)를 읽고 여러 생각을 하다 오늘 쓰게 됐어요.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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