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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과 만나다.
게시물ID : sisa_705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2222
추천 : 3
조회수 : 89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4/04 14: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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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이 가장 바쁠 시점에 그와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여러 팟캐스트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들었는데, 면전에서 본 박주민과는 좀 달랐다. 며칠 곱씹다 정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집 근처 산책길에 이미경 의원의 사무실이 있었다. 현수막이 고별 인사로 바뀌고 며칠 뒤에는 박주민의 잔뜩 포샵된 얼굴이 걸렸다. 저 어설픈 아저씨가 꼴찌로 공천되어서 과연 당선될 수 있을 것인가.
그보다도, 저 아저씨가 하고 싶은 일이 다들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나. 모두 20대 국회에서 되지 않을 일들만 하고 싶어할 것 같았다. 호기심을 채워야 한다는 당위로 박주민 캠프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주변 인물들과 이야기했다. 박주민이 변호해 줬던 사람들. 그리고 박주민과 같이 일하는 사람. 그러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자 누가 말한다. 박주민과 바로 말해 보세요. 이렇게 바쁠 와중에?
그런데, 그렇게 된다. 박주민 주변에서는 왠만하면 되는 것들이 많다. 이 글을 읽는 분도 박주민과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원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일인 사람이니까. 공짜로 변호사와 이야기하니 돈 번 기분이었다.

잠시 뒤에 박주민 변호사가 등장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Q. 보도 사진을 보면 항상 목에 블루투쓰 이어폰을 걸고 있네요.
> 그게. 길에서 일을 하게 되니까, 항상 통화를 하고 일을 하니까 목에 걸려 있는 거죠.

Q. 신문지 위에서 많이 주무시죠
> 아스팔트 위에서 자는 거 편하진 않아요.

Q. 그렇게 자면서 무슨 생각 합니까?
> 자야 되니까 자는 거죠. 어디로 가고자 하시는 분들이 막히니까 거기서 자게 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청와대쪽으로 가실려고 하는 분이 항의의 의미로 자는거죠.

애초에 청운동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이 뚫려 있을 거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당연히 막힌 길이라 생각하지 않나. 이 아저씨의 내비게이션에서는 직진하라 메시지가 나왔고 그렇게 가다가 진행할 수 없으니 그저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이다.

길이라는게 어디론가 가기 위해 뚫려 있는데, 길이라고 교과서에 배운 길들이 막혀 있다. 그렇게 막힐 때 이 아저씨는 쉰다. 팽목항에서도 길이 막혔을 때 버스에서 꿀잠을 잤다고 한다.

Q. 허리도 아프다는데
> 원래 허리가 안좋았는데, 세월호 하면서 국회에서 농성하면서 작업을 길바닥에서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허리가 더 나가더라구요. 허리가 너무 아파요. 가만히 있으면 너무 아파서 이렇게 저렇게 해주는데. 뭐 그렇게 됐죠.

Q.어떻게 유가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 당시 유가족들은 세상 어느 것도 안믿었는데요. 그냥. 시키는대로 다 하다 보니까. 그냥 네네하면서 하는 거 다 따라하다 보니까. 야 너 회의 좀 정리해라 하면 네 하고 정리 잘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같이 있는 거죠.

Q. 유가족이 후보님에게 마음을 연게 어느 시점일까요.
> 세월호 관련해서 제가 처음에 내려갔을 때는 참사후 2주일 지났을 때 안산에 내려갔구요. 처음에는 가족들이 마음 못 여셨죠. 누구한테도 마음 못여셨죠. 굉장히 분노에 차계셨고, 불신...
> 처음에 내려가서 회의하실 때 음료수 챙겨드리고 쓰레기 치우고 짜장면 껍데기 랩 벗기고 계속 했어요.
> 그러다 보니까 쟤 뭐지? 변호사래. 변호사가 도와주려고 왔다나 봐. 이러다 보니까 너 잠깐 와서 우리 회의하는 거 정리해. 이렇게 회의하는 거 맞아? 너 변호사라며. 이렇게 하면 회의에 효력이 있어? 이러다 보니까 조금 조금씩 마음을 열어나간 거죠. 오래 걸렸어요.

Q.2주라면 유가족에게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해줘야 할 지 잘 모르잖아요? 무슨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내려간 거죠?
> 사실 저는 세월호 참사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제가 직접 집회 신고를 내고 집회를 할 정도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가 가족들 곁에 가서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필요하단 요청을 받았죠. 대한변협 쪽에서 필요하다면서 원래, 두 명이 있었는데, 두 명으론 안된다. 누군가 한 명이 더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그 분들이 저를 선택했어요.
> 박주민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이전에도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저는 거기 가기가 싫었는데, 가기 싫었다기 보다는 가서 내가 뭘 하지 안하겠다고 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원래 있던 분이 나는 팽목에 내려 가겠다 하니까 안산이 비어버리잖아요. 하니까 어쩔 수 없이. 
> 처음에 내려갈 때는 상근하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매일 안산으로 출근하게 되더라구요. 

Q.시위할 때는 화 안내고, 흥분 안하고 조용조용 하다는데...
> 다 그래요. 뭐. 보시면 아시겠지만 얌전하다고 얘기하잖아요. 제가 급진적으로 주장하는 얘기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경제적인 부분들이나. 뭐 그런. 반면에 저는 이념이 우선이다. 이런 급진성은 없어요. 실사구시. 계속 끊임없는 개선을 하고. 그러다 보니까. 방법상으로 보면 유순해 보일 때가 있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노무현을 좋아 하는가. 이 아저씨는 이상만 추구해서 사람들 가슴 속에 헛된 꿈만 심어주는게 아니라, 진짜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진정성. 문득 그래서 내가 박주민을 좋아하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법적 승리를 했을 때, 박주민은 항상 뒤에 서 있고 언급조차 안되는데?
> 저도 저를 잘 안내세우죠. 어떤 사건을 했을 때.변호사는 짤막한 멘트 정도만 나가죠. 변호사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고, 저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일은 제가 하죠. 사실상. 

Q. 애니메이션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 상상력을 자극하는 SF물 같은 거 좋아해요. 

Q. 예를 들어. 공각기동대? 
> 우주 나오고, 미래나오고, 인간의 본성 다루는 거 좋아해요. SF물이라고 해서 다 그런게 아니라, 공각기동대같은 경우도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잖아요. 상상력을 자극하잖아요. 그런게 좋아요. 

Q. 모바일 게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요. 클래시 오브 클랜도 클랜장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쪼금 하다가 말았어요. 그 클랜 이름이 YOMAN이었나. 

박주민과 같은 클랜을 하신 분들은 한번 떠올려 보시라. 내 클랜의 클랜장이 도움 안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으면, 그게 박주민이었을 수 있다. 

Q. 다른 하시는 게임 있습니까.
> 저도 뭐 게임을 싫어 하지는 않는데. 모바일 게임 했던거 중에... 지금 기억도 안나네요. 몇 달 안하다 보니까. 

그러면서 핸드폰에 깔린 것을 찾아 본다.
IMG_20160401_173047.jpg


> 전 이런 거 좋아해요. 퍼즐 맞추기. 

Q. 다른 문화생활 할 틈이 거의 없을 거 같은데.
> 그렇진 않아요. 영화보는 거 좋아해서, 집사람하고 때때로 영화를 봐요.

Q. 집에서 IPTV로?
> 집에서 살 수 있는 거. 영화관도 가요. 책방가는 거 좋아해요.

후배 변호사 이야기 들어보니 저작권 문제에 민감하다. 공용 컴퓨터에 남겨진 드라마 검색 기록을 보고 누가 그랬는지 캐묻는다거나. 진보인사들이 상대적으로 사소한 사회적 기준에 신경쓰지 않는 것을 가끔 본다. 

 
Q. 최근에 본 책은.
> 제목이 잘 기억안나는데... 진보는 왜 무능하다... 그런 책이 있어요. 최근에. 그 책을 읽었죠. 왜냐면. 공천이 결정될 때는 아니었지만, 되면 그런 사고와 싸워야 되니까... 

뒤늦게 찾아보니 아마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일 것 같다. 서울 법대 나온 사람도 저 길이의 제목은 다 기억하지 못한다.

>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도 읽었죠. 

Q. 유가족과 같이 지내다 보면, 그 고통을 같이 느끼다 보면 PTSD가 생기지 않습니까.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합니까?
> 제 주위에 세월호 관련해서 같이 일했던 변호사 분들 두 분 있다고 했잖아요. 그 분들은 우울증 치료를 받았어요. 저는 정신상담 안받았어요. 저는 별로 막... 뭐라 그럴까. 내가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 느낌은 안들더라구요. 슬프면 그냥 슬픈가 보다. 힘들면 그냥 힘들다 보다. 

Q.그런 스트레스 관리가 잘되는 경우에 내성이 강하다거나, 소화를 잘한다거나 그럴 것 같은데. 
>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면, 내가 왜 힘들지 괴로워하는데. 저는 힘들면 힘들구나. 좀 있으면 지나가겠지.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속 편한 사람이다. 세월호를 떠올릴 때의 스트레스가 이쪽이고 저쪽이고 다 많은데, 열불나는 이야기를 그만 이야기하자, 우리 사회가 내린 결론이다. 힘들면 힘들구나. 좀 있으면 지나가겠지.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 변호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아저씨는 합리적이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안하고, 목표로 한 것이 있으면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이 지점에서 내가 노무현 변호사를 좋아한 이유를 떠올려 본다. 생각한게 있으면 현실로 만들어 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나 묻고 싶었다. 박주민이 공천받았을 때 박주민을 붙잡고 이야기한 유가족이 있었다. 카랑카랑 나서서 말 잘다가, 암투병을 하면서 지금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고통과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분이 박주민에게 꼭 이겨라. 국회 들어가서 꼭 이겨라 주문을 했다.

Q. 최근에 펑펑 운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 총회에 갔는데. 말씀 잘하시던 유가족 분이 암투병을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하시는 말이 웅얼웅얼 무슨 말인지 알아 듣을 수 없게 됐지요. 뭐라구요? 뭐라구요? 계속 되물어가며 그 분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뭐라 말씀하셨냐면요. 갔으니까 최선을 다해. 꼭 이겨라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원래 그 분이. 2년 전에 만났을 때 말씀을 굉장히 잘하셨어요. 암치료를 받으시면서 점점 상태가 안좋아지셨어요. 개소식 때도 오셨어요. 굉장히 힘든 몸으로. 그거 보면서 마음이 짠했죠. 그 말을 이해한 순간 되어야 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박주민의 개소식에는 유가족이 버스 두 대로 방문했다. 개소식장에서 그는 목청을 높여, 압승을 하겠다 외쳤다. 왜 그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코앞에 세월호 유가족을 앉혀두고, 그들을 향해 압승하겠다 그 말을 던진 것이다.

Q. 국회 가면 먼저 뭘 하실 겁니까? 
> 시기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해야 해요. 세월호 특조위 종료가 다가오기 때문에 시한을 늘리는 작업을 좀 해야 되고. 그 이후에 하고 싶었던 정책적 과제를 해야 되죠. 

> 근데...

> 은평에 와서 은평 개발과 관련된 이슈들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구요. 이분들이 다 임계점에 다닿랐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이 도시가 20년 동안 정체되어 있는거죠. 

Q. 이제 막 은평갑에 왔는데. 보면 현실적인 주제. 당에서 짜준 듯한 공약이 보이거든요. 아마... 박주민은 세월호 유가족 변호산데. 그게 지역에서 도움이 될까 회의가 들거든요. 

선거 사무소 밖에도, 인권 변호사라기보다는 벤쳐 기업 CEO풍으로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 문제는 선거기간이 짧다는 거죠. 짧아서 하나의 이미지로 돌파를 하지 않고서는, 제가 해볼 수 없어요. 만약에 시간이 다른 후보들처럼 4개월 있었다면 제가 하고픈 걸 충분히 알리고 설득할 수 있었겠죠.

> 저는 25일 남겨놓고 공천되었어요. 여기 와서 선거사무실 꾸리고 나니까 19일이 남았어요. 이제부터 제 이미지를 만들어서 19일 버터야 되는데. 여러 이야길 할 수가 없어요. 

> 그런데 은평에 계신 분들. 세월호가 핵심적 이슈가 아니에요.
 
>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은평 구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되겠죠. 그것도 필요한 이야기죠.

> 다만. 제가 이야기 안해도 세월호 유가족 변호사라는 거 다 알아요. 제가 해야할 일 뭡니까. 세월호 특별법 개정하는 거 이야기해야 하거든요. 

> 그거는 제가 어떠한 주저함 없이 해야 하니까... 그 정도의 이미지로 가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런 생각이 났다. 이상이 높을 수록 현실의 벽도 높아지지 않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언론과의 불화를 겪기 마련이다. 미디어와는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

Q. 세월호 유가족도 대리기사 폭행, 배상금에 탐내는 사람으로 언론이 만들어 갔습니다. 언론이 박주민을 엄청 싫어할 것 같은데 언론은 어떻게 대할 생각입니까?
> 저는 조중동도 무조건 배척하진 않았어요. 제가 주장하거나 필요로 하는 이슈를 잘 다뤄줄 수 있다면 인터뷰도 응했었거든요. 제 목표는 조중동을 상대 안해 그런게 아니거든요. 제 목표는 세월호 특별법들을 포함해서 하고 싶은 것들. 그런 걸 말하려면 조중동하고 이야기해야 되겠죠... 영혼을 파는 걸까요. (웃음.)

Q. 인권변호사 할 때 말하는, 그 인권이라는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인권... 여러가지가 있겠죠. 인간으로서의 권리... 음 대접받아야 할 하나의 기준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요. 인간인데 저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게 제가 쉽게 생각하는 인권이에요. 인간인데 이렇게 좁은 집에서 살아? 인간인데 이런 화장실을 써야 해? 인간인데 이렇게 불안하게 살아야 해? 

Q. 의뢰인을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니까, 이 사람이 변치않고 이 자리에 있어줄 거 같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마음을 갖고 갑니까? 
> 저는 사실 그런건 아닌데. 핵심적인건 이런 거에요. 1심이 끝나면 변호사 자격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저는 2심을 당연히 가는 거에요. 1심이 끝나서 변호사로서의 의무는 끝났지만, 여전히 고통을 받고 계시잖아요. 그럼 또 하고 또 하고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 물론 하면서 의뢰인들과 항상 좋았던거 아니지만요. 하다가 신뢰가 붕괴되는 경우에는 더 할 수가 없죠. 대부분의 경우에는 끝까지 갔죠. 

> 장진수 주무관님이나 이마트 내부 고발자. 그 분 같은 경우에는 소송 끝나고 나서, 직업 구하는 것 까지 제가 챙기고 있더라구요. 

Q. 직업 구하셨습니까?
> 못구했죠. 제가 힘이 없잖아요. 국회의원들에게 졸랐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Q. 화나서 이야기할 때, 이런 이야기 한다고 들었습니다. 썩어빠진 공무원처럼 하지 마라. 그 썩어빠진 공무원은 어떤 사람입니까.
> 이런 거에요. 관례나 전통을 따지는 것. 눈 앞에 필요가 있는 사람이 보이는데도 안해요. 공무원의 본분. 어떻게든 해볼려고 해야 되는 건데. 전례가 없습니다. 이러는 거죠. 관례, 전통을 따지고 상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거죠. 권위주의에 쩔어 있다고 해야 겠죠. 

> 그러다 보니까 법은, 저기 멀리 있는 거죠. 법을 안지켜요. 불법을 니들이 하고 있다 제가 그러니까, 걔들이 하는 말이. 명령이다. 청와대 가는 길을 막잖아요. 왜 막냐? 상관의 명령이다. 이게 우리나라 공무원이 보여주는 모습이죠. 전례와 관례와 상관의 명령.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걸 따르면 안전하고, 따르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마지막 질문. 이런 걸 묻고 싶었다.

Q. 주량이 얼마나 되십니까
> 소주 한 병 정도.

나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하고 소주 한 잔 마시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우연히 스친 박주민을 만난 장삼이사의 입장에서, 박주민이 나눠주는 명함을 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겁한지 말할 수 있는 카나리아가 있다고 치자. 그 자격을 엄격하게 쪼개고 쪼개어 마지막 한 명만 남기자. 2016년 현 시점에서는 그게 박주민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 법대 나와서 변호사 마누라와 살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살기 좋겠나. 이런 인간이 세월호 유가족과 길에 안그래도 안좋은 허리를 누이고 신문지를 덮고 잔다면 최소한 우리는, 박주민이 내미는 명함에 잠깐 뭉클해져야 하는게 아닐까.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뭔가 인증이 필요한 거 같다. 세월호 유가족 변호사의 오른손에 걸려 있었던 것. 그걸 남기면서 인터뷰를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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