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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과 시위대에 대해
게시물ID : humorbest_1197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연작
추천 : 33/11
조회수 : 1223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6/01/15 21:38:38
원본글 작성시간 : 2006/01/15 04:00:53
- 예를 들어 1994년에 UR(우르과이 라운드)과 관련하여 대규모 농민시위가 있었습니다. 원인은 '대통령
  직을 걸고라도 쌀 시장은 막겠다.'고 하던 김영삼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 전농(전국 농민단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에서 상경해서 서울에서 시위를 합니다. 이 시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시위를 하면 김영삼 정부가 '쌀시장 개방 철회'로 선회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위를 통해 상황을 잘 모르는 시민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 그리고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시위의 목적입니다.

- 그럼 이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도로점거'입니다. 광화문 4거리를
  시위대가 막으면 서울 시내 교통이 마비됩니다. 각 교통방송은 '지금 광화문 일대에 UR 반대 농민 시위
  대로 인해 교통이 혼잡하오니 다른 길로~~'라고 '선전'해 줍니다.(이건 그나마 좀 나아졌을 때 
  이야기고,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지금 광화문 일대에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라고 방송했습
  니다. 왜 시위를 하는지를 아예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았죠)

- 이슈가 정말 크고, 꼭 그래야 할 것이라면 시위대는 '도로점거'까지도 "각오"하게 됩니다. '도로
  점거'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 욕먹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반대로 선전효과는 그럴수록 커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전효과가 크더라도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역효과이기 때문에
  왠만하면 시위대들도 도로점거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에서 선전전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경우 여론을 좌우하는 '언론'은 시위대에게 우호적인 시각을 보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시위대가 선전전을 전개하는 모습은 달라지기도 합니다.

- 정부는 그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어떻게 할까요? '평화적 시위'는 허용한다면서, 실상  
 '선전'을 제대로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여기에서 시위대와 전경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 그러므로, 전경은 불쌍한 존재가 맞습니다.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위의 '진압'에 동원되며,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위대를 '방패로 찍거나', '곤봉으로 때리거나' 하게 됩니다. 시위대
  역시 달아올라서 싸우게 되죠. 이런 과정이 80년대에 이미 매우 일반화되어 버려서 나중엔 아예 
  시위대가 '쇠파이프'나 '각목' 등을 아예 시위시의 '준비물'로 당연시하게 됩니다. 

- 그래서 예전에 (90년대 중반까지는) 시위가 있으면, 경찰과 시위대 간에 어느정도의 합의가 있기도 했
  습니다. 아무래도 '싸움'이 되면 치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피'가 나게 되고, 선혈을 보면 더 격렬해지기
  도 하기 때문에, 미리 합의를 하는 것이죠. 가령, '시위대가 3번 밀고 나간다. 경찰은 3번 밀려준다. 
  그 다음에 끝낸다.' 이런 식입니다. 이건 어찌 보면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경찰 측에서도 '정부'의
  눈치를 봐야 되고, 그렇다고 시위대에 부상자가 많으면 죄다 '경찰'의 책임이 되기 때문에, 이런 합의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 이런 '합의'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생계형' 시위였습니다. 철거촌의 시위, 농민 시위, 노동자
  파업 등의 경우는 '이슈'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시위대 측에서 양보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관철해야 될 이슈이고, 정부와 시위대가 만나야 될 일이지, 경찰이 중간에 
  껴서 막는 상황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죠.

- 이 과정을 생각해 보면,
  전경과 시위대의 이슈에서 중요한 것은 전경과 시위대의 싸움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경이 불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시위대가 생겨난 이슈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왜 정부는 전경을
  앞세워 시위대를 강력하게 막으려고 했는지 등등에 대해 
  우리, 즉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얼마나 (인터넷상 등에서) 호응을 하고,
  비호응을 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 시위대도 시위할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크게 2가지 이유에서 아직 그게 불가능한 듯 합니다. 
  첫째, 아직 온라인상의 움직임은 오프라인상의 움직임에 비해 설득력이나 파괴력, 그리고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라는 측면에서 떨어지고, 둘째, 정부는 온라인상의 '시위'에는 별로 귀를 기울
  일 것 같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 근원적인 해결책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실패로 끝난 '노사정 위원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 정부 
  정책을 그 이해 당사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의견을 조율하면서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매번 회의 때마다...는 힘들겠지만 중요 사안이 있을 경우엔 항상 그 이해 당사자 대표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위대와 전경의 문제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 더 이상 시위대에게 맞는 불쌍한 전경이 생겨나지 않기를, 더 이상 그 불쌍한 전경에게 맞는 시위대도 
  생겨나지 않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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