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사랑을 했고, 많은 우정을 나눴고, 많은 노래를 불렀으며, 많은 그림을 그리고,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운동을 했고, 많은 공부를 했고, 그리하여 지금보다 사회적으로 더 고차원의 인간이었더라면.. 이러한 욕심이 허망한 것이라고,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명백한 결론들에 대해서 아무리 말한들 몇 번이나 절망하고 고뇌의 나날들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
만약 목동이 되어 생존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나는 거기서 살겠다. 책과 약간의 빵과 이 세계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언제까지고 동화되겠다.
누군들 이런 마음을 알아주리. 누군들 나의 미래를 기대하리. 나라고 한들 어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 저 밖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말 할 수 있으리. 막대기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짚고 나가야 한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안개는 사라질 것이고, 나는 또 한 번 부모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이런 고민 자체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확신조차할 수 없는 이 비겁함과 혼돈 때문에 나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이 모든 세계가 환멸스럽다.
나는 정말 로맨티스트이자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넘친다. 그것만큼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한 낱 쓸모없는 염세주의자라고 말할 뿐이다. 비웃을 뿐이다.
하지만 그 어떤 명백한 것으로써 나를 굴복시킬 수 있어서, 네가 쫓는 것은 정신병동에 감금되어 있을 네 암담한 미래일 뿐이라고 확고부동하게 설득시킬 수 있다고한들, 누가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노예로 살길 원하겠는가.
다만 나는 무식한 게 죄일 뿐이다. 돈이 없는 게 죄일 뿐이다. 아니, 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이 유약함이 죄일 뿐이다. 저 한 낱 하찮은 생물들도 돈없어도, 무식해도 잘 살지 않는가. 그들도 우리처럼 한 낱 미약한 존재였다 소멸되지 않는가. 다 똑같지 않는가. 아니라고,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넌 지금 악몽을 꾸면서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넌 헛된 종교적 신념때문에 순교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꾸짖어 달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여기에 서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이 험난한 세계에서 오로지 의탁해야 할 것은 내 육체와 내 이성뿐이므로.
용감했던 선구자들이여.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이것을 군중들에게 말하였던 자들이여. 비겁했던 선구자들이여. 죽음이 두려워 책 뒤편으로, 허구성으로 숨어서 말하였던 자들이여.
나에겐 모두 다 위대한 조상일 뿐이요, 이젠 소멸되어 버려 담배 한 개비, 커피 한 잔 나누지 못하는 死자들일 뿐이다.
나는 조상들이 닦아 놓은 별세계로 향하는 길 앞에 서있소.
꿈에서나마 나타나서 내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준다면... 아아! 그런 순간이 단 한 번만이라도 오게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