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만 하고 자야지... 라고 생각하고 컴퓨터를 켰다. 롤은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이다. 만약 지금 자고 있는 사람이 화장실 간다고 깨기라도 한다면, 나를 보는 시선이 경멸로 바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특히나 그 날은 더 했다. 그렇게 새벽 두시의 협곡이 열렸다.
새벽 2시에 협곡의 약속은 잡기 어려웠다. 한 명 두 명씩 꼭 그렇게 클릭을 하지 않았다. 졸고 있으리라. 모니터 너머의 사람의 행동을 추측하며 나 역시 졸린 눈에 힘을 주었다.
협곡이 열렸다. 미드 트페. 늘 하던 것이고 사실 이것만 할 줄 알았다. 트페를 하면서 제일 싫은 상대방은 르블랑처럼 이동이 빠르고 초반 공격력이 좋은 상대다. 이번엔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더 귀찮았다. 트페였다.
트페. 주캐릭이자 유일한 캐릭. 랭조차 겁나서 못가는 내가 그나마 게임에 재미를 느끼며 했던 트페. 트페충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다며 한귀로 흘렸던 트페. 그런 트페가 미드로 왔다. 맞대결이었다.
나는 트페 대결을 싫어한다. 밀리기 시작하면 팀내에서 정치질 당하기도 쉽상일 뿐더러, 같은 동선을 이용하는 트페들은 역갱을 당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초반 CS를 잘 먹는 걸 보니, 상대방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기본은 나보다 훨씬 나은 상대에게 나는 최대한 조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글의 갱은 트페의 느린 발을 부여잡았다. 순식간에 1킬. 한 번 더 당하면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텔을 타고 다시 미드로 왔다. 다행히 상대방도 CS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정말이지 열심히 쫓아갔다. 하지만 쫓아가면 쫓아갈 수록 CS 차이과 미드 라인 주도권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망한 건가? 라고 생각하며 우리팀의 킬을 봤다. 킬2, 데스3. 이정도면 밀린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아직 방법이 있었다.
상대방 트페가 ad를 들고 나왔다. 빠른 공격력. CS를 잘 먹긴 하지만 항상 라인을 밀어버리기 때문에, 완급조절을 잘 해야 했다. 나는 늘 하던데로 AP를 택했다. 초반만 버티자. 중반에는 할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2킬을 당했다. 이제 팀 데스의 1/3이 내 몫이었다. 다행히 늦은 시간 졸린 탓인지 정치는 없었다. 여러모로 늦지 않았다.
시작은 탑갱이었다. 뚜벅뚜벅. 텔과 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걸어갔다. 상대가 와드를 하지 않아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상대 탑라이너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골카 한 방으로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본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미드로 갔다. 발걸음이 미드를 향했다. 하지만 화면은 탑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탑에 궁을 타고 1킬을 먹고,
살짝 밀리는 봇에 4명이 달려들 때 와드에 텔을 붙였다. 1킬 추가.
상대방 트페는 아직 1킬이었다. 가능성이 있었다.
ad트페와 1:1로 붙는 건 무의미하다. 골카 한 방과 q평으로는 죽질 않는다. 그 사이에 평평큐골카로 내 체력만 깎일 뿐이다. 하지만 궁과 텔로 다른 라이너들에게만 접근했다. 일종의 밀당이었다. ad로 다가오는 트페에게 ap는 답하지 않았다.
협곡의 밤은 길었다. 그렇게 40여분이 흘렀고 새벽 내 벌어졌던 협곡의 밤은 슬슬 마무리가 다가왔다. 트페는 역시 어쩔 수 없는 딸킬을 해야 하는 캐릭이라 늘 '미안' 이라는 채팅을 달고 산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궁과 텔 그리고 골카다음 q는 늘 딸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상대 트페가 1:1에서 녹아내릴 때엔 더이상 그런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
그렇다 정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협곡은 곧 빨간색 물결로 점령되었고, 우리는 팀웍이 좋았다. 새벽 3시 그렇게 성우 누나는 '승리'를 외쳐줬다.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트페는 그 밤에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정치를 두려워하지 말라구. 4/13 투표장에서 만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