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고려 10도 [부제 : 우리나라 최초의 도(道)체제]
게시물ID : humorbest_12002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열고본국정원
추천 : 15
조회수 : 1926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2/05 19:55: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2/04 22:34:50
안녕하세요 ! 문열고본국정원이라고 합니다 !
 
제가 왜 안보였나면........
 
%B9ٴ%E5%BC%D3_%B0%F8%B1%E2%B9%E6%BF%EF[1].jpg
 
읍 ! 읍 ! 숨막햐양 ! 잠수는 힘들다 헠헠

네 뭐 보이는데로 그냥 잠수좀 타봤슴다 헤헤
 
자 그러면 본론으로 시작하죠 !
 
제가 오늘 소개할 지도는 고려 10도 라고 불리는 고려 초기의 행정구역입니다.
 
고려_10도[1].png
 
킁킁킁 이게 무슨냄새냐? 킁킁 이거 완전 중국냄새 아니냐?
관내도 
양주(서울), 광주, 황주, 해주(海州) 등 지금의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 예종 원년(1106년)에 양주, 광주 등은 양광충청주도에 합병되었고, 황주, 해주 등은 서해도가 되었다. 
중원도
충주, 청주등 지금의 충청북도 및 경기도 남부 일대. 예종 원년(1106년)에 양광충청주도에 합병되었다.
하남도
공주, 운주(홍성) 등 지금의 충청남도 일대. 예종 원년(1106년)에 양광충청주도에 합병되었다.
영남도
상주 등 지금의 경상북도 북부 및 충청북도 일부. 예종 원년(1106년)에 경상진주도에 합병되었다.
영동도
경주, 김주(김해)가 관할하던 지금의 경상북도 남동부 및 경상남도 동부. 예종 원년(1106년)에 경상진주도에 합병되었다.
산남도
진주가 관할하던 지금의 경상남도 대부분. 예종 원년(1106년)에 경상진주도에 합병되었다.
해양도
전주, 영주(고부), 순주(순창), 마주(익산)등 지금의 전라북도 일대 및 충청남도 일부. 현종 9년(1018년)에 전라주도에 합병되었다.
삭방도
춘주, 화주, 명주 등 지금의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대. 정종 2년(1036년)에 동계가 되었다. 명종 8년(1178년)에 춘주(춘천), 동주(철원), 교주(회양) 등이 춘주도가 되었다가, 동주도, 원종 4년(1263년)에 교주도가 되었다.
 
 패서도     
서경(평양) 등 지금의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일대. 후에 북계로 개칭되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고려의 10는 중국 당나라의 10도를 본받고 만들어진걸로 알려져있습니다 !
 
지방관제의 최고단위로서의 도제는 995년 9월 10도의 제정에서 비롯된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집니다만.... 10도제의 많은 문제점은 그 성격에 대한 학설상의 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즉, 지방관제의 최고단위였으나 행정구획이 아닌 순찰 또는 감찰구획에 불과해 상주하는 장관은 없고 필요한 경우 수시로 중앙관을 파견해 그 구역을 순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10도의 경우, 북방의 진을 제외하면 도 밑에는 주,  현 만이 설치된 셈인데, 그것은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해 주는 기준으로, 128개의 주는 북방의 진과 함께 지방관이 파견된 곳이고, 현은 우리가 배워서 잘알듯이 속현과 주현으로 놔뉘어져 있었다네요.
 
또한 도의 장관을 관찰사(使)로 보고 관할지역을 관찰사가 순찰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1005년(목종 8) 도단련사·단련사·자사 등과 함께 관찰사가 없어짐으로써 10도라는 행정구획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5도호부와 12군절도사만이 남아 이것이 방백()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당나라 말기의 관찰사는 절도사와 단련사 사이의 외관으로서 당나라의 절도사 체제를 채용한 고려에서 관찰사를 10도의 장관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며, 전운사(使)를 10도의 장관으로 보고 전운사가 없어지는 1029년(현종 20)까지 10도제가 존속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되었다네요
 
아울러 10도가 전국적인 지리적 구획이며, 장관인 전운사가 행정적으로 조부()를 전운하고, 백성의 소송을 청리()했지만, 10도는 중앙정부와 주군 사이의 행정구획이 아니라 단지 조부 전운의 방면을 표시하고, 지방순찰의 구획일 뿐, 지방행정의 중심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주현의 외관들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1018년에 4도호·8목·56지주군사·28진장·20현령의 외관제가 성립된 뒤에는 주군과 유리된 10도의 의의는 더욱 감소되고, 마침내 현종 말년에 가서는 폐치되고 말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도제의 실시 이후에도 지방행정은 당나라의 생소한 도제보다 한국사회에 익숙해온 중요한 12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10도제가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어떤가요 ? 저는 교과서에서 이 행정제도를 보지를 못한지라...
 
10도제 자체는  소멸했지만 지방관제의 최고단위로서 일단 수용된 도제는 종래의 주 중심의 지방관제와 절충하면서 새로운 모습의 도제로 전환되어간다고 알고있습니다... 뭐랄까 처음이라서 미숙하고 중국 냄새가 많이나지만 이땐 모두가 처음이였으니깐요 헤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