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까지 자소서를 써본 적이 없어요.
자소서 쓰는 게 싫어서 고등학교때 상이며 스펙?이며 잔뜩 있었는데 지원도 안했어요. 알바도 과외같은 것만 했고요.
자소서를 쓰면 제 자신을 직시해야 해서 너무 무서웠거든요.
난 아무것도 없는데.
이번에 대학원 지원을 하게 되서 어쩔 수 없이 자소서를 쓰게 됐는데 눈물만 나오네요.
난 왜 열심히 살지 않았는지 자꾸만 후회가 돼요.
저는 노력을 안했어요. 솔직히 그닥 필요가 없었거든요.
뭘하든 큰 노력을 안해도 중간 이상은 할 수 있었어요.
생긴게 생긴거라 주변에서는 노력파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걸 혼내는 사람도 없었고, 부모님은 결과가 나쁘지 않았으니까 크게 뭐라하시지는 않았죠.
뭐든지 어중간하게 열심히 하지도 깊이 빠지지도 않으면서 살았어요.
그 결과가 지금의 저에요.
저는 특별히 못하는 게 없어요. 하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죠.
주변에서는 '잘한다' 소리를 듣지만 진짜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못하는 쪽이 되어버려요.
그랬더니 자소서에 쓸 수 있는 게 없는 거에요.
특기를 써야 하는데 쓸 수 있는 게 없어요.
수상 경력도 자격증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대체 뭘하면서 살아온 걸까요, 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건 참 많아요.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뷰티, 음악, 컴퓨터 등등
그런데 무엇하나 깊이 빠진 게 없어요. 깊이 아는 것도 없어요.
1에서 10으로 치자면 모두 3정도로 빠졌던 것같아요.
내가 아무것도 없는 건 알고 있었는데 눈 앞에 글로 보니까 뼈저리게 느껴져요.
그래도 전 정말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것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되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근데 지금은 과연 될 수 있을까하고 비관적인 생각만 들어요.
죽고싶다는 말을 정말 싫어하고 앞으로도 쓸 생각은 없지만 사람은 미래가 불안하면 그런 생각이 드나봐요.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져요.
이게 내 눈앞에 닥친 현실인데.
제가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려 하지 않았던 것도 있는데 자소서를 쓰면서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하니까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요.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충실한 인생을 살아왔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았지 싶어요
이런 느낌은 앞으로의 인생에 점점 많아지겠죠?
아직은 살아온 인생이 적으니까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겠죠?
빨리 이 감정이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