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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세월호에 무관심했던 이십대 후반 남성의 그것이알고싶다 관람기
게시물ID : sewol_500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인즈버그
추천 : 18
조회수 : 2221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6/04/17 0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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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개인적으로 타지에서 재난(?)체험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육군 모해안대대 격오지 소초에서 3개월 순환 형태의 경계근무로 군생활을 마쳤다.

격오지 특성 상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고, 인적이 드문 말 그대로 격리된 오지 생활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층부에서 보고 받는 내용 간의 괴리는 상당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군인들에게도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오늘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를 통해 세월호와 내가 처했던 재난 상황의 초동조치과정 

그리고, 상부와의 보고체계 전반에 대한 다소 거창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앞서 밝힌 대로 나는 육군 모해안대대 격오지 소초에서 상황병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병은 흔히 말하는 대대 본부의 지휘통제실이나 상황실에서 

본부 중대 병력들이 담당하는 2시간 단위의 근무 형태가 아니라

하루 2교대 혹은 3교대 형태의 소초 해안상황실 근무를 말한다.

근무시간은 하루 8-12시간이지만 매복진지 경계 근무를 나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몸은 편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아무도 상황병을 꿀 빤다거나 기합 잡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일말상초 즈음까지 근무하던 중에 사건이 발생했다. 

뜬금없이 쾌청한 토요일 오후에 소초 뒷산에서 불이 난 것이다.

발화 초기에는 뒷산 중턱에서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길래

당시 주간 근무 중이던 나는 상황실 내에서 함께 근무하던 TOD(열상관측장비) 관측병사와

설마 산불이겠냐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어느덧 쾌청했던 해안가 하늘이 옅은 연기로 메워지고 있었다.

당시 소초 내 간부였던 소대장과 부소대장, TOD반장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산불 원인이 그 즉시 규명되었는데

그 전날 대대 전체적으로 치러진 야간 ATT훈련 간에 미사용된 신호킷을

사건 당일 주간에 추가 훈련의 일환이라는 명목(실상은 미사용 신호킷 처리)으로

소대장이 잘 쉬는 병사들을 불러내 진지 내에서 약 10발 가량의 신호킷 발사를 주도했고

그 중 소대장 본인이 발사한 신호킷 하나가 영내 철조망을 넘어 뒷산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신호킷이 철조망 밖에 떨어졌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설마 불이야 나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대로 방치한 채 일과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화재 원인을 알게 된 우리는

소초 내 30명 가량의 병사와 3명의 간부가 투입된 화재 진압을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군대 특유의 보고 체계가 가동되었고 

소초-대대-연대-사단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를 

전화기 한 대와 상황병이었던 내가 혼자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처음 화재 소식을 인지한 대대는 당시 당직사관이었던 인사과장을 통해

화재상황과 피해규모, 민간피해위험성등을 체크했다.

그와 더불어, 외부기자나 외부차량에 대한 동태를 내게 묻는 인사과장의 행태가 이채로웠다.

이때까지는 상황병인 내 입장에서 신호킷 정도 뒷산에 떨어져 봐야 물 한 바가지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과 토요일 (소초내 휴무일은 따로 두지 않지만) 오후를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됐다는 푸념만 있었을 뿐 별다른 감흥 없이

소대장이 가서 지가 붙인 거 잘 끄겠지...하는 막연한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우선 간부와 병사들에 의해 급수된 물이 발화점으로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발화점은 소초 가장 높은 고지 헬기장 부근의 철조망 밖 20미터 지점

불을 끄기 위해선 철조망을 끊고 나가서 물을 공급하는 방법과

소초 입구를 통해 돌아나가서 물을 공급하는 것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옅게 흐려졌던 회색빛 하늘이 깜깜한 밤처럼 검은 연기로 자욱해 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상황실 전화기에도 불이 나기 시작했다.


산불 진화가 더뎌지자 상급부대 간부라는 이들은

안달이 나서 전화기에 대고 일갈들을 하기 시작하는데,

텅 빈 상황실에서 상황병이었던 내가 할 일은

"현재 진화작업 중이다. 소초장 현재 자리에 없다" 이 말 뿐이었고

사단이나 최소 연대 이상 고위 간부들 이외에 자기를 찾는 전화는 바꾸지 말라는 말과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 하라는 소대장의 명령을 받고

울려 대는 전화벨에 머리만 감싸 쥐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상황실에 내려온 TOD반장의 그을린 피부와 여기저기 긁힌 상처들로

철조망을 끊고 발화점에 급수와 방화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후 반장의 행동이 놀라운데, 여기저기 상처 입고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내려와

대뜸 내 앞에 놓인 전화선부터 뽑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미친듯이 울어대던 전화벨이 잦아들고 (짐작으론 산불도 잦아질 때 쯤)

반장이 한 말은 말단 격오지 부대에 상황발생 했는데 보고체계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었다.

선조치 후보고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기 싫으니까

책임 회피를 위해, 나는 이만큼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말단 격오지 소초에

상급부대 간부들이 줄 서서 전화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보고체계는 중요하고 군대 조직이 버티는 근간이지만

당장 영내가 불타 죽게 생겼는데, 보고체계가 무슨 소용이냐는 논리였다.

아닌게 아니라, 시시각각 호출해 대는 상급부대 지휘관들에 의해

방화 작업을 진두지휘 해야 할 소대장이 철조망과 상황실을 불나게 달리게 하는 그 행태는

발화의 책임이 그 본인에게 있다지만 일개 상황병인 내가 보기에도 가엽게 느껴질 정도였고,

그 일련의 과정의 무의미함, 비효율성, 군사회의 우둔함 등등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는 와중에

중대장, 민간소방대원(지역농민), 소방차, 엠뷸런스 등이 소초를 메우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불은 반장이 전화선 뽑기 전에 어느 정도 잡힌 상태였고,

이후에 들어온 민간소방대원분들이 잔불까지 말끔히 처리해주셔서

산불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가로세로 15평 남짓의 잿더미로 남았을 뿐이었다.

이후 대대장의 방문과 소초장의 사단장 직접 보고 등등 사후 처리과정이 진행됐지만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소초인원 전원이 함구한 채

심지어는 직속상관인 중대장조차 모르는 채로 일이 마무리 됐다.


나는 이번 주 "그것이 알고싶다" 를 시청하며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123정장과 VIP를 모시는 청와대의 많은 이들을 보면서

위에 적은 상황을 토대로 내가 진도 앞바다에 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123정장과 TOD반장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회의 곳곳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윗 선의 행태

그리고, 그에 우왕좌왕하는 말단의 부화뇌동 등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었다.

허탈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FM좋아하는 방화범 소대장에겐 자기가 싼 똥 치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사고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123정장은

보고서 좋아하는 VIP에게 바칠 사진 몇 장 찍느라 그 귀한 시간을 허공에 날렸다.

그러던 와중에도, 우리 소초에는 전화선을 뽑고 화재 진압에 몰두한 TOD반장이 있었고

123정에는...아무도 없었다.

그 차이가 내가 지금 이 새벽에 키보드 뚜들기는 결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부끄럽게도 세월호는 내가 처음으로

TV를 통해 본 남의 죽음에 눈물 흘린 사건이다.

세월호 2주기에 리본 하나 달지 못했지만 밤 늦게 시청한 "그것이 알고싶다" 는

내게 123정과 소초 상황실의 정황을 오버랩시키며

오늘 2년이나 지나서야 아주 입체적인 형태로 내게 다가왔다.

그로 인해, 처음 매체를 통해 접했을 당시의 피상적인 슬픔이 아닌

유사한 사건 진행의 직접 체험에 따른
 
일 처리의 무능함과 허무함, 한심함, 비통함이 마구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일으켰다.


흔히 하는 말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들 한다.

그럼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는 가라 앉는 것일까...

아이들이 탔어야 할 "구조" 라는 조각배를 VIP라는 거대한 뱃사공이 차지해 버렸던 것은 아닐까...


전 정권이 나를 분노케 했다면,

이 정권은 분노를 넘어선 우울감을 내게 준다.

끊었던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해 지는 밤이다.


철조망 밖에 떨어진 신호킷은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신호킷이 아니다.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하고 책임을 지우려는 이들에게

아이들은 지금까지 버려진 신호킷으로 취급 받고 있다. 

더불어, 그 가족들과 그들을 돕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한 "그것이 알고싶다" 였지만

무거워진 마음으로 키보드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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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한 저의 부족한 글보다

떠나간 어떤 이의 노랫말 한소절이

훨씬 가슴에 남네요...






노란리본.png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호 기억하겠습니다. 4.16  ▶◀




출처 http://blog.naver.com/rosebud07/220804609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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