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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문근영의 아픈 가족사
게시물ID : sisa_120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loud..y
추천 : 14
조회수 : 66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04/12/14 23:43:04
`어린 신부` 문근영(17)의 아픈 가족사가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문근영의 외할아버지 류낙진씨(77)는 `통혁당 사건` 등으로 장기복역한 통일운동가였고, 작은 외할아버지 영선씨(사망 당시 28세)는 광주민주화항쟁 때 진압군 총탄에 맞아 사망했던 광주열사였다는 것.

이는 19일자 일요신문에 게재됐고 문근영의 소속사 나무액터스의 김종도 대표가 확인해줬다.

김 대표는 "근영 양의 집안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또 그로 인해 피해도 많이 입었다"며 "이런 일로 근영 양을 비롯해 가족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널리 알려져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화투사 집안의 손녀딸` 운운하지 말고 그냥 여고생 배우 문근영으로 봐달라는 말이다.

또 그는 "근영 양이 바쁜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며 또 학업성적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며 "이는 집안 어른들이 올곧은 선비적 성격인데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근영이 통일운동가 집안의 손녀라는 사실은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외할머니 신애덕씨(73)의 얼굴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알려졌다.

신씨는 1971년 전남 보성의 중학교 교사였던 남편이 `통혁당 사건`으로 고정간첩으로 몰려 `빨갱이 가족`이란 딱지가 붙자 시장행상 보험외판원 등 어려운 삶을 꾸려왔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때는 시동생을 잃었다.

최근 문근영이 톱스타로 뜨면서 광주 재야계에서는 `문근영이 장기수였던 류씨의 외손녀`라는 말이 나돌게 됐다. 신씨의 얼굴을 알아본 재야에서 말이 나오게 된 것.

문근영은 `전시용`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에 앞장서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한평생 투쟁하고 외롭게 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영향이다. 문근영은 그동안 광주 `빛고을 장학회`에 2000만원을 기탁했고, 사회복지공동기금 1000만원, MTV `느낌표` 순천지역 `기적의 도서관 짓기`에 1000만원을 냈다.

또 북한 용천참사동포 돕기 바자회에 참석하고 또 북한에 연탄보내기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녀의 이웃돕기의 결정판은 얼마전 학생복 광고모델로 받은 3억원 전액을 소아암환자 돕기와 책읽는 사회운동본부에 기부한 것.

외할아버지인 류씨는 한국전쟁 직후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구속됐다. 이후 석방돼 문근영의 외할머니인 신씨와 결혼했고 71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후 20년형으로 감형된뒤 90년 전향서를 내고 가석방됐다가 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안기부에 검거됐고 이후 99년 감대중 정권에 광주재야인사를 중심으로 `류낙진선생 석방추진위`가 만들어져 99년 광복절 특사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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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좋아 할 수가 없자나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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