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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사랑니를 뽑았네유. 정말 악연이었습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3069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잠이
추천 : 0
조회수 : 3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4/19 18:39:06
마취가 풀리기 시작해서 마니 아프지만 뭐 그래도 드디어 몇 년동안 앓던 이를 다 뽑았습니다.
 
진짜 이 망할 사랑니들때문에 전 몇 년동안 무서웠어요.
 
그러니깐...... 일단 제가 사랑니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된 것이 대략 고등학교로 등산하러 갈 때였을 거예요 그 학교가 워낙 높은 곳에 있어서 올라가는 길만 해도 현 남산 등반길이랑 비슷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굽이치는 곳에 있어서 매일 아침 등교할 때마다 졸업할 때쯤이면 내 다리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헛된 망상도 빠지기도 했죠.
 
여튼 제 사랑니라는 놈이 잇몸에 잘 파묻혀 나던 놈이었는데 그날따라 밥이 맛난 것인지 뭔지 잇몸까지 씹어먹겠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사랑니를 덮고 있던 잇몸에 상처를 주면서 제 망할 사랑니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쬬.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조금씩 드러나는 놈의 자체를 바라보며 아 이거 희한하게 생겼나 보네 정도로 넘겼죠. 그러다가 정말 몇 년동안은 걍 무시하고 살 정도로 그러려니 했죠.
 
 그렇게 그러려니 하는 동안 오른쪽 이에서 점심식사의 깜짝 게스트로 나왔던 놈이 어느 사이엔가 왼쪽에 똑같이 생긴 제 형제를 더 모셔오게 되었고 한 번 특별 게스트로 나왔으면 그냥 나가야 할 놈들이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새로운 멤버로 전환하면서 제 어금니들의 맨 뒷열에서 양치질하면 제대로 닿지도 않는 위치에서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이쯤 되면 그냥 뽑으면 될 것이지 뭐가 그리 대수라고 하면서 말할 법도 하죠? 네, 그래서 동네 치과가서 물어봤죠 그 당시 동네 치과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가끔 세미나 하러 가기도 하는 아주 놀라운 실력을 가지셨다고 자부하시는 의사쌤이 계시는 치과로 가서 제 사랑니에 대해 상담했죠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거 못 뽑아요."
 
 ???
 
 아니 사랑니 하나 뽑는게 뭐 대수라고 이걸 못 뽑아요 라고 여쭤보니 제 사랑니라는 놈들이 전부 눕혀서 나오셨다는데 하필 누운 자리가 제 신경이랑 연결 된 곳 바로 위라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 몰라 그럼 어떻게 해요 하니깐 좀 더 큰 병원 가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은 어디 딴데로 이사가고 현재 사일런트 힐에서 나올법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서울 중대병원이 제 두번째 목적지였죠. 뭔 이 하나 보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문적이냐 싶었는데 어휴 이 놈의 병원의 치과는 좀 다르긴 다릅디다.
 
 딱 들가자마자 몇십분 기다리게 하고 겨우 제 차례가 되어서 들어가보니 이게 뭔지 의사 수만 해도 꽤 많아 보이는데다 동네 치과에서 2, 3개 정도밖에 보이지도 않는 그 공포의 진료대가 의사 앞에 하나씩 거의 열 몇대가 있더군요. 뭐 이딴데가 있나 싶어서 일단 앉아서 사랑니가 썩은 것 같다. 덕분에 턱도 좀 아픈 것 같다 면서 제 개떡같은 친구에 대해서 설명하니 일단 엑스레이나 찍자면서 찍어서 보곤 하시는 말씀이,
 
 "아, 이거 안 뽑아도 돼요."
 
 ???
 
 이건 또 뭔 소리야, 내가 이가 아파서 왔다는데 이걸 안 뽑는다고?
 
 그 다음부터 뭐라뭐라 지껄이기는 했는데 제 입장에선 이미 제 앞에서 지껄이고 있는 의사의 이름과 내가 진찰받기로 한 의사의 이름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부터 하고 있던지라 기억도 안났습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사랑니 보다는 턱 교정을 위해서 이러한 교정기가 있다면서 이거면 안 아플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장사치 아저씨의 말밖에 없네요.
 아, 이 인간 어디서 봤나 했더니 혹시 TV 쇼핑몰에서 봤나 라고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그 다음으로 발을 옮긴 것은 순천향병원이었습니다. 동네 주변에 병원은 꽤 있어서 덕분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지만 영 시원치 않은 진찰결과에 거기다 턱 교정기를 사시면 이러한 사은품까지 드립니다 같은 개소리를 들었던 터라 설마 이 이상의 개소리를 듣겠냐는 심정으로 순천향병원 치과에 들어갔죠.
 
아 젠장, 설마 더 심한 것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 이거 뽑으면 큰일나겠는데요? 여기에 싸인해주시겠어요?"
 
 ????
 
 싸인해달라고 하면서 준 종이가 무슨 서류인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거기에 적혀져 있길 수술 하다 잘 못 하면 님 책임 이라는 글귀를 보고 영화 괴물에서 박해일이 자기 잡으려던 형사에게 외친 그 명대사 'X까'가 제 입구멍 언저리까지 왔다갔다 했지만 그래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왜 이런 서류를 주는지 여쭤봤죠.
 그랬더니 그 동네 치과의 서울대 세미나 다니신다고 하시는 그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랑 똑같이 말씀하시더라구요. 그제서야 '아, 그 선생님이 그래도 실력은 있으신가 보구나.' 라고 감탄하며 그냥 나왔습니다.
 
 그 후로 다른 병원은 갈 생각도 안 들었지만 부모님은 제가 계속 이 아프다면서 병원에 가서 왜 그냥 오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어디 여기보다 제일 큰 병원이 있겠냐며 서울대병원까지 가긴 갔는데, 거기서도 순천향병원에서 들었던 말과 비슷한 말만 듣게 되었죠.
 
그쯤 되니 아 이건 대체 뭐 어떻게 해야 하냐 싶더라구요. 아프기는 많이 아프냐고 물으면 그렇게 아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끔씩 있잖아요? 나름 이를 잘 닦고 왔다고 생각은 했지만 갑자기 이가 시리거나 잇몸이 퉁퉁 부은 것처럼 살이 오르는 정도의 아픔이었죠. 그래서 뽑기도 힘들고, 거기다 뽑을 때 무지 아프다는 사랑니 그냥 내 가족처럼 어루만져주고 냅두자 라며 포기했었죠.
 
1년전까지만 해도요.
 
1년 전의 저는 어느 동네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이리저리 뛰댕기곤 했습니다. 특별히 아픈 구석은 없었지만 나름 희귀병에 걸려서 보통 사람보단 헤벌레 멍때리는 경우가 많은 탓에 주민센터에서 잡일을 하고 있었죠.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랑니는 그냥 어쩌다가 아야 하는 정도였는데 그 때는 조금 달랐어요.
 
엄청 아팠죠. 어렸을 적에 의학만화에서 그 책의 주인공 캐릭터가 자다가 아아야ㅑ야야야ㅑ야야 하면서 치통때문에 고생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당시의 저는 그걸 보고 이가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겠냐 라며 만화의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모습을 비웃었지만 그 때의 제가 아마 그 캐릭터만큼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갑자기 일어나니깐 엄청 아팠어요. 그 충치때문에 잠깐 고생했던 때보다 아프고 그 충치 고친다고 몸부림치느라 무슨 동물 묶어두는 그물망까지 동원하면서 겨우겨우 치료한 충치보다도 엄청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그 날따라 엄청 아픈 거였어요.
 
평소에 멍 때리기는 해도 잘 움직이던 제가 끙끙 앓으니 주변 사람들도 치과에 가보라고 말씀들은 하셨지만 아픈 부위가 사랑니 쪽인 것을 안 저는 가봐야 소용없다고 했었죠. 그래도 진통제 정도는 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잠깐 치과 갔다온다는 결재를 받고 주민센터 근처에 있는 치과로 갔죠.
 
뭐 그 치과로 말하자면 허름하기는 하지만 꽤 큰 곳이라고 해야하나, 큰 것에 비해 안에는 뭐 특별한 것이 없어보인다? 그런 표현이라면 적절하다고 생각하네요. 안에는 나이 많아 보이시는 의사 선생님하고 간호사 아주머니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 곳이었어요.
 
일단 진료를 해야하니 늘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공포의 진료대에 몸을 기대고 의사쌤은 제 이를 찬찬히 보시기 시작하셨죠.
 
 "어, 이거 사랑니가 눕혀서 나왔는데...... 썩었네요?"
 
 "아, 그쳫?"
 
 "진료할 땐 말씀하지 마세요."
 
 "녜헿"
 
 "이거 뽑아야겠는데요?"
 
 "녜헿???"
 ????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이 의사선생님이 뭐라 말씀하신거지? 뽑는다고요? 뭘요? 제 이를요?
 
 진료가 끝나자마자 전 제가 잘 못 들은 것인지 다시 확인해봤죠, 그리고 제 이에 대한 내력까지도요. 그리고 그걸 다 들으신 의사선생님은 쿨하게
 
 "아 됐고 뽑으려면 지금 뽑아줄 수 있어요."
 
 제가 모태신앙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독교에 대한 신앙은 매우 없는 편입니다. 지 잘 믿는지 어떤지 확인하려고 들었다 놨다 하는게 뭔 신인가요 밀당하는 여자 아니면 줬다 뺏어가는 양아치 새끼지. 여튼 종교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저도 그 순간만큼은 이 의사쌤이 혹시 신이 아니신가 싶었습니다.
 
 엑스레이 찍어보자 말씀하셔서 바로 엑스레이실로 가서 찍은 다음에 마음이 바뀌시진 않으셨나 다시 여쭤보니
 
 "흠.... 좀 깊이 있긴 한데..... 그래도 뽑을 수 있어요."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지나갔죠. 그 날 처음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아팠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렇게 통쾌하고 상쾌한 순간은 없었죠.
 
 거울을 보고 다시 확인해봐도 오른쪽 열 맨 뒷쪽에서 검게 썩은 얼굴로 절 보며 늘 비웃던 그 놈이 없었습니다. 대신 흰 거즈 위에서 뭐가 부끄러운지 뿌리를 베베 꼬면서 치부를 드러내고 있던 못생긴 사랑니가 있었죠.
 
 선생님도 이렇게 뿌리가 뒤틀린데다 튼튼하게 나온 놈은 흔치 않다면서 웃으셨고 저는 여전히 엄청 아파왔지만서도 같이 웃었죠. 그리고 덤으로 왼쪽도 뽑아야 한다면서 제 웃음을 날려버리시기도 했지만.
 
 그리고 오늘, 왼쪽 맨 뒷열에 있던 두번째 불청객도 뽑혀나갔습니다. 1년 전에 제가 엄청 아파했던 걸 기억하셨는지 생으로 팍 하고 뽑진 않으시고 짜잘하게 잘라서 뽑아주시더라구요. 그래도 전 아프다고 징징 거렸지만....... 제가 엄살이 너무 심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ㅠ
 
 오늘 뽑은 이가 어떤건지 보려고 하니 말그대로 토막이 난 상태라 어떤건지 못 봐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선생님이 손수 조각을 맞춰주시더군요. 그리고 저도 이런 이가 사람한테서 난다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습니다. 세상에 무슨 이빨 뿌리가 사람 새끼손가락 손톱만하게 나올 수가 있나요. 대체 저런 이가 왜 저한테서 나오게 된 건지 모를 일입니다.
 
여튼 저를 몇 년동안이나 괴롭혀 왔던 사랑니가 드디어 다 뽑혀져 나가서 기분이 매우 좋네요. 이 기쁨을 다른 사람한테도 표현코자 잠깐 앉아서 써봐야징 하고 있는데 벌써 30분이 넘어가네요...... 제가 글솜씨가 이렇게 없단 사실이 슬퍼지네요. 뭔 이 두개를 뽑는 이야기 적는데 이렇게 시간을 쓰다니.......
 
뭐 쨌든 그렇다는 앓던 사랑니를 뽑아서 좋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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