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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게시물ID : freeboard_12049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랭이물범
추천 : 1
조회수 : 15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2/25 02: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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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독특한 것이어서  
간절히 원할 때는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다가, 
불시에 이미 잊어버린 낡은 시간 조각들을  
던져주곤 한다. 


  크리스마스 때였다. 유치원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온다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신나했고 나도   소기의 목적 달성을 꿈꾸었었다. 내 생각에  그 해 나는 잘 울지도 않고 활동도 잘 하는  매우 착한 어린이었으니까. 분명 카드에 적었던  선물을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두의 기대 속에 등장한 산타는 어린 눈에도  어설프게 보였다. 흰 수염으로 이목구비를 가렸으나  군데 군데 보였던 익숙한 존재의 얼굴.  그가 산타가 아닐 거란 의심은 내놓은   선물 꾸러미를 보고 눈녹듯 사라졌다. 


 형형색색의 포장지로 쌓인 선물 중에  가장 크고 좋은 것이 내 것이길 바랐다. 한 명씩 호명받아 제 몫의 선물을 받아오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내 차례를 곱씹었던지.


 마침내 마주한 익숙한 외모의 산타에게   당당히 두 손을 내밀었을 때 그가 쥐어준 것은  조그만  선물이었다. 그 많은 선물 중에서 하필 제일 작은. 기대감이 폭삭  가라앉았다. 아니 무너져버렸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삼키며 자리에 돌아왔다  
옆에서는 받은 선물을 모두 자랑하느라 바빴다.   최신 인형, 로봇, 소꿉놀이 등등 좋은 것을 받은 
친구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  


이 화려한 선물들 앞에 내 선물은 지극히 작고  초라했다. 착한 어린이라고 자부하고 살았었는데  내가 가장 작고 보잘것 없는 선물을 받다니 
 이런 생각에 자꾸만 속이 상하려고 했다. 
 그래도 작은 기대를 걸어 선물을 열어보았다. 

 하얀 양말과 그 안에 사탕 한 뭉치. 

그제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분명히 산타가 원하는 착한 어린이 역할을  충실히 했는데 원하는 선물을 주지 않다니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에 사기였다.   서럽게 우는 나에게 유치원 선생님이 다가와  다음 번엔 더 좋은 걸 줄거란 말로 나를 달랬다.  이미 신뢰가 깨진 나로선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쓸쓸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나고  집에 와서 만난 엄마에게 두 번째 설움을 토했다. 
 엄마 산타가 나한테 거짓말 했어.. 
엉엉 울면서  하얀 양말을 원망스레 내밀자
엄마가 문득,  미안하다고 했다. 
영문 모르는 말이었지만  엄마가 내 편을 들어준다는 것에 더 서러워  한참을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양말은  신었던 기억조차 없다. 
버리진 않았을 텐데.  


나중에서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받는 선물은  부모님들께서 준비하는 것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그 때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엄마는 무난하게 예쁜 양말과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넣어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 보냈다는 것도. 


작은 내 동심을  지켜주려고 준비한 것이 도리어 내 슬픔을  서러움을 증폭시키게 될 줄은 몰랐을 엄마가 그때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른이 된 지금이 되서 가끔 이 기억이 떠오르면  여전히 울고 싶어진다. 소박한 선물을 받아  서러웠던 마음 때문이 아니라  나를 다독이며 미안해 하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아서.
미안했어요 엄마.  그리고 고마워요. 
올 해부턴 내가 엄마의 산타가 될 게요 :) 

 
출처 어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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