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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같은 노트가...걸레짝이 되었습니다.
게시물ID : gomin_1205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GlrZ
추천 : 10
조회수 : 1323회
댓글수 : 166개
등록시간 : 2014/09/18 21:30:03
안녕하세요. 23살 여징어에요.

저는 올해 치뤄진 공무원 필기 시험을 합격했어요. 첫번째 시험에서 탈락을 하고 또 다시 일년동안 공부에만 이번 시험에서 높은 점수로 합격했어요. 

공부하는동안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노트가 생겼어요. 한국사 노트. 이 노트에는 지난 2년동안의 제 모든게 담겨있었죠. 펜을 쥔 손이 굳은살로 울퉁불퉁해지고 중지가 휘어지고 꾹꾹 눌러쓰는터라 손목에 무리가 가도 이 노트만 보면 행복했어요. 

필기에 합격하고 책상을 정리해도 이 노트만은 안버렸어요. 나중에 한번씩 읽어보고 부끄럽지만 미래의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요.

그러다 지난 주말, 동네 아는 아주머니께서 찾아와 저한테 공무원 필기 합격했다며 축하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했더니 자기 딸이 고3인데 국어랑 한국사가 약하다며 혹시 공부한 거 있으면 달라고 하시는 거에요. 

참고로 공무원 한국사나 국어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심화된 내용이에요. 물론 시험의 유형은 다르구요.

조금 놀랐지만... 자기 딸 좀 살려달라는 통에 완전히 주는건 불가능하고 하루 빌려드릴테니 동네 인쇄소에 가서 복사하시고 돌려주시라고 했어요. 꼭 돌려주셔야한다고 제가 아끼는 거라고 간곡리 말씀드렸구요. 아주머니께선 알았다며 그러겠다 하셨어요.

근데... 3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거에요. 저희 엄마랑도 친하셔서 번호도 아시고 저희 집도 아시는데... 먼저 전화드려도 묵묵부답...

결국엔 제가 찾아갔어요. 갔더니 아주머니 딸만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난 몇동 몇호 누구인데 너한테 노트빌려줬었는데 필요해서 가지러왔어. 하면서 노트좀 달라고 했더니 없대요.

왜 없냐고 했더니 잃어버렸대요.

여기서부터 전 완전히 넋이나가서 내가 분명히 복사하고 주라고 했는데 잃어버렸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했더니 모른대요. 어이가 없어서 눈물만 났어요.

계속 어딨냐고 내가 찾겠다고 방방 뛰면서 우니까 얘가 모른다더니 친구한테 빌려줬는데 걔가 다른 애한테 빌려줬다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고 나가라고 집에서 나가라고만 하는거에요.

그 말을 들으니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가 되고 눈물닦고 정신차렸어요. 

그리고 그럼 네 친구어딨냐, 번호대라, 아니면 지금 재물손괴죄로 경찰에 신고하겠다, 동네 창피당하고싶냐? 네 것도 아니면서 함부러 남 빌려주냐? 네 담임 누구냐? 내가 네 선배니 너네 학교가서 네 담임이랑 얘기하겠다고 했죠.

학교 얘기 나오니 겁났는지 빌려준 친구한테 부랴부랴 전화하더군요. 빌려준 친구는 다른 반 애한테 빌려줬고 그 다른 반 애한테 전화해보니 아파트 근처 학원이라며 이쪽으로 오면 주겠다고 했어요.

아주머니 딸 질질끌고 학원에 가니 껄렁하게 생긴 여자애가 노트를 툭 던져주는데.. 

여기저기 볼펜자국에 수업받으면서 봤는지 노트 빈부분에 필기되어있고 조선파트는 잘라져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노트만 보면서 울었어요... 2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걸레짝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한시간정도 걷지도 못하고 학원상가에 앉아 울었어요....

지금 너무 힘들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국어 노트는 아주머니 딸이 학교 가지고 가서 자랑했다가 잃어버려서 찾을 수도 없구요.

일단 집에 왔는데 법적으로 어떻게 할순 없겠죠.
현명하신 분들 조언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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