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를 처음 보고 나서 든 느낌이죠. 분명 재미있는데, 엄청 재미있는데 결말을 보고 나면 찝찝해요.
마치 볼 일 보고 밑 안 닦고 난 것 처럼, 마치 미해결된 사건을 본 것 같은 여운이 남죠.
그래서 저는 "MCU 영화 시리즈로 봤을 때는 수작이지만, 캡아 트릴로지의 장식으로서는 아쉬운 작품." 이란 평이었죠.
그러나 저의 평은 감상을 하면 할 수록, 다시 보면 볼 수록 "캡아 트릴로지로서도 멋지게 마무리한 작품."으로 바뀝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시빌 워를 감상하실 때 어디에 포인트를 두느냐가 첫째입니다.
그리고 이 포인트는 시빌 워가 어벤져스가 아닌, 캡아 단독 타이틀로 나와야만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빌 워를 이끄는 중심 캐릭터는 두 명은 어디까지나 캡틴 아메리카(이하 캡틴)와 아이언맨(이하 철남) 입니다.
영화 시빌워는 사실상 이 2명의 대립이기도 합니다.
중간에 버키를 두고 대립하지만, 어디까지나 캡틴과 철남의 대립 구도라는 점을 영화는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요!
그런데 이 대립 구도가 참으로 묘하고 흥미롭습니다.
겉으로는 둘의 신념, 즉 소코비아 협정과 버키가 대립의 근본적 원인 같지만, 숨겨진 요소가 또 하나 있다는 점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협정, 버키 등의 일련의 사건이 둘이 대립하게 된 불씨가 된 것은 맞으나, 그 불씨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를 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선의에 의한 행동이라는 점입니다.
스티브(캡틴)는 토니(철남)를 위해서
토니(철남)는 스티브(캡틴)를 위해서
둘이 치고 박고 싸우지만, 그들이 서로 싸우는 행동의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성적인 요소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지요.
사실 캡틴 단독 영화에 철남이 등장한 것은 이미 캡틴 1편부터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인물 때문이죠. 하워드 스타크
그는 토니 스타크에게 있어 애증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캡틴인 스티브 로저스의 전우입니다.
1편에서 캡틴이 실종되고 하워드 스타크는 캡틴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칩니다. 토니 역시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1편에서 아버지인 하워드가 캡틴을 잃은 것처럼, 아들인 토니 역시 3편에서 캡틴을 잃죠).
즉, 캡틴과 철남이 조우하기 이전부터 접점은 있었고, 이 둘의 만남은 그 의미 면에서 서로 각별합니다.
MCU 이전 작품 내내 철남은 캡틴을 '꽉 막힌 꼰대'처럼 비아냥거리고,
캡틴은 철남을 '철없는 조카(혹은 아들)'같다고 못마땅해 하죠.
그런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캡틴과 철남은 서로를 그 누구보다 신뢰하고 인정하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벤져스 2를 보시면 철남은 어벤져스의 보스는 자신이 아니라 캡틴이라 말하고, 캡틴은 철남이 울트론이란 역대급 병크를 터뜨렸음에도 쌍둥이로부터 철남을 변호하죠.
대칭점에도 있는 것과도 같은 둘의 관계는,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고, 서로가 상호보완함으로써 어벤져스를 결집시킬 수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투닥거리긴 해도 서로를 신뢰하는 모습이 MCU 작품마다 드러납니다. 마치 츤데레처럼.
먼저 철남
어벤져스 2에서 스칼렛 위치에 의해 동료들이 모두 사망한 환상을 보게 되죠. 그 환상에서 철남을 비난한 캐릭터는 다름 아닌 캡틴이었습니다.
굉장히 상직적인 장면이죠. 철남이 캡틴을 그만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니깐요.
시빌워에서는 협정에 찬성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어벤져스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캡틴에게 말하죠.
여기서 어벤져스는 동료들을 가르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캡틴의 집이기도 합니다. 이 말에 캡틴도 마음을 돌립니다. 그의 말에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철남이 캡틴 무리를 잡으러 간 것은, 캡틴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로스 장군이 특수부대를 파견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이로부터 인명피해가 안 나도록 철남 입장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죠.
엔딩 직전에서 혼자서 캡틴을 찾아 간 것도 팔콘의 부탁 그대로 '친구로서' 캡틴을 돕기 위해 간 것입니다.
마지막 개싸움에서 "나도 친구였잖아..."란 대사는 철남에게 있어 캡틴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죠.
다음으로 캡틴
캡틴이 영화 내내 "내 친구 버키."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내 친구 토니."를 부릅니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의견이 분분할 때 토니는 입을 다물고 있었죠. 어벤져스 멤버가 철남은 왜 입을 다물고 있느냐고 묻자 캡틴이 한 마디 합니다.
"그가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이 한 마디는 캡틴만큼 철남을 이해하는 인물은 없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의 침묵에서 캡틴은 철남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자리에서 이미 간파한 유일한 인물이죠.
그리고 영화 중반부에서 캡틴은 철남의 말에 마음을 돌려 협정에 사인하려고 하죠.
이게 캡틴 입장에서는 엄청난 결심인데, 그 이유는 캡틴이 친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죠.
캡틴은 신념에 의해 살고 신념에 의해 죽는 캐릭터고, 캡아2: 윈터솔져의 사건을 겪으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철저하게 고수하게 됩니다.
캡틴 입장에서 소코비아 협정은, 영웅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이죠.
그런데 철남의 설득에 자신의 신념을 내려 놓고 사인하려고 합니다!! 꽉 막힌 꼰대가 친구를 위해 타협점을 찾는 장면이죠.
어벤져스 1때부터 둘이 말다툼하던 것을 떠올리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비록 감금 병크로 결국 집었던 펜을 다시 내려놓긴 하였지만...
캡틴과 철남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슬.프.게.도.
서로를 위한 최선이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 이 영화 최대의 딜레마입니다.
캡틴과 철남이 서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은 서로가 치고 박고 싸우게 만들었죠. 그것도 대판. 영화보고 난 관객들도 편 갈려서 싸운다 카더라
철남이 캡틴을 지키기 위한 행동은 공항에서 무력 충돌이란 결과를 낳았고,
캡틴이 철남을 지키기 위한 행동(토니 멘탈을 우려하여 진실을 덮은 점)은
철남에게 배신감을, 종국엔 누군가는 죽을뻔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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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애비가 만든 방패! 니 애비를 죽인 펀치!
히어로 캡틴과 철남이 아닌, 스티브와 토니로서 선의로 했던 행동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고,
히어로인 캡틴과 철남으로서 한 행동은 빌런으로부터 세상을 구했음에도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영화 처음 보고 남은 찝찝함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죠.
선의로 행한 행동이 해피 엔딩이 아닌 분열이란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
심지어 빌런인 제모 남작(이 영화 갓갓 캐릭터1)은 바로 이 점을 통해서 어벤져스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이 선의를 위한 행동을 역으로 이용함으로써(!) 어벤져스를 분열시킨 것이죠.
결국 관객들은 트릴로지로서 깔끔한 결과를 기대했지만, 현실이란 언제나 딜레마를 안고 있으며, 모두가 행복한 결과란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재확인하게 되죠. 그것이 선의에 의한 행동일지라도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캡틴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한 번 던져봐야 합니다.
그러나 제모남작은 말합니다. "완전 파란 눈인줄 알았더니, 네 눈에도 녹색이 있다고."
여기서 완전히 파란 눈이란 흠없고 고결한 이상적인 영웅을 상징한다면, 녹색은 인간으로서의 결점과 흠을 상징합니다.
결국 최초의 히어로인자 전설적인 존재, 그리고 가장 영웅다웅 영웅이라 칭송받던 캡틴 역시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시빌워란 영화는 말합니다. 숭고한 위생을 위해 구르는 캡틴이지만, 그 역시 무고한 희생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내전이 발생한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 점이 시빌워가 캡아 트릴로지로서도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히어로란, 또 히어로가 되고자 하는 것은 숭고하고도 위대한 것이지만, 그러한 선의와 행동 역시 흠 없고 완전무결할 수 없다는 점. 또 그로 인한 딜레마는 우리로 하여금 철학적인 주제마저 던져줍니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위한 영화로서 베스트는 바로 캡틴 아메리카입니다.
캡틴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적어도 마블 세계관 내에서 이 주제를 다루기에 더 적합한 캐릭터는 찾을 수가 없죠.
그리고 루소형제는 찝찝함만 남겨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블랙팬서(이 영화 갓갓 캐릭터2)의 선택으로 영웅으로서 남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캡틴은 이 영화를 통해서 가장 이상적인 영웅이란 명성에 흠집이 났지만
(방패의 흠집은 이러한 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끝까지 관철시킴으로써 자신의 이상과 친구들을 지킵니다.
그가 철남의 행동을 저지한 것은 친구 버키를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친구 토니를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죠.
토니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아이언맨으로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며, 그러한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은 바로 캡틴, 아니 스티브였습니다.
비록 캡틴으로서의 상징인 방패도 버려(사실 이 장면은 스티브와 토니의 서로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음을 보여주죠) 모두가 찬양하던 캡틴으로서는 더 이상 남을 수는 없지만, 캡틴이 아닌 인간 스티브로서는 한 층 성장하게 된 것이죠.
시빌워 이전까지의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로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뿐, 변화한 세상에서 자신이 있을 곳은 못 찾던 캐릭터였으니깐요.
그러나 트릴로지의 마지막에 그는 수중감옥에 갇혀 있던 친구들을 구하고(여기서 현대의 사이드킥인 팔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죠), 그의 죽마고우인 버키를 보호하였고, 지들은 인정 못하겠지만 서로에게 너무나도 각별한 토니를 위해 스티브로서 언제든 도우러 가겠다고 편지를 남깁니다.
현대와 단절된 존재인 캡틴이자 스티브인 그가 어느정도 현대에서의 유대감을 찾게 된 것이죠. 비록 상처가 남은 결말이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캡틴 아메리카 트릴로지로서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장면을 올리며 이 글을 맺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