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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그는 의사인가? 장사꾼(외교관)인가?
게시물ID : history_120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울루랄라울루
추천 : 5
조회수 : 7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15 23:13:28
캡처.JPG
우리에게 드라마 '제중원'으로 잘 알려진 알렌~
 
하지만 알렌은 제중원에서의 일보다 미국공사관에서 일하면서 명성을 더 떨쳤는데요
 
그럼 알렌에 대해 알아 봅시다.
 
(1) 알렌의 생애
•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주 딜러웨어 출생.
• 1883년 마이애미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 수여.
• 1883년 5월 17일 메신저(messenger)와 결혼.
         10월 중국 상해에서 의료선교 활동.
• 1884년 9월 14일 인천 제물포에 도착 → 9월 22일에 서울 토착.
•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때 민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함.
• 1885년 2월 29일 광혜원 건립 → 후에 제중원으로 개칭.
• 1887년 지나친 정치활동으로 미국장로교선교부와 갈등을 빚어 의료선교사를 그만 둠.
• 1887년 8월 주미 한국공사관에 참찬관(參贊官)에 임명 → 10월 미국으로 떠남.
• 1889년 6월 참찬관의 직책을 마치고 들어옴.
• 1890년 7월 9일 주한미국공사관 참찬관에 임명.
• 1897년 7월 27일 주한미국공사관 변리공사(辨理公使) 겸 총영사로 임명.
• 1905년 3월 29일 1903년 친일정책을 주장하는 루즈벨트와 면담 후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서 해직됨.
• 1905년 6월 9일 오하이오로 떠남 → 후에 『Things Korean』등 을 편찬.
• 1932년 12월 11일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74세 나이로 사망.
 
알렌의 생애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해준 사건입니다.
본래 선교사로 들어와 큰 활동을 못하고 있었는데,
갑신정변때 칼에 맞은 민영익을 외과수술로 살려냈죠.
이후 명성황후의 눈에 띄게 되었고 고종에게도 잘 보여 '제중원'을 설치하여 의료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종과 친분이 있는 알렌을 이용해 미국이 정치적으로 접근을 하죠
알렌도 이에 부응하여 외교관일을 시작하면서 제중원에서는 그만두고 외교관일에 치중하게 됩니다.
 
 (2) 의료선교사 알렌
• 1884년 9월 20일 제물포(인천)에 도착하여 우리나라에서 의료선교사 활동.
  → 한국 기독교 선교 첫 해가 됨.
• 1885년 2월 29일 민영익을 살린 공으로 광혜원(제중원) 건립.
  → 의료선교활동에 합법적인 보장받게 됨.
• 1886년 제중원내에 의학교 설립.
  → 한국에 서양의술의 보급 및 서양의학교육을 실시함. → 현재 세브란스 병원(연세대병원).
• 학교와 교회의 부지를 구입하여 선교활동을 활발히 함.
  → 경신학교를 동료선교사 언더우드(H.G Underwood)와 경신학교를 세움.
  → 우리나라에 많은 장로교를 세움.
• 1887년 지나친 정치활동으로 미국장로교선교부와 갈등을 빚어 의료선교사를 그만 둠.
• 알렌이 끼진 영향
  → 한국근대의학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
  → 개신교 특히, 장로교 전파에 가장 큰 영향.

 
알렌은 기독교에선 최초의 선교사라고 인정받는 인물로 기독교가 엄~~~~청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우리나라에서 업적을 남긴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현재 연대병원을 세웠습니다.
하. 지. 만 알렌은 이러한 의료와 선교 업적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순 없습니다. 그 이유는
외교관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이권을 죄다 팔아버립니다....
자세히 볼까요?
 
알렌이 중개한 미국의 이권침탈
 ① 운산금광
  - 알렌이 고종에게 금광이권을 미국에게 줄 것을 제안. → 미국인 무역가 모오스(J. R. Mores)
    와 운산금광 채굴 계약 성립.(1895) → 을미사변으로 중단 됨. → 운산금광 특허권 재조인. (1896) → 헌트(S. J. Hunt), 파세트(J. Fasset)에게 모오
    스가 개발권을 팜.(1897) 
 - 내용: 1939년 3월 27까지 채굴, 대한제국에 수익의 1/4을 주기로 했으나 1899년 10만 불로     주식을 삼. 해마다 세금으로 25000원 상납.
 - 결과: 1939년 3월27일까지 운산금광 채굴, 900만 톤 금광석 생산, 순이익 1500만 불 - 1경6152조,      (대한제국의 이익: 10만 불), 운산금광일대 산림
   채벌권도 획득.
 ② 철도이권
  - 알렌이 고종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요구하여 모오스와 계약 체결.(1896) → 공사 중 자본이 다 되어 일본 경인철도인수조합에 200불에 판매. → 노
    량진에서 인천까지 철도 개통.(1899)
  - 내용: 13개조 계약서 - 5조: 철도의 공사용ㆍ운전용 재료의 도입에 무관세, 철도 회상의 수입에도 무관세./ 11조: 본 철도가 완성된 후 15년이 경과 할 경우, 한국정부가 본  철도의 재산을 당시의 시가로 매수할 수 잇다. 만일 매수할 수 없을 때는 본 허가는 10년간 계속하는 것으로 한다
  - 결과: 최초의 철도 허가서. → 이 후 철도 계약서의 표본이 됨.(경부ㆍ경의철도)
 ③ 전기사업
  - 콜브란, 보스트윅이 알렌을 통해 시내에 전차와 전기 가설권을 획득.(1898) → 고종이 20만으로 한성전기회사 설립.(사장: 이채연) → 콜브란과 보스트윅은 공사 청부사업자.→ 동대문에 발전소 건립. → 서대문~홍릉(민비릉)사이에 전차개통.(1899) → 민간용 전등 설립.(1900)
  - 내용: 콜브란, 보스트윅에게 공사 청부를 맡김, 공사비용 및 수수료도 주기로 함, 전차의 운영권 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은 책임이 없음.
  - 결과: 공사중 생긴 사건(군중이 철도 파괴)으로 인해 콜브란 등에게 손해배상을 지불.  → 한성전기회사가 채무관계로 담보로 잡힘. → 한미전기회사로 개칭. → 엠파이어  트러스트회사의 지배를 받게 됨. → 일본의 압력으로 회사 권리 170만원에 판매.(1909)
 

 
보시면 아시듯이 알렌은 고종에게 이런 저런 계약을 권유하고 중개를 합니다. 그런데 그 계약 내용이...쫌....조선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을의 입장입니다.
알렌은  선교활동보단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당시 미국공사 '씰'이 임기가 끝날무렵 재임을 본국에 요청했는데 알렌이 미국의회에 로비를 해서 씰의 임기가 1년이 남은 기간에 미국공사가 되버립니다. 그리고 제중원 동료들과 정치활동에만 관심을 쏟아 갈등이 많았 었죠. 그는 외교활동을 하면서 미국에게 이권침탈을 중개했습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중개료를 받아 챙겼죠...
당시 고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알렌이였기 때문에 미국은 알렌을 통해서만 일할 정도로 알렌은 중간에서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게다가 알렌은 조선을 위해 일한 인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 베델처럼 한국을 사랑하고 위한 인물이 아닌, 오로지 사업을 위한 인물이였습니다
알렌의 입장에서 조선은 좋은 중개사업거리였습니다.
알렌의 입장에서 조선을 더 수탈하기 위해선 조선은 중립국으로 오래오래 남아야 했죠
그래서 러시아가 강세할 떄는 친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일본이 강세할 때는 미국에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루즈벨트에게 말하가다
공사직에서 물러날 만큼 조선의 중립과 독립을 위했습니다. 고종이 이런 모습이 조선을 위하는 것인줄 알고 많이 감동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점차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진행하자 알렌은 미국에가서 조선은 어쩔 수 없는 민족이라며 비난을 하기 시작합니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기 전에 알렌에게 이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알렌은 이를 거절합니다....
즉 알렌은 조선보다 본인을 위한 인물이었죠.
 
알렌이 말년의 중개사업은 조선인들을 애니깽으로 팔아 넘긴 것입니다.
알렌이 미국공사관직에서 해임되고 미국본토로 돌아갈때, 조선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며 일을 알선해 주죠
그게 바로 '애니깽'입니다....
그들은 가서 제대로 된 임금도 못받고 노예처럼 일하게 되죠
알렌은 여기서 많은 이익을 챙겨 본국에서 그동안 외교활동으로 번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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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진짜 진짜 개인적인 의견
 
 
 제중원이 방영된 이유
1) 알렌에 대한 평가
• 알렌이 의료선교사로서 업적은 크고, 의료기술의 발전만 본다면 큰 업적.
- 우리나라 서양의술의 발달을 가져옴. → 많은 의사 배출,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 우리나라 개신교와 장로교의 확산에 큰 기여. → 알렌의 입국일을 한국 개신교의 선교 첫 주년으로 정함.
• 외교관으로서 알렌은 열강 침입자중 한명일 뿐.
- 대한제국 황실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미국에 많은 이권사업을 중개함. → 미국의 이권 사업(금광채굴, 산림벌목, 철도이권, 전기사업)은 대한제국의 경제에 이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를 가져옴.
- 반일외교노선 또한 일시적인 것일 뿐, 대한제국을 위한 행동이 아니였음. → 미국의 이권 사업에 이익을 위한 반일외교노선. 후에 한국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차라리 한 열강의 한국 식민지화를 주장함.
- 알렌은 한국을 사랑하고 대변한 외교관이 아닌 미국의 이권사업을 보호하기 위한 인물. (예) 알렌-“나는 현재 한국인들에게 계속적으로 충고를 요청받는다. 그러나 나는 충고 주는 것을 조심스럽게 삼가고 있다.․․․(생략), 나는 우리 자신의 상당한 이권의 보호와 촉진 에만 나 자신을 한정시키고 있다.)
 
2) 알렌을 좋게 이미지화 하여 방영한 이유
 
• 대중들에게 친미적인 사고를 심어주기 위해
- 친미적인 사고를 심어야 하는 이유
① 보통 드라마 제작기간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림. → 2008년 6월부터 2009년 사이에 기획ㆍ제작 했을 것.
② 한미 FTA와 그에 따른 반미감정.
2007.09.07한미 FTA 비준동의안 17대 국회 제출.
2008.10.08한미 FTA 비준동의안 18대 국회 제출.
2009.04.22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통과.
→ FTA가 진행됨에 따라 소고기 등 반발로 많은 사람들이 촛불시위 참여.
→ 2008년 10월 FTA 비준동의안 18대 국회 제출 후 70만 명 촛불 시위.
현 이명박 정부는 FTA의 통과에 따른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대중들에게 친미적인 사고를 심어줘야 함. → 친미를 위한 소재로 알렌이란 인물이 근대의술의 발달과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지켜준 모습은 최적의 주인공.
드라마 ‘제중원’을 통해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켜줄 것이라는 사고를 심어줄 것이란 의도로 제작되고 방영 했을 것. → 대중들에게 친미 감정을 불어 넣고자 하는 진짜 의도?!.
 
• 현 정부가 기독교의 지원을 받기 위해
① 이명박 정부의 기독교 지원.
② 알렌은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선교를 합법화 한 선교사. → 알렌이 있어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님. → 알렌을 좋게 방영할 경우 기독교의 지지.
노무현 정부 시기 개신교 보수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물러날 것을 시위함.
-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국보법폐지와 사학법 개정을 시도 함.
- 개신교 보수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조용기 목사)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노무현 대통령 정책 반대 시위를 함. → 개신교 보수단체는 친미세력.
④ 현 정부가 알렌을 좋게 방영하여, 친미세력인 개신교단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음.
 
 
 
 
 
알렌을 제중원(드라마)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가 MB정부의 작품이다!
라고 했다가 소설쓰고 있냐고 퇴짜 맞았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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