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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걸까.
게시물ID : gomin_12100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mltZ
추천 : 10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100개
등록시간 : 2014/09/23 16:22:30


나는 잘 모르겠다.


결혼하자마자 시작된 아버지의 백수생활. 신혼의 꿈을 누리기도 전에 일터에 나가셔야만 했던 엄마. 그리고 어릴 적 나의 기억은 항상 컴퓨터 앞에서 고스톱과 채팅을 하며 담배를 피던 아버지의 뒷모습. 생활고의 찌든 엄마의 모습. 남편이 돈을 못벌면 마누라라도 나가서 벌어야 한다고 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

당연히 좋은 기억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한 생활을 지속한 아버지로 인해 우리집은 당연하게도 이혼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그렇게 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동생, 할머니와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혼의 분풀이를 여자밖에 없는 집에다 풀어놓았다. 툭하면 너네 엄마는~을 시작으로 나에게는 괜히 엄마를 닮았다며 트집을 뜯고 시비를 걸었다.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돈을 못벌수도 있지, 바람 좀 필수도 있지. 바람 안피는 남자가 어디있느냐. 홀어머니 외동아들이였던 아버지를 할머니는 편들었다. 전부 다 엄마 탓이라고 몰아갔다. 흔히들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이라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은 아빠를 닮았다며 할머니, 아빠 모두 동생에게 크게 혼내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엇나가면 내 손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빠 닮으면 날백수로 먹고 놀다 죽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참고 또 참았다. 내 나이 열 넷에 그렇게 철이 들었다.

당연하지만 계속 날백수였던 아버지가 제대로 된 벌이를 할 리가 없었다. 몇번인가 시작했던 사업은 전부 망했고 그 후유증으로 집에는 가재도구가 남아날 일이 없었다. 본인이 깨 부신 가재도구를 나에게 빨리 치우지 않는다며 삿대질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난 절때로 저런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거라고 맹새하고 또 맹새했다. 차라리 혼자 늙어 죽으면 죽지 저런 인간하고는 절대로 같이 살지 않을 거라고.

중학교때부터 내 용돈을 내가 벌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일용직을 나가는 아버지가 돈을 종종 지원해주기는 했지만 애시당초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등록금을 제외하고 학교를 졸업때까지 나는 그렇게 알바를 손에서 떼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했고 대외활동도, 학생회 임원도 했다. 어디가서 자랑할만한 스펙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는 만족할만하게 다녔다고 생각했다. 어디가서 엄마 없는 년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부모가 없어도 나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단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술 먹으면 동네에서 소리지르고 경찰서에 잡혀가는 아버지가 내 인생에 발목을 잡지 않길 바라며, 설사 잡더라도 내가 일궈낸것들로 그정도는 떨쳐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취업을 했다. 중간에 블랙회사도 들어가게 되었지만 지금은 제 날짜에 월급 주는 회사를 다니며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자로써 제일 잘 팔린다는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니까 주변에서 되도 않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 좀 이른 것 같기는 하지만, 집이 그러니까 너라도 시집을 일찍 가야지. 그게 효도하는거다?
- 얘는? 요즘은 돈 없어도 다 간다 얘~ 집은 남자가 해올건데 무슨 걱정이야.
- 얼른 시집 가서 애 낳고 사는걸 보여줘야 너도 좋고 식구들도 좋은거야

등등. 십원 한 푼 보태줄 것 아니면서 저런 소리는 잘도 내뱉는다.

나는 애를 낳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하고 싶은거, 먹고 싶은거, 입고 싶은거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만족하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내 자식도 그와 똑같은 길을 걷는걸 보고 싶지 않다. 그러면 어른들은 말한다.

- 넌 여자니까 돈 많은 남자 만나면 돼.

나도 내 주제를 안다. 비하하는게 아니라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와 비슷한 수준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겠지.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만남이니까.
월 500을 벌어도 애 하나 키우기 힘든 세상에 나와 벌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애는 커녕 부부가 본인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게 틀림없다. 하지만 제 밥그릇은 스스로 달고 나온다며 그래도 애 낳기를 종용한다. 낳아놓으면 어떻게든 다 크게 되어있단다.
애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수명이 짧은것도 아니다. 낳아놓고 삼시새끼 밥 먹이고 가끔가다 관심이나 던져주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본인들은 자식을 그렇게 키워서 애 기르는게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전자의 상황을 겪은 나로써는 그 말에 공감하기 힘들다. 내가 관심을 갈구하는 그 상황이, 없이 자란 그 설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까지 말하면 대게는 너는 애를 원치 않아도 네 남편은 애를 원할껄? 이라고 말한다. 나는 말한다. 애 원하지 않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할꺼다. 만약 그런 남자를 찾기 힘들다면 결혼을 안하면 그만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애를 낳아서 애가 불행해지느니 그냥 낳지 않는걸 택하겠다.

그럼 나보고 이기적이란다. 어쩜 본인 생각만 하냔다. 당연한거 아닌가? 앞으로 내가 살 날은 길게 잡아 80년이나 남았는데 당연히 내 인생이 더 중요하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내 새끼 걱정부터 하란 말인가. 당장 내 한 목숨 부지하기도 힘든게 현실인데 말이다.

누군가의 귀한 아들일 남자를 우리집 같은 콩가루 집에 데리고 오는것도 미안한 일인데 거기다가 이 상황에서 애까지 낳으면 정말 답 없는 인생의 시나리오가 눈 앞에 펼쳐지는데 그저 너는 애를 안낳아봐서 모를 뿐이라고, 낳으면 다 크게 되어있다고, 이기적이라고, 어린게 싸가지가 없다는 말로 날 몰아가며 철 없는 여자로 만들어간다. 그저 답답하다. 우리 부모의 세대와 우리의 세대는 다른데,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어리다'는 말로 깎아내린다. 답답할 따름이다.


내가 겪은 이 비참함과 상대적 박탈감을 내가 낳을 자식한테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내가 이기적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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