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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했던 이야기.
게시물ID : gomin_12108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mJgZ
추천 : 8/5
조회수 : 907회
댓글수 : 32개
등록시간 : 2014/09/24 11:41:06
전 아내와 난 대학생때 만났다.
서로 다른 대학이었지만 우리학교 축제에 아는 여자애를 만나로 왔고 그때 처음만났을때 내가 반하여 쫒아다녔다.
과연 10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나의 헌신적인 모습에 반했다며 나와 사귀기 시작.
1년여를 사귀다 내가 군대에 갔다. 면회는 한번도 와주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탈 없이 1년을 같이 지내다가.. 휴가때 같이 지낸 4일. 그 사이 아이가 생겼다.
정말 깜짝놀랬다. 난 이 사실을 기무대에서 나와 알려줬고 조사까지 받았으니까. 과연 기무대. 이런부분까지 확실히 알 수 있는거구나. 하고 놀란것도 사실.
그러고 우리 부서에 있던 과장의 배려로 휴가도 자주 나가고 애 낳을때 옆에 있어줄 수 있었다.
전역 했을무렵부터 아내는 친정에 있었다. 나는 대학 1년이 남아 선택을 했어야 했다. 장인어른의 배려로 1년 남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반년만에 취직이 확정되어 운 좋게 아내와 같이 살 수 있게되었다.
사회 초년생이라 일도 바뻣다. 가족에 대한 배려도 쉽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건 역시 아내나 나에게 있어서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장모님과 어머님의 도움과 배려로 겨우겨우 이어나갈 수 있었다.
퇴근하면 7~8시 남짓.. 늦는날도 있었지만 보통 저 시간이었다. 이때부턴 내가 아이를 돌보고 빨래나 욕실청소같은 힘든일은 내가 하였다.
나름 아내에게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자랐겠지.
어느날 아내가 일을 한다고 하였다. 난 아이가 걱정되긴 했지만 요즘은 보육원도 잘 되있고. 두명이 얼른 벌어 월세 벗어나자는 생각에 찬성하였다.
이때 반대를 하고 좀 덜쓰고 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아내는 동네 마트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 한번도 일 안해본 아내는 역시 힘들었는지 집에오면 잠뿐인 생활.. 반년가까이를 마트/집/마트/집 생활만 하더니 염증이 낫듯했다.
점점 무너지는 집안 살림.. 이때쯤 해서는 거의 모든 집안일을 내가 하고있었다.
앉아서 하는 일을 하니 내가 몸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아이도 저녁에 대릴러 가면 쓸쓸해 하는게 보였다.
아직 엄마와 아빠품에서 자랄 아이인데 우리보다 보육원 교사를 더 길게 만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다.
이때쯤이었다.
아내가 다시 옷을 차려입기 시작하고 거추장스럽다던 화장도 시작했다.
집안일도 다시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난 단순하게 이제 슬슬 직장에 적응했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딱 반년 뒤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왔다.
결혼후로 처음 받아본 연락. 오랜만에 술 한자는 연락이었다.
계속 반복되는 삶에 나 또한 지처있었던가. 가뭄에 단비라도 내린것처럼 처음으로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친구를 만나로 나갔다.
이래저래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금방 거하게 취해버렸던 그날.
친구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재수씨를 봤다고.
뭐 같은동네 사니까 몇번 마주칠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한마디를 더 들었다.
다른 남자와 모텔에서 나오는 재수씨를 봤다고.
난 친구 멱살부터 잡았다. 니가 그딴소릴 지껄일지 몰랐다고 싸웠다.
그에반해 친구는. 현명하게도 별다른 반응도 하지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뒤로 나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몇번이고 따라가봤다고.
그리고 나에게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상대 남성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의 아내는 확실했다.
요근래 나에게 보이지 않던 웃음과 애교석인 표정은 과거 나와 사귄지 얼마 안됬을때 아내를 보는듯 했다...
허탈했다.
근 4년간 죽도록 고생한 모든게 허탈해졌다.
아내는 어떻게 하고 싶었던걸까..
그날은 그렇게 술에 취한채로 들어가 잤다.
친구는 미안하다는 카톡을 남겼다.
난 그땐 답장을 하지 못했다.
그뒤로 한달정도 아내를 지켜봤다. 나와의 잠자리도 계속 거부. 한달간 나의 마음은 혼란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로 흥신소에 연락. 아내가 바람을 피고있다는 증거를 긁어모았다.
상대 남성은 공무원 이라고 들었다. 역시 유부남.
그리고 난 집을 나왔다. 사진 몇장과 편지 한장을 두고 나와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다음날 아내에게 미친듯이 전화와 문자가 왔다. 그대로 핸드폰을 꺼둔채로 장인어른댁에 찾아가 아내가 이러이런 남자를 만나고 깊은 관계이니 제가 헤어지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장인어른또한 아무말씀없으셨다. 장모님은 울고있으셨다.
이혼까지는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아내는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 어떤말도 아내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는 아내가 대려갔다. 양육비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나는 정말 좋은 여자를 만나 교제를 시작하였고 그녀는 내가 재혼인것도 아무 상관이 없다 말 해주었다.
그렇게 반년쯤 사귀고 서로 결혼이야기가 오고갈무렵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보고싶지도 않냐고.
나는 이미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닌 네 아이이기만 하다. 나에게 가족이란 추억을 쌓아서 만들어 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 아이와 나와 나와 너의 추억은 전부 사라졌다.
그렇게 답장후 모든걸 차단했다.
그 뒤로 연락은 없었다.
난 재혼까지 했다. 나름 이제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월급도 처음보단 훨씬 오른상태라 처음보단 모든게 넉넉했다.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생각보다 호화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을 아내가 닦아주었고.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났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꺼라 생각한다.
저번주쯤 전 아내는 그 공무원과 이어지지도 못하고 좋지 못하는 곳에서 일 하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기억에 한번 털어나 보는 심정으로 글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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