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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각하, 대국적으로 죽으십시오.txt
게시물ID : humorstory_4453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59a58
추천 : 0
조회수 : 17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08 1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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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일베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있음. 


 ---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


  도란거리는 대화 소리에 난 정신을 차렸다. 얼핏 심수봉의 노래도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TV를 켜놓고 잤었나? 일간베스트 저장소 최고의 아웃풋인, 하지만 MC 무현은 아닌 일베송의 가사처럼 오늘도 잉여인간 생활을 하기 위해 나는 눈을 힘겹게 치켜 올렸다. 오늘은 어떤 일베가 올라왔을까?


  "각하?"


  하지만 내 망막에 맺힌 영상은 고졸 백수 인생으로 지겹도록 봐온 내 방구석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장소였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진 한국식 교자상,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술병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진로 소주, OB 맥주, 진주 탁주……. 술 냄새가 방 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바라보며 전투복을 입은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각하? 과음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뭐야? 누구야 당신? 그러나 다시 보니 전투복 약장에 별이 하나, 둘, 셋, 넷. 대장이었다. 육군 참모총장. 이름표에는 정승화. 나는 나도 모르게 몸에 각인된 애국보수의 경례를 해버리고 말았다. 이게 꿈이라면 시발 정말 거지 같은 꿈이 분명했다.


  "충성! 병장 김선우!"

  "……."


  거수 경례를 하면서 놀란 것이 내 목소리가 늘 듣던 내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인터넷만 하면서 사는 히키코모리라 평소에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 잘 없긴 했지만 그래도 50대 중년 아저씨나 낼 법한 목소리인 것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자 참모총장 옆에 앉아있던 80년대 수트핏의 아저씨도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나를 자리에 다시 앉혔다. 그 양반 생김새가 어디서 보던 얼굴이었는데. 역사책이었던가……?


  꿈이라면 참 기묘한 꿈이군. 일베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저 앉으며 나는 물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여러분은 누굽니까?"

  "……이보게. 차지철이. 각하께서 술이 과하신 것 같네."


  육군 대장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나는 수트핏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차지철. 유신 정권 시절 박정희의 최측근에 붙어있던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 근현대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누구나 들어본 이름일 터였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각하라고……?


  "예. 각하. 말씀하신대로 학생 시위와 노동자 파업은 탱크로 밀어버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많이 피로하신 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잠깐만. 이 새끼들이 지금 나를 갖고 놀고 있어? 아니면 내가 모르는 몰래 카메라라도 되는 거야? 나는 사태 파악이 안되는 와중에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 말했다. 야 이 1베충 새끼들아.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는 몰라도……. 누가 시켰어? 노사모야? 어디야? 니들 김정은 사주 받고 이러는 거지?


  그 순간 방문을 벌컥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일베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어? 당신은 분명 재규어……."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품 안에서 발터 PPK를 꺼내드는 것이 아닌가. 이 새끼들 뭐하는 짓인지는 몰라도 고증 하나는 확실하네. 그래서 원조 각하를 죽이는 상황극이라도 하려는 건가? 나는 한껏 허세를 부리며 외쳤다.


  "이기이기! 게이야! 노짱……악!"


  하지만 발터 PPK가 불을 뿜고 나는 가슴팍에 총알이 박힌채로 쓰러져 버렸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 온 몸에 퍼져나갔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장난도 몰래 카메라도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지금 박정희였다. 그리고 총에 맞았고.


  "……그런데…… 왜……?"


  내 대답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김재규는 나머지 총알을 내 얼굴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 의식은 끊겨 버렸다.




   "각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나는 다시금 눈을 뜨면서 이게 정말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미 한 번 총에 맞아 죽었고, 끝이 났는데도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와 있었다. 너부러진 술병, 심수봉의 노래, 육군 참모총장, 차지철……. 물론 이 상황을 멀리서 보고 있을 어떤 신적인 존재나 악마 새끼에게는 재미있을 지 모르겠지만 10분 뒤에 총을 맞을 예정인 나에게는 시발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이었다.


  "신민당 건은 중앙정보부에서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염려하지 마십시오."

  "……."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승화와 차지철도 동시에 일어섰다. 금방이라도 김재규가 나타나 나에게 총을 쏠 것만 같았다. 한 번 총을 맞아본 경험으로는 두 번 다시 총 맞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소원이었다. 어디 총 맞고 싶은 사람이 있겠냐만은.


  "각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나는 봉하마을과 노무현을 떠올리며 응디 시티를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며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지철에게 말했다.


  "자네, 총 가지고 있나?"


  각하가 살아야 나도 산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차지철은 총을 휴대하고 있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내가 그러지 말라고 시켰다고 했다. 하긴 박정희와 같이 술 마시면서 총을 갖고 들어올 미.친놈이 몇이나 될까. 김재규를 빼면 말이지. 나는 똥 마려운 개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고민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사실 내가 박정희인데 박정희는 아니야."

  "각하? 술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아저씨들. 내 말을 잘 들어 봐. 곧 김재규가 나를 쏘러 올 거야. 그러니까 김재규가 나를 쏘지 못하게 막아야……."


  삑! 타임 아웃. 방문이 벌컥 열리고 김재규가 싸늘하게 등장했다.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아니! 잠깐만! 나는 박정희가 아니야! 나는 씨발……!"


   쏘지 마 소리가 공허하게 방 안을 울려퍼졌다. 이미 총을 맞고 난 뒤에. 귓가에 파리가 앵알대듯 대국적으로 하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대국적으로……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각하?"

  "닥쳐! 시발 새끼들아!"


  나는 눈을 뜸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안가를 나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흰색 건물. 좀 옛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보는 건물, 청와대가 보였다. 그래. 청와대로 도망치자. 그 안에는 박정희라고 하면 죽음도 불사할 충신들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20년 넘게 방구석에서 쳐박혀 숨만 쉬며 살아온 내 본래 육체보다 60이 넘었지만 군부 출신의 박정희의 육신이 더 달리기를 잘한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전력으로 질주를 하던 나는 곧 청와대 앞을 서성이는 경호원을 발견하고 소리 쳤다.


  "이봐! 나 박정희다! 대통령이다! 지금 김재규가……!"


  내 외침에 돌아선 경호원은 김재규였다.


  "각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입니다. 찾으셨습니까?"

  "시발."


  왜 시발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였지? 이대로라면 또 영락없이 죽어야 하잖아. 나는 눈을 감고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김재규는 나를 바로 쏘지 않았다. 대신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죽이지 않지? 뭔가 할 말이 있는 건가? 혹시 '죽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는 걸까?


  "각하?"

  "아, 아니.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네. 그럼 수고하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재규의 손이 품으로 향했다. 나는 기겁을 하며 김재규의 이름을 불렀다. 다행이 품으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어, 그래. 일단 미안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내 두뇌가 그토록 열심히 회전하는 것을 나는 여태껏 경험한 적이 없었다. 역사책, 미디어, 일베, 오유, 나무 위키에서 본 모든 이미지, 영상, 텍스트가 최선을 다해 나에게 살아 남으라고 팩트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독재 한 것?"


  김재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긴장도 좀 풀고 그래. 기분 나쁘다고 사람을 그렇게 쏘고 그러면 안 되지. 나는 김재규가 군법회의에서 증언한 것들을 떠올리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를 덧붙였다.


  "어……. KBS 당진 송신소 잘 지었더라. 다음에 같이 가자. 오늘 못 갔지? 차지철 그 개.새끼가 그랬더라고. 나는 모르는 일이었어.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도 마찬가지고. 아, 물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겠지? 다음 총선에서 내가 물러나고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투표를 통해 이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를 뽑고 든든한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도 회복할……."


  횡설수설 변명을 하는 내 입에는 이미 발터가 물려 있었다.


  "각하."

  "……대국적으로 하라고?"


  김재규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탕. 탕. 탕.



  그리고 네번째 루프. 그래. 김재규 이 개.새끼야.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날 죽이겠다 이거지? 이젠 전쟁이다. 나는 술상을 뒤집으며 외쳤다. 긴급조치 제10호다. 지금 당장 김재규의 신병을 구속하고 남산 지하 타워에 쳐박으라고 윽박질렀다.


  "진심이십니까?"

  "그럼 지금 내가 너랑 농담 따먹기 할 군번으로 보이냐? 이 개.새끼야."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 사실 살면서 별 네개나 되는 장성에게 욕지거리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해지는게 오줌을 쌀 것만 같았다. 시계를 바라보자 7시 24분이었다. 7시 41분에는 내가 죽을 예정이므로 아직 15분 남짓 시간이 남아있었다. 대통령의 말이라면 없는 죄도 만들어내서 사형을 시킬 수 있었던 시절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다소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내가 요구한 것은 정확히 이루어지고 말았다.


  "맙소사. 시발. 내가 김재규를 잡았어……."


  불과 5분만에 청와대 비서실의 특수 훈련을 받은 에이전트들이 김재규의 얼굴을 아방가르드한 현대 미술 작품으로 만들어서 내 앞에 대령했다. 아, 여기서 현대라고 하면 1970년이 아닌 2016년 기준이다. 아무튼 포승줄에 묶여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날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김재규를 보자 나는 드디어 안심이 되었다.


  "그래. 재규어 게이야. 니가 나를 쏴 죽이려 했노?"


  긴장이 풀어지자 일베어가 튀어나왔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하긴, 이 모든 상황이 미쳐있었으니까. 미친 시대, 미친 나라에 미친 독재자와 미친 살인 계획이 공존하는데 내가 미친 1베충이라는 게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하마터면 운지할 뻔 했노 이기야."

  "내 뒤에는 미국이 있소."


  미국 응딩이 뒤에서 딱! 근사한 응딩이 형님 형님 하면서 사람 총 쏴죽이려고 했노? 미친 거 아니노? 나는 깔깔 웃으며 김재규의 발터 PPK를 집어 들고 엎드려 쏴 자세로 그의 미간에 조준했다. 이미 난 세번이나 뒤졌으니까 너도 한 번 뒤져야 공평하겠지?


  -찰칵!


  "아니, 시발 왜! 또! 넌 뭔데 이 시발 새끼야."


  나는 거의 울먹이면서 말했다. 왜냐하면 내 관자놀이에도 총이 겨누어졌기 때문이었다. 곁눈질로 바라보자 나에게 총을 겨눈 인물은 중앙정보부 의전과 과장 박선호였다.


  "게이야……. 남산 코렁탕 한 그릇 하고 싶노? 빨리 총 안 치우노?"

  "각하."


  제발. 그 말만 하지 말아줘. 나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렸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 법인거 보다.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계속해서 술병이 너부러진 교자상 앞에서 정신을 차렸고, 김재규나 박선호나 박흥주의 손에 죽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벗어날 수도 없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고 맞서 싸울 수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무력했다. 오로지 죽기 위해서 계속해서 살아날 뿐이었다. 부엉이 바위 위에 올라선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이 이랬을까? 모든 것이 의미가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몇 번을 죽건, 몇 번을 죽어 내 정신이 붕괴되건 이 의미 없는 학살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192번째 루프를 기점으로 나는 이것이 나의 마지막 죽음이라 가정하고 최후의 유언을 하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차지철이 따라주는 술을 몇 잔 마시고 김재규를 기다렸다. 7시 41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김재규는 다짜고짜 총을 겨누고 대국적으로 하라는 소리를 했다.


  "잠깐! 잠깐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게 해주겠나?"

  "유언이라면 대국적으로 해보십쇼."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1베충으로서의 모든 악행들에 대해 사과했다. 노무현 대통령님. 비하해서 죄송합니다. 여성 여러분. 김치녀라 매도해서 죄송했습니다. 애국 보수 코스프레를 한 것에 대해 사죄합니다. 그리고 야당 인사들에게 빨갱이 프레임을 씌워 공격한 사실도 사과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기호 1번을 찍은 것에 대해 반성합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은 삶을 살았습니다. 1베충이어서…… 죄송했습니다.


  "더 할말이 없습니까?"

  "마지막. 하나만 더……."


  나는 초연한 자세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는 독재자였습니다."


  그리고 발터 PPK가 불을 뿜는다. 권총 손잡이의 트리거가 눌리며 공이가 탄환을 치고, 나선형 강선을 따라 총알이 튕겨 나오며 빙글빙글 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이다. 권총탄이 회전하며 천천히 육각형을 그린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육각형은 세 모서리에 꼬리를 그리더니 곧 끝부분이 회전에 휘말리며 시공의 폭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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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396397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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