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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아서 인상적이였던 우리 고모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2114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심한듯쉬크
추천 : 1
조회수 : 39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01 13:25:58
사적이고 긴 이야기를 잘 쓸 능력이 없음으로...오늘도 음슴체

일주일전쯤에 우리 아빠보다 여섯살 많은 고모가 돌아가셨음.
천식이 있으셨는데, 주무시다가 갑자기 가신듯.

모두들 멘붕.

혼자 사시던 집에 들어 가서, 정신없이 살펴보니
다음날 망년회하면서 먹을라고, 
갈비를 엄청 사다가, 핏물 뺄라고 물에 담가놓으셨다네.
살림이 일상인 엄마가 무심결에 얼른 냉장고에 넣어 놓고,
고모보내는 장례를 다 치르고, 다시, 그 집에 들러..
모인 사람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냉장고를 열어 봤다가..그 갈비를 보고,
그걸 구워서 온 식구들이 배 부르게 먹었다고 함.

예전에 어디 다른 곳에서 우리 아빠의 고향에 대해 쓴 적이 있었음
영화 황산벌의 명장면인 욕배틀에서 온 백제군인들이 한 목소리로 불러대던 
바로 그 욕쟁이가 출신인 지명이 있음
그 근처가 우리 아빠 고향 되겠음.
고모랑 제일 죽이 잘 맞았던 막내 작은 아버지가 맛있게 밥을 먹다 한마디 하셨다고 함.
..같이 묵을라고..사왔더만...이 문딩이가..이걸 묵고 가지..그걸 못 참고...

>>>>>>>>>>>>>>>>>>>>>>>>>>>>>>>>>>>>

우리 고모는 데면데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고모같은 고모였음
엄마에게도 그냥 무난한.. 더도 덜도 아닌 그냥 그런 시누이고..
달리 커다란 애정도, 같이 보낸 추억도, 남다른 관심도 피차없는.

패티김을 닮으셨더랬음
쎄보이고..돈놀이의 귀재였고..
늦둥이 딸만 하나 두고, 애지중지했는데,
인상적이였던건..
어릴 적 고모집에 놀러 갔을때 보았던 모습인데,
그 딸이 사랑이만한 무렵때 종이를 여러장 모아서, 돈을 세는 놀이를 하고 노는 것정도.
고모는 늘 돈을 세고 있거나, 공책에 정리하거나,  떼인 돈을 받으러, 잡으러 다니고...
그런 고모의 달리 기억되는 건,
그 사랑이만한 딸이 중학생이 되고,내가 대학신입생이였을
1988년도에 그 집에 과외를 다니면서 알게된 사실때문이였음.

고모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일수돈과 일수 수첩을 수북히 들고 다니던 가방 한 귀퉁이에
가나다라..가 쓰인 책을 표지를 곱게 싸서 
알음알음으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는 학원을 다니셨다는 거였음.

옛날 친가는 부유했으며,
남자형제들은 다들 충분히 교육의 기회가 있었다는데..

놀랐던 건
고모머리는 주판알이나 계산기보다 빠르고 정확했으며
그 수첩에 쓰인 그 많은 숫자와 암호에 정통하고,
어디로 보나, 교양이 또래보다 썩 딸리지 않았던 사람이였다는 것임.

고모의 태도는 내가 한글만 모른다..뿐이지.
그까이꺼..모자를 것이 무엇이며..
이따이꺼..새삼스레 언급될 이유가 없다임

그러던 어느 날
고모는 또 다른 과외자리를 나에게 알려주심.
내 또래 아가씨가.. 날라리이긴 하지만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살림을 차렸다고 함.
남자가 괜찮으니, 
아내가 될 아가씨에게 날마다 돈을 벌어다 주면서,
이제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아야 하니,
대략 자신이 얼마를 버는지, 지출이 얼마나 되는 지, 좀 알게 가계부를 써달라고 요청함.
이 아가씨도 한글을 모름.
어릴 때, 부모 불화로 여기저기 눈치밥 먹으면서 자라서
호적도 제대로 없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고 함.
성품도 좋고, 아름답고, 우아하기까지 한 그녀가 
한글을 모르리라고는 꿈도 못 꾸는 남자앞에
아가씨는 차마 사실을 고백 못함.

일주일에 두번 내가 방문해서 과외함
가자마자, 한글을 가르치고, 쓰기연습을 시키면서,
그 옆에서, 그 아가씨가 지난 며칠동안 어디다가 돈을 썼는지 
외워서 액수랑 같이 말하면, 내가 가계부를 써 줬음.
글씨를 제발 개발새발로 써달라고 함.
나중에 자신이 쓸 능력이 생겨서, 쓰게 되더라도 차이가 많이 안 나게끔...

고모는 그랬음
도와줄 수 있음 떠들지 말고 도와줘라.
많이는 못 줘도, 착취는 안 한다임

지독히도 돈을 아끼고,
그 아낀돈을 열심히 굴리고, 
생활이 안정되었어도 못썼음.

..딱 오년만 더 살고 싶은데..
..낼 모레가 팔십이네.
..막내야..갈비나 많이 사오니라..
..한번 실컷 먹어 보자..하더니,
그걸 못 먹고 서둘러 떠나서, 동생들 가슴에 문딩이로 남은 고모가 되었음.

얼마전 백만년만에 읽은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라는 책이 있음
작가가 자신을 보고 웃는 활짝 웃는 칠십노인 이모얼굴에서
그리고, 이모가 있는 방안 배경에서
구비구비 그 사연들이 
연극무대위에 올려진 시대극처럼 흐르고..
그냥 이모만 늙어진 분장을 하고 무대위에 있는거 같다는 표현이 있었음.

새해가 시작되고
친구들이 카톡에 재깍재깍 대답 안하는 벌로
빠알간 한복차림을 곱게한 박통의 근하신년 사진을 보내면서
병신년 복 받아라..를 깨톡하고..
위안부 할머니들 앉은 방 배경 뒤로
아..2016년 시대극이 또한 흐르네..하고 생각하는 데
고모의 시크함이 생각남.

대차고, 계산 칼 같고, 불 같았던 우리 고모
감상에 젖어, 새해 맞이하는 나를 보았다면
흘깃 한번만 쳐다보고, 암말없이 자기 볼 일이나 보았을 것임

맞아요..고모..
남은 사람은 남은 대로
또 어찌 되건 한번 해 보는 거지요.
강을 만나면 강을 건너고
산을 만나면 산을 건너며
살아 볼께요.

잘가요..고모..
평범하지 않아서, 인상적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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