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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 만난 썰 - #2. 프롤로그 - 파비안의 비
게시물ID : wedlock_16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언제꿀떡먹나
추천 : 17
조회수 : 159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5/09 10: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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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생활 이야기를 몇 번 쓰다가..
삼십대 중반에 어쩌다가 만난 지금의 남편과 함께하게 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게시판에 적절한 글이 아니면 삭제하겠습니다. 조금 오래전에 올렸던 이야기가 있어서..이어서 써봅니다.
실화가 바탕이 되었지만, 허구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1. 프롤로그 - 란의 비 (http://todayhumor.com/?freeboard_127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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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 - 파비안의 비



“오랫동안 꿈을 꾼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이 말만큼 짜증 나고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 없다. 꿈이 없는 사람은 존재감조차 없이 살아간다는 말인가. 꿈을 간직하면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희망을 주는 말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희망 고문과 다를 바 없다. 얼마나 오랜 시간 꿈을 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꿈을 꾸어야 하는가. 상상만 하며 마냥 히죽히죽 웃고만 있어도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마침내 꿈을 닮아간다는 것이 꿈을 이룬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저 사람은 무책임하게 부채질하고 있다. 닮아갈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도 존재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이렇게 매초 눈을 깜빡이며 같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살아있는데도 사람들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앙들레 말로인지 안들레 말로 인지하는 그 사람 만나 본 적 없지만, 허세에 찌들어 저런 말을 지껄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 사람이 앞에 있으면 당장 따져 묻고 싶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1초도 그런 인간에게 내 관심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배낭에 짐을 다시 꾸렸다. 2년 전에 없어서 불편하고 아쉬웠던 것들을 조금 챙기고 필요 없던 것들은 과감히 제외하고 짐을 쌌다. 배낭은 전보다 훨씬 가볍고 간소해졌다. 하지만 짐을 꾸리는 나를 보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빛은 무거워졌다. 두 분의 걱정과 불안한 마음들은 그들의 눈빛만을 무겁게 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마저 끌어내리고 있다. 두 분은 단 한마디도 내 결정에 반대하지는 않으셨지만, 걱정 가득한 질문들은 충분히 내 발걸음을 무겁게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부담에 그만둘 내가 아니었다. 꿋꿋이 짐을 싸는 내게 와 아버지는 급기야 화를 내셨고 어머니는 그 옆에 서서 화내는 아버지와 고집불통 아들을 번갈아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끝끝내 반대하시더니 떠나는 내게 긴급할 때 쓰라며 50유로 몇 장을 손에 쥐여 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어머니 재킷 주머니에 돈을 꽂아 드리고는 도망쳐 나왔다. 스페인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자리에 앉아 한참을 달리다 보니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생각했던 말은 결국 하지 못하고 잘 다녀오겠다고만 했다. 그런 내게 어머니께서는 비상시에는 주저 말고 연락하라는 말만 연신 반복하셨다.


2.jpg

  나는 꿈이 없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계획도 없다. 그 누구의 삶도 내게 닮고 싶은 욕망을 끌어내지 못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일을 시작했지만, 어리다고 무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가 치사해서 때려치우고 학교도 다녔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이 없던 내 공부는 당연히 방향을 잡지 못했고 역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나 지독하게 누군가를 사랑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사랑 또한 역시 불필요한 감정 소모일 뿐이라는 확신만 남겼다. 평생 혼자 살겠다는 유일한 계획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해 보였다. 꼭 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도 방향은 필요했다. 그래서 2년 전 몇 개월에 걸쳐 독일에서부터 스페인의 서쪽 끝까지 무작정 걸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없었다. 그저 그때의 자유로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를 한심하게 보는 눈도, 걱정 어린 시선이나 답답한 질문들이 숨 막히게 짜증 났다. 일단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틈틈이 일하며 모아 둔 전 재산을 털었다. 그렇게 두 번째로 길 위에 섰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어떤 기대도 없다. 그저 내게 허락될 자유를 충분히 느끼고 싶을 뿐이다.


  2년 전의 나는 도서관의 책 무덤 사이에서 먼지처럼 죽어가기에 너무 젊었고, 구슬땀을 모아 내 명예나 경력을 위해 투자하기에는 또 너무 어렸다. 그 무렵, 스위스 시내 중심에서 시작하여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 서쪽 해변 끝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은 나를 충분히 흥분시켰다. 곧 긴 여름휴가를 냈고 텐트와 배낭 하나만 들고 스위스로 향했다. 그때의 선택은 그 시간을 두고두고 그리워할 만큼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비바람에 텐트가 날고 생명에 위협받는 공포를 감수할 만큼 스위스의 구석구석은 늙어 죽은 나뭇가지마저도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프랑스로 들어서고 나서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스페인 서쪽까지 이르는 등산길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생장에 이르러서는 개미떼처럼 우글거리는 사람들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비싼 스위스 물가 때문에 챙겨 온 내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1인용 텐트는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도 나의 비박을 도왔고 덕분에 한밤중에 쏟아지는 별을 눈에 담고 온갖 곤충들의 속삭임을 귀에 담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헤어졌지만 대부분 끔찍하게 행복했던 기억들이었다. 그 시간이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은 끝도 없이 쌓이고 깊은 향수가 되어 이곳으로 나를 다시 불러들였고 그제야 그 맹목적인 그리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행복했던 기억에 홀려 이곳까지 따라왔지만, 많은 것이 이미 변하거나 사라졌으며 여전히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거리뿐만 아니라 숙소에도 사람들로 곱절은 붐볐고 그로 인해 모두 마라톤 경주하듯 뛰었다. 별이 지기도 전에 일어나, 산길을 걷는 게 아니라 탄광을 헤매는 광부들처럼 머리에 전등 하나씩을 달고 어둠 속을 몇 시간이나 걸었다. 천천히 걸으며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씨에스타(Siesta :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관공서 및 회사, 상점들의 휴식 시간)를 피해 늦어도 2시 전에는 숙소에 도착하여 늘 같은 사람과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지만 내가 보는 그들은 일상의 삶과 조금도 다른 게 없어 보였다. 흥분과 기대로 설렜던 내 마음은 조금씩 실망했고 2년 전의 자유로움도 더는 없었다. 그렇게 산티아고에 도착도 하기 전에 나는 이미 질리고 말았다. 산티아고 입성 대략 100km 지점인 사리아(Sarria)부터는 완주 증서를 위해 의무적으로 걷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길 위의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순례 완주 증서가 뭐라고 이렇게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변하지 않고 나를 반겨 준 것은 아스토르가(Astorga) 입구의 작은 바(Bar)뿐이었다. 매우 부드러운 달걀에 양파와 감자가 꽉 찬, 커다란 조각의 감자 또르띠야(Tortilla de Patata)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그리고 다른 소도시를 거치고 거쳐 북쪽 길로 향했다.


“자네도 실망스러운가 보군. 나도 그렇지.

전국의 장사꾼들은 이곳으로 몰려들고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여유 없이 산티아고로 향하는지 모르겠어. 본질은 이미 빛이 바랬고 사람들의 눈은 그 빛을 잃었지.

북쪽으로 가 봐. 거기라면 아직은 괜찮을 거야. 아니면 남쪽으로 가도 괜찮고.”


  바에서 만난 노파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아니었다. 걷는 동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몇몇을 더 만났고 그들 중에 다수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남은 일정을 마친다고 했다. 그때 이미 북쪽에도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단지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뿐이다.


  이룬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내리는 것도 내리지 않는 것도 아닌, 나처럼 꽤 어중간한 비가 내린다. 늘 우중충한 독일 날씨를 피해 멀리 남쪽까지 내려왔건만, 첫날부터 꾸물꾸물 비가 내린다. 하지만, 괜찮다. 비라는 것은 내게 햇빛보다 익숙한 것이고 나는 그 속에 걷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니까. 다만, 천천히 빗물에 젖어가는 내 배낭이 조금씩 무거워질 때마다 나를 보던 부모님의 무거운 눈빛이 떠오르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이룬에 도착하여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마을지도를 살펴보니 시작부터 언덕이며 산이며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비도 내린다. 이런 비를 맞는 것은 배낭 없을 때나 즐겁지, 이 무거운 배낭과 함께 비를 맞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주저 없이 다음 마을로 가는 자동차들을 물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늘은 첫날이라 꽤 깔끔한 차림일 텐데 사람들의 차는 쉬이 멈추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히치 하이킹이 이토록 어려웠던 것인가. 인정머리 없는 이 지역 분위기는 프랑스 국경과 가까운 지리적 영향인 것 같다. 그래도 빗속을 걸을 마음이 없어 몇 시간의 시도 끝에 겨우 한 대를 얻어 타고 다음 마을의 진입로까지 신세를 질 수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스페인 영화제로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축제의 인파를 가르고 숙소부터 찾았다. 그곳은 나와 같은 순례자 전용 숙소가 아니라 많은 여행객으로 이미 꽉 차 있었다. 대부분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온 관광객들이었고 그들은 이미 반쯤 취해 있었다. 분명 오늘 밤 숙소 안은 코 고는 소리로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호스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호스텔 입구 왼쪽에 있는 벤치 옆에 짐을 풀었다. 입구엔 테라스가 없어 바람을 피할 수도 없고 바로 앞에 차도가 있어 따뜻하고 조용한 밤이 보장되진 않지만 수많은 남자의 코 고는 소리보다는 나을 것이 분명하기에 별수 없이 자리를 잡았다.


  짐을 풀고 따뜻한 물을 한잔 얻어 몸을 녹이며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다. 머리가 길고 어수룩해 보이는 동양 여자 하나가 나온다. 호스텔 주인에게 식사할 곳을 묻고 있었다. 비록 유창하지는 않지만,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동양인 여자는 처음이었다. 조금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사이, 이미 그녀는 레스토랑을 찾아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호스텔 주인이 분명 첫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하라고 두 번이나 일러줬건만, 그녀의 씩씩한 발걸음은 그대로 직진을 하고 있었다. 다 알아들은 척하더니......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아직 스페인어가 잘 들리지는 않는가 보다. 그녀는 어수룩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수룩한 여자인 것 같다. 그 날 그녀는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계속 직진만 하다가 레스토랑도 못 찾고 호스텔 돌아오는 길도 잃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출처 2011년 기억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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