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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죽은 신하가 산 왕에게 간언한 이야기
게시물ID : history_121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4
조회수 : 6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16 22:52:23

“가지 마소서!”

 

 

보람찬 하루 사냥을 끝마치고서 돌아오는 길에 왕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매우 익숙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아보아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들리지 않고 주변에는 그냥 자신과 함께 사냥을 나온 신하들과 종자들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왕은 순간 공포가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지만 신하들과 종자들 앞에서 그런 떠는 모습을 보이기에는 왕의 체면도 있었기에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종자에게 물었습니다.

 

 

“많이 듣던 소리인데? 어디서 나는 소리냐?”

 

 

그러자 종자 한명이 마치 기다렸다는 왕에게 고했습니다.

 

 

“이찬 후직의 무덤에서 나는 소리옵니다.”

 

 

왕은 종자의 말에 몹시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What the .. ?!"

 

 

그러면서 종자는 기다리듯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말인 즉슨 살아 생전에도 왕에게 <옛날 왕들은 열심히 새빠지게 일 하느라 놀 시간도 없는데, 왕 너는 정신 나간 X들하고 새빠지게 사냥이나 하고 거 아주 보기 좋습디다. 나라 망칠 일 있음?>이라며 간언한 이찬 후직은 죽기 전에 세 아들들을 불러모아 사냥덕후인 왕이 걱정이 되던지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실제 삼국사기 김후직 열전에서의 김후직 간언 내용은 이러합니다. “옛날 임금된 이는 반드시 하루에도 만 가지 정사를 보살피매 깊이 생각하고 멀리 고려했으며, 주위에 바른 선비를 두고 그들의 직언을 받아들여 부지런히 힘쓰느라 감히 멋대로 즐기며 놀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도덕과 정치가 순수하고 아름다워져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정신 나간 이들이나 사냥꾼을 데리고 매와 사냥개를 놓아 꿩과 토끼를 잡기 위하여 산과 들로 뛰어다니는 것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계십니다. 『노자(老子)』는 ‘말달리며 사냥하는 일은 사람 마음을 미치게 한다.’고 하였고, 『서경(書經)』에는 ‘안으로 여색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에 탐닉하는 일, 이 중에 하나만 있어도 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로 보면 사냥이란 안으로 마음을 방탕하게 하고, 밖으로 나라를 망치는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유념하여 주소서.“)

 

 

 

“내가 신하된 자로 임금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주지 못하였다. 대왕께서 놀고 즐기는 일을 그치지 않아 패망하게 될까 두려우니 이것이 내가 근심하는 것이다. 죽어서라도 꼭 임금을 깨우쳐주려 하니, 나의 뼈를 대왕이 사냥 다니시는 길옆에 묻어라.”

 

 

간단히 말하자면 <죽어서도 왕에게 간언을!>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사람은 충성으로 간언하고 죽어서도 그치지 않으니, 나를 아끼는 마음이 깊도다. 끝내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무슨 낯으로 그를 대하겠는가!”

 

 

그리고 이후 왕은 평생 그 좋아하는 사냥을 하지 않았고 열심히 일만 했다는 훈훈한 미담입니다.

 

 

이 미담의 주인공인 왕은 신라의 제26대 왕인 진평왕입니다. 그는 진흥왕의 장남 동륜태자의 맏아들이고 진지왕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매우 기이하게 생기고 체구가 장대하였다고 합니다(역시 명불허전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거근을 자랑하는 지증왕의 후손다운 모습입니다..)그는 백제와 고구려 공세 등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를 외교로 통해 극복하고 그런 와중에도 중앙정부의 제도를 정비하는 등 훗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기반을 만들어준 훌륭한 왕입니다. 그리고 김유신 등의 인물들도 진평왕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죽어서도 왕에 대한 간언을 아끼지 않은 이 미담의 진주인공 김후직은 지증왕의 증손으로 왕족 출신이었습니다. 열전을 제외하면 그의 대한 본기의 기록은 진평왕 2년에 병부령에 임명되었다는 것뿐입니다. 그의 행적이나 나이 등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런 미담을 남긴 것을 보면 굉장히 올곧고 바른 소리를 하는 매우 전형적인 충신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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