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댓글만 가끔 다는 여징어입니다ㅎ
신혼 2년차 + 임신 8개월차라 베오베와 육아게만 들락거리다가 결혼게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요새 결혼게에 프로포즈 관련글이 좀 올라오길래 제가 프로포즈 받았을 때가 생각나서 글 써 봅니다ㅎ
프로포즈 준비하시는 예비신랑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꼭 참고하셨으면 해요.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네요. 모바일이라 오타 및 띄어쓰기 미리 양해 부탁드려요)
프로포즈 전에 저희 연애사를 잠깐 쓰자면
저희 부부는 대학교 2학년때부터 같은 과 같은 학년 CC로 사귀기 시작해서
장장 8년 9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했어요.
제가 재수로 들어가서 제가 21살, 신랑이 20살때였는데 신랑은 제가 첫 여자친구였구요.
저는 첫 연애도 아니었고 신랑이 반년간 저를 쫓아다녀서(?) 사귀게 된지라 크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신랑이 연애초부터 틈만 나면 '우리는 너무 잘 어울리고 소울메이트고 꼭 나랑 결혼할거다'며 주입(?)을 하더군요ㅋㅋ
원래 연애할 때는 다들 미래의 결혼생활을 상상해보거나 자녀계획 같은것도 세워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연애초부터 결혼얘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남자친구는 처음이라 약간 당황했는데
저는 아마 신랑이 여자친구를 처음 사귀는 거라서 그럴거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받아주고 넘어가곤 했어요.
그런데 이게 잠깐 그러다 마는 게 아니라 2년 3년 계속해서 듣다 보니 점점 세뇌가 되더라구요?
2-3년 사귀었다고 해봐야 아직 둘 다 20대 초중반인데, 어느새 저도 '아 얘랑 결혼해야 하는가보다'하고 생각하게 되었네요ㅎㅎ
그렇게 8년을 만났죠..
슬슬 20대 후반이 되니 자연스럽게 양가 어른들이 결혼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뭐 당연히 예전부터 서로 결혼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잡혔구요.
그 때 제 나이, 직장 사정과 신랑 군대 사정에 맞추다보니 (직업상 군대를 좀 늦게 갔거든요)
결혼하기 몇년 전부터 양쪽에서 암묵적으로 '이때쯤 결혼하면 되겠네'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직접적으로 '언제쯤 결혼하자' 하는 얘기를 둘이서 진지하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4년 초 저희 아버지께서 결혼식 날짜를 잡아오셨고 식장잡고 자연스럽게 상견례 하고
그렇게 물흐르듯이 결혼준비를 하고 있더라구요.
준비 과정에서 집안 사이에 크게 문제가 있지도 않았어요. 모든 게 너무너무 순조로웠어요.
단 한가지 문제는 신랑이었죠.
신랑은 그 때 당시 우리 나이로 28살이었어요.
친구들 중에 아무도 결혼한 친구가 없었기도 하고,
같은 과 졸업한 동기들이 재수,삼수,또는 그 이상인 사람이 많은데다(2/3정도) 심지어는 30대도 몇명 있었지만
아무도! 정말 단 한 사람도 결혼한 사람이 없었어요.
과 특성상 다른 곳보다 결혼을 더 늦게하는 편인 것도 있지만 저희 학년이 특히 더 심했죠.
그런 상황에 과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 중에 제일 어린데도 처음으로 결혼한다는게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나봐요.
여기 결혼게에서도 그렇지만 유부남들이 결혼하면 개인생활이 없어지고 하는 말들을 종종 하잖아요.
우스갯소리로 도망쳐!! 이런 말도 많이 하시구요.
그 때 신랑이 몇 안되는 결혼한 남자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심지어 친한 선배도 아니었음) 그런 말을 듣고 온 거에요.
28살밖에 안 됐는데 왜 벌써 결혼하냐, 남자는 최대한 늦게 결혼하는 게 좋다...뭐 이런 얘기들이요.
물론 그런 말들과는 상관없이 저랑 결혼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고 결혼을 늦추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억울하다(?)' 는 생각은 좀 들었나봐요.
원래 결혼하기 전에 남자들이 마음이 복잡하다는 말도 많이 들어서 이해는 갔지만...
다행히 그런 생각이 오래 가진 않았고 서로 얘기해서 잘 풀어졌어요.
그러고는 다시 결혼준비를 계속 하는데... 뭔가 서운한거에요.
윗글을 쭉 읽어보면서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연애 때부터 해서 쭉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저절로' '자연스럽게' '암묵적으로' '분위기상' 이루어져왔다는 거...
확실하게 '우리 결혼하자' 하는 말을 단 한번도 해주지 않았던 거에요.
자연스러워서 더 좋은 것도 있었지만 제 입장에서는 '이 남자가 정말 나랑 결혼하고 싶어서 하는건가, 분위기에 등떠밀려서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 와중에 신랑하고 저런 이야기까지 하고 나니까,
나는 결혼하는 게 너무 좋은데, 이 남자는 안 그런가보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같으면 대화로 잘 푸는 스타일인데 결혼 문제가 되니까 예민해지고 직접 물어보기에는 속상한 거에요.
그래도 그 이후부터는 결혼준비에 적극적이고, 프로포즈도 준비하고 있다기에 기다렸죠.
이벤트 같은 거 잘 못하는 성격이라 큰 기대는 안 했지만요.
어느 날에 평소 같이 놀러다니던 친구들이랑 1박2일로 놀다오자고 해서 준비해서 나갔는데
친구들 밤에 보기로 했다고 우리끼리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해놨대요.
으잉??했지만 평소 저는 맛있는 거라면 환장하는데 신랑은 자린고비라
호텔 음식 먹을 일이 없었는데 이게 웬일이냐 하고 좋다꾸나 가서 맛있게 밥을 먹었죠ㅎㅎㅎ
밥 먹으면서 애들 언제 보기로 했어? 이러니까 오늘 안본대요.
오늘 이 호텔에서 자는 거래요. 알고보니 친구들과 여행이 떡밥이었고 프로포즈 이벤트였던 거에요.
(그래요 저 원래 눈치 없어요;; 사귀기 전에 신랑이 저 반년간 쫓아다닌 것도 5개월쯤 지나서 알았어요ㅋㅋㅋ)
딱~ 1차 감동을 받고 호텔방 안으로 들어가는데...
바닥에 꽃가루가 깔려있고 복도에 촛불이 늘어서 있고..
매우 상투적이지만 그 성격에 애써서 준비했을 생각을 하니 2차 감동을 받고
방 안에 우리 결혼반지가 딱! (같이 가서 고른 반지긴 하지만 찾아왔단 말 안 했으니 어쨌든 서프라이즈로 치고)
반지를 보고 3차 감동을 받아 막 눈물이 나오려는 찰나...!!
신랑이 자기가 더 신나서 들떠가지고는..
'나 잘했지? 감동받았지?? 놀랬지???' 이러면서 방방 뛰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서비스로 받은 와인 따서 나눠먹고 자기가 이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몇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방을 바꾸고 프로포즈할거니까 신경써달라고 부탁을 하고 어쩌고)에 대해 얘기하다가 씻고 잤어요..
뭐 사랑이 담긴 편지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최소한 마무리는 반지 끼워주면서 사랑한다 우리 결혼하자. 이렇게 돼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받고 싶었던건 비싼 밥 비싼 호텔 꽃 촛불이 아니라
'우리 결혼하자' 는 말 한마디였는데...우씨 아직도 생각하면 서운하네요.
돈도 많이 들었고 알고보니 제가 불안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훨씬 전부터 준비했던 건 맞는데..
프로포즈 받았단 느낌이 안들었어요.
제가 나중에는 결국 너무 서운해서 얘기했거든요. 결혼하자는 말을 왜 안해주냐고..나랑 결혼하고 싶냐고.
말하다보니 서러워져서 막 울면서 야기했는데 그러니까 본인이 오히려 당황하더라구요.
프로포즈도 했잖아? 하는데, 아니 프로포즈 할 때도 결혼하자고 안 했잖아 하니까
그건 너무 당연한 거라서 얘기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니냐면서요.
내가 처음 사귈 때부터 결혼하자고 했잖아. 그건 너무 당연한거지 이러면서요.
그러니까 신랑한테는 그게 너무 당연해서 따로 얘기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던 거에요.
참..ㅋㅋㅋ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원래 그런 데 둔감한 남자라서...
여튼 그동안 내맘은 이랬다 저랬다 대화하고 이해시키고 잘 풀었는데요ㅎㅎㅎ
지금도 그 프로포즈 생각하면 화가 나네요ㅋㅋㅋㅋㅋ
애쓴 게 기특하긴 한데...ㅎㅎ
요즘은 옛날처럼 진짜 나랑 결혼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프로포즈가 아니라
이미 상견례 식장 다 잡고 결혼준비 하면서 따로 프로포즈를 이벤트로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형식적인(?) 프로포즈를 왜 받고 싶은건지 알겠더라구요
'나랑 결혼하자' 이 한마디가 듣고 싶은 거에요. 확신이 필요한 거라구요 엉엉엉ㅠㅠ
저처럼 8년을 세뇌당해서 결혼한 케이스도 그래요.
남자분들, 프로포즈가 의미없는 이벤트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거창한 이벤트를 원하는 게 아니라 예비신랑의 진심과 확신을 얻고 싶은 거에요..!
어떤 이벤트를 했던지간에 마지막에 꼭 '사랑한다 우리 결혼하자' 는 말 까먹지 마세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