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을 권하는 조용한 손
는 바로 그 날. 그러니까 결정적인 3점 홈런을 친 다음 연출됐던 특별한 장면이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다.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어린아이 같이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덕아웃에서 나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정신 없는 세리머니가 모두 끝나고,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는 순간이다. 누군가 다가와 그에게 조용히 초록물 한잔을 건넨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컵을 받아든 이대호는 곧이어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팀의 간판 스타이자, 클럽 하우스의 리더나 다름없는 로빈슨 카노였다. 순간 당황했음이 역력했다. 얼마나 뜻밖이었으면, 공손히 머리까지 숙이며 두 손으로 잔을 받았을까.
덕아웃에 돌아오자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음료수 한 잔을 건넨다. mlb.tv 화면
뜻밖의 환대에 놀란듯 이대호는 머리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mlb.tv 화면
뭐 별 거 아니다. 돈이 드나, 품이 드나. 덕아웃 안에 있는 흔하디 흔한 음료수 한 잔일 뿐이다.
하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 받는 사람의 태도에서 그 행위에 담긴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같은 1982년생이다. 컵을 건넨 사람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나이에 왜 루키 신분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결코 만만치 않은 경쟁에, 쉽게 나아질 리 없는 상황까지.
그런데도 덩치 큰 팀 메이트는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밝고, 열정적이다. 한 타석, 한 타석의 소중함을 절절히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카노가 내민 손에는 그런 동료에 대한 애틋한 경의와 깊은 존중이 담겨 있었으리라.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