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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지금 외계인과 대치중입니다.
게시물ID : phil_121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Aq.
추천 : 30
조회수 : 2564회
댓글수 : 112개
등록시간 : 2015/08/07 16: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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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지금 전 저를 잡아먹으려는 외계인과 대치중입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파란 피부의 외계인이 서 있었어요.
대뜸 저를 보고 '너를 고기로로 분해해도 되겠니?'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당연히 저는 안 된다고 했죠. 말이 돼요?
그런데 외계인이 저보고 '내가 널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납득하면 물러나겠다고요.
그 말을 들었을때가진 일이 생각보다 쉽겠다고 안도하기까지 했습니다만, 이야기를 해 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미칠 지경이네요.

일단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찌어찌 해서 외계인은 저와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구인이 가지고 있는 '상식'은 없기 때문에, 매우 보편적이리라 생각하는 상식조차도 충분히 정당화해서 전달해야만 합니다.
- 외계인은 지구인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외계인은 '종교'나 '영혼'의 관념을 가지지 않는 대신, '합리성'과 아주 기초적인 '윤리성'의 관념은 가집니다.
* 때문에 적어도 종교적 권위에 비추어 살인을 정당화할수는 없습니다.

- 외계인은 주장의 타당성과 행위와의 일관성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저는 지금까지 맛있다고 동물의 고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주장해야 하는 논변은 인류의 육식은 정당화하면서 외계인이 저를 먹는 행위는 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처음에 저는 외계인이 공리주의자일 것이라 가정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네가 나를 분해한다면 나는 매우 고통스럽겠지? 그럼 고통의 총량이 증가할 거야.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이나 내 친구들도 슬퍼할거고.
반면 네가 얻는 이익은 내 고통에 비해 매우 작겠지. 그러므로 이익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냐.
따라서 네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어.>

이에 대한 외계인의 반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통 없이 죽이고 너에 대한 네 주변사람들의 기억도 지우겠음. 죽음 뒤에는 지각도 없고 지각이 없다면 고통도 없음. 오히려 네 남은 삶에 느꼈을 네 고통과, 네 육식으로 발생할 타 생물체가 입었을 피해가 예방됨. 고통총량 감소.]
[우리 종족 얻는 이익 매우 큼. 나 동족과 영혼 연결. 널 먹을 때 1200억에 달하는 우리 종족 모두가 행복.]
[그렇다면 고통의 총량도 감소하고 이익의 총량도 증가. 우주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달성.]

이쯤 되면 위험하다 싶어 공리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2. 칸트의 논변도 외계인에게는 딱히 호소력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도 주장해봤지요.
<일단 두 명제는 너도 동의할거야. 
첫째, 올바른 행위는 다른 인격체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만 대해야 해. 네가 날 먹는다면 너는 인격체인 나를 육식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거고, 따라서 정당화될 수 없어.
둘째, 올바른 행위의 준칙은 보편적 규범으로도 성립될 수 있어야 해. 만약 네가 육식을 위해 인격체인 나를 잡아먹는다면, 너의 종족들이 인격체인 서로를 잡아먹는 행위도 정당화되고 말거야. 따라서 네가 나를 먹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어.>

문제는 제가 어제 저녁으로 식당에서 쇠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외계인은 이렇게 저를 반박했죠.
[너 주장 행위에 대해 비일관적. 너 어제 식당에서 소 사체 섭취. 해당 소 육식 목적으로 도축 및 판매. 소 죽음 간접적 기여.]
[너 어제 인격체 종업원에게 물 가져다 달라 함. 그를 목적으로 삼은 것 아님. 비일관적.]
[너 어제 소 살해 간접 기여. 너 주장대로라면 너와 소 사이에 적용되는 준칙 나와 너 사이에서도 적용되어야.]
[너 소 살해 및 정당화. 따라서 나도 너 살해 및 정당화 가능.]
[너 주장 보편적 행위규범으로 성립 불가.]

저는 주장했죠. 소는 자아개념과 자율성이 없으므로,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나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따라서 소에게 적용되는 윤리준칙은 저에게 적용되는 윤리준칙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이예요.
그런데 외계인은 자신이 [엥완전 개념(옳게 받아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라는 매우 중요한 정신적 능력이 있는 반면에,
인류는 그걸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네 주장대로라면 나도 널 죽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네요. 
반면에 인류도 소도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데도 마구 죽여서 먹잖아요.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저는 어떻게 외계인에게 답변해야만 살아날 수 있을까요.

도와주세요!




출처 비트겐슈타인(人)과의 대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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