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2006~2007년 지하철 공익요원을 하며 겪은 경험담입니다.
#56 [Avec]계단을 내려가는데 술 취한 중년 남성이 젊은 연인들의 앞을 막고 주절주절 술주정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중년 남성을 말리려는데 연인들 중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라."
중년 남성은 남자의 아버지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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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보내고 승강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있는데 젊은 연인들이 벤치에서 서로 껴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열차운행이 끝났으니 나가셔야 한다고 했지만 대답만 '네네!' 하고 승강장 한 바퀴 돌고 5분쯤 후에 왔을 때도 그 자리에서 계속 부둥켜안고 있었다.
앞에 지키고 서서 계속 재촉하니 그제야 겨우 일어났다.
둘은 날 쳐다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서로 몸을 밀착시킨 채 히히덕거리며 느릿느릿 계단을 올라갔다.
10분 후 대합실로 올라갔는데 그들은 거기서도 또 벤치에 앉아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결국, 역무원들이 와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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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커플은 막차시간에 살그머니 장애인 화장실에서 같이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나오기도 했다.
#57 [Village Drum]역무원 김부장님의 하루
어떤 중년 여성이 역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쳐서 김부장님을 보자마자 대뜸 "열차가 연착되는데 왜 방송을 안 해줬느냐!"라며 호통을 쳤다.
원인을 알아보니 방송설비 고장 때문이었다.
역무실에서는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방송을 했는데 승강장에는 방송이 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방송을 안 해줬기 때문에 약속에 늦었다고 역무실에서 난동을 부리며 어떻게 보상해줄 거냐고 따졌다.
김부장님과 다른 역무원들이 계속 사과하는데도 무시하고 본사에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다.
결국은 김부장님이 싹싹 빌면서 택시비로 2만 원을 찔러주니 그제서야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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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년 남성이 매표소에서 2만 원을 주고 교통카드 충전을 하고 나서 잠시 후 다시 찾아와 "내가 3만 원을 줬는데 왜 2만 원만 충전해주냐!"라며 호통을 쳤다.
김부장님은 아니라며 한참을 실랑이 벌였는데 그는 '내가 분명히 주머니에 3만원이 있었는데 지금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다. 자 봐라!’라면서 주머니를 뒤진 손을 꺼냈는데 그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있었다.
그는 "아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휭하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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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를 탄 남성 지체장애인이 역무실에 와서 화장실을 이용하려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김부장님이 장애인 화장실로 데려갔지만, 장애인용 화장실은 이미 누군가 사용 중이었고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질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애인용 화장실 안에서는 노숙자가 자고 있었다)
결국, 일반 화장실로 데려갔는데 양변기 칸은 모두 사용 중이라 좌변기 칸으로 가서 김부장님이 그를 뒤에서 안아 들은 상태로 용변을 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는 계속 미안하다 했고, 김부장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괜찮다고 했다.
#58 [Mudfish]지하철은 보통 1반, 2반, 3반으로 나눠서 3교대로 일한다.
다른 반에 P선배라고 있었다.
P선배를 주축으로 각 반의 선임들은 군대놀이를 했다.
출근 후 대기실에서 선배들과 마주쳤을 때와 역무실에 처음 들어갈 때마다 경례하면서 '안전!'이라고 크게 외치게 했다.
신입이 들어오면 지하철 노선도와 내선 전화번호를 외우게 하고 테스트를 한 다음에 못 외우면 갈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자기 반 후배는 물론 연대책임으로 다른 반 후배까지 대기실에 불러 세워놓고 갈궜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후배들을 엎드리게 한 다음에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워낙 안전사고가 잦은 역이었고, 안전사고 처리가 미흡하면 역무원들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역무원들도 P선배 같은 부류들에게 후배들 군기 바짝 잡으라고 은근히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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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P선배가 근무를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승강장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삐딱하게 서서 바닥에 침을 뱉으며 큰소리로 통화하곤 해서 승객들로부터 민원이 자주 들어와 징계를 받기도 했다.
P선배가 승강장 초소에 퍼질러 앉아 휴대폰게임을 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찍혀서 민원이 올라왔다.
그 결과, 초소는 무기한 폐쇄가 결정되어 자물쇠가 걸렸다.
초소가 없으면 종일 서서 근무해야 해서 굉장히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P선배는 후배들에게 근무교대를 제대로 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후배들은 몇 시간 동안 계속 서서 근무해야만 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로 초소가 3개월 정도 폐쇄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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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Witness Me]싸움 났다고 해서 가보니 젊은 여성과 노년 남성이 서로 멱살을 붙잡고 욕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 상황을 들어보니 술 취한 노년 남성이 걸어가다가 여성과 부딪치자 여성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갑자기 뺨을 맞은 여성도 억울하고 분한지 할아버지에게 갖은 욕을 퍼부었다.
주위에 빙 둘러 서서 싸움구경하던 사람 중 몇 명은 끼어들어서 각자 편을 들어가며 싸움을 말리거나 싸움을 붙였다.
어떤 중년 여성은 젊은 애가 너무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어서 경찰을 불러 저 여자애를 잡아가게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일단 경찰에 연락하고 난 후에 싸움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혹시 목격자 증언하실 분 계십니까?"
그러자 언제 자기네들이 참겼했냐는 듯 아무 말 없이 금새 흩어졌다.
둘을 역무실로 데리고 올라갈 때도 서로에게 계속 욕을 내뱉었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우리를 따라오면서 열성적으로 싸움을 말리던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자폐증과 지체장애가 있었고, 손으로 삐뚤빼뚤 쓴 '교통안내원'이라는 명찰을 목에 걸고 매표소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을 안내해주던 청년이었다.
#60 [Gaejeossi Must Die] 승강장에서 싸움이 났다는 매점 주인의 신고가 들어왔다.
내려가 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어떤 젊은 여성이 울면서 일행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몰려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만취한 중년 남성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구경꾼들에게 물어 정황을 들어보니...
지하철 안에서 그 만취한 중년 남성이 비틀비틀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녔는데 젊은 여성이 그걸 보고 '미친ㅡ놈'이라고 했다가 중년 남성에게 머리카락을 잡혀서 이리저리 휘둘렸다고 한다.
역무원과 같이 중년 남성을 역무실에 데려왔고, 잠시 후 승객들의 제보를 받은 경찰들이 왔지만, 피해자인 젊은 여성이 떠나버려서 신고할 사람이 없어져 처벌할 수 없었다.
중년 남성은 기고만장해져서 '내가 경찰 고위 당직자인데! 싸가지 없는 년을 교육 시켜 줬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라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어쩔 수 없이 대충 수습하고 보내려 하는데 그는 나가면서도 '며칠 후에 검찰청에서 좋은 소식이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라면서 끝까지 거드름을 피웠다.
중년 남성이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데 만취 상태라 행여나 선로로 굴러떨어질까 열차에 탈 때까지 옆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열차를 기다리는 5분여 동안 나는 그의 거드름과 개소리를 계속 들어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