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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하다가 쓴 글(?)
게시물ID : readers_121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우탈
추천 : 1
조회수 : 1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05 20:24:24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을 펼쳐보니 백지들만 가득합니다.
계속 넘기다가 무언가 쓰여 있는 페이지를 발견해요.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책입니다.'라고 쓰여 있을거라구요? 아니요 아쉽게도 아니네요.
그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요. '힘들 때 이 페이지를 펼쳐보세요'
무슨 뜻일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 채 책을 덮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어요.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보겠지 하는 마음에 '힘들 때 이 책을 보세요.'라는 메모를 남기고요
시간이 지나고 그 책이 책상 위에 있는 게 당연하게 인식될 때 즈음이었을까요. 
어느 날 그 책이 사라져 있었어요. 
누가 가져간 걸까요?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올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책이 다시 돌아왔어요. 
이 책이 어떻게 변했을까가 가장 궁금했지만 저는 힘들지 않았기에 책을 펼쳐보지는 않았어요. 
만약에 누군가 자신의 힘든 일을 책에 적어놓았다면 그걸 제가 몰래 보는 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 책이 언제 돌아올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메모를 붙여 놓았어요. 이번에는 책이 필요 없어진다면 다시 이곳에 올려 놓아달라는 글도 적었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에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누군가 또 책을 가져갔어요.
사람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고 책 속 내용이 궁금해져서 펼쳐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책이 없어 다행히 펼치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은 못한 거겠죠.
그 책이 지금 나에게 없다는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에게도 힘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책이 돌아올 때까지 힘든 일을 생각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다고 없는 힘든 일이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요.
아 책이 돌아왔네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만 보라니 정말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나는 책을 펼쳐보지는 않아요. 힘들 때 펼쳐보라고 적혀 있었으니까요.
어느샌가 이 책이 제 삶의 일부를 차지했어요.
언제 사라질까 사라지면 다시 언제 돌아올까 계속해서 이것만 생각했죠. 계속 이것만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이게 힘들 때라는 사실을요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기뻤어요.
이제 책을 펼쳐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그 책이 있는 곳에 갔어요. 
책상 위에는 당연하게도 책이 있었고 나는 그 책을 급하게 펼쳤어요.
그 책은 이미 여러 번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상태였어요.
그러나 책 속에는 아무런 글도 적혀있지 않았어요. 여전히 백지였고 심지어는 힘들 때 펼쳐보라는 페이지조차 백지였죠. 
이게 무슨 일이죠? 저는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곧이어 슬픔, 절망도 느꼈죠.
이 책이 나에게 준 것은 분노 슬픔 절망뿐만 아니었어요. 호기심 인내도 나에게 주었죠. 그러나 이런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어요. 
나는 그저 분노하고 절망하는 과정만을 반복했어요. 계속 그러한 과정만을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쳐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책을 펼쳐보았죠. 책은 전과 달라졌어요. 
제가 분노를 하면서 찢은 페이지도 있었고 절망하면서 눈물로 인해 젖은 페이지도 있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 나도 감정이 있구나 하고요. 웃기다고요? 글쎄요 저는 지금까지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이 책 덕에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었죠. 그러나 그 때문에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감정들을 가지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느끼는 걸 그대로 받아들였으니까요. 다른 동물들처럼 거부하지 않고 내가 주는 것은 모두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창조물이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이상해진 걸 깨닫고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야기를 지어냈어요.
하지만 그건 지어낸 이야기 사실은 사람들이 모두 다른 면을 가지고 분노하고 절망을 느끼게 된 건 제 탓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판도라라는 가상의 여인에게 죄를 물었어요. 그리고 그 판도라는 나에게 왔어요. 나도 가상의 인물이고 그녀도 가상의 인물이니까요.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누가 그 책을 올려놓았고 누가 그 책을 가져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책으로 인해 감정을 가지게 되고 외로움을 느낀 내가 이제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중요하죠.
너무 긴 이야기였네요. 미안해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죄 없이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판도라가 너무 불쌍했는걸요.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미안해요. 그러니 애꿎은 판도라를 욕하지 말고 나를 욕하세요.


-트위터에 장난으로 쓰다가 그냥 훅훅 써지길래 쓴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이게 어떻게 이렇게 나왔는지는 저도 몰라요 쓰다 보니 이렇게 길어졌네요. 사실 아주 짧게 글이 더 있지만, 그냥 안 쓸까 해요. 그게 제일 나은 것 같아요.

글 쓰고 제일 어려운 건 포스팅할 때 쓸 제목 정하기 같아요. 제목 하나만 보고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제가 그렇고요 하지만 괜히 어려운 한자를 쓰거나 복잡하게 생각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간단하게 바로 떠오른 제목으로 썼어요. 읽을 사람은 읽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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