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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천 전투 (670년) – 당과 토번의 전쟁
게시물ID : humorbest_12150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사광황
추천 : 16
조회수 : 299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3/02 21:32:52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2/28 15:26:00
앞의 글 나당전쟁과 토번(티베트) - http://todayhumor.com/?history_22930 에서 언급했던, 신라의 삼국통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요인 중 하나인 당唐과 토번(吐蕃)의 670년 대비천(大非川) 전투에 대해서 조사했다.
 
비교적 우호적 관계였던 당 태종과 토번의 송첸캄포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자 토번은 고구려와의 전쟁에 집중하고 있던 당나라를 대상으로 당의 실크로드 헤게모니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향후 200년 동안 계속되는 싸움을 통해 50년 가량을 토번이 실크로드를 장악했는데, 그 중요한 싸움들 중 처음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이 대비천 전투이다.
 
670년 당 고종(高宗)은 설인귀(薛仁貴)를 나살도행군총관(邏薩道行軍總管)으로 임명하고, 토번을 공격하게 했다.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은 토번군을 이끌고 칭하이 호(靑海湖) 남쪽의 대비천(大非川)에서 맞서 싸워 당군을 궤멸시키고, 설인귀 등 주요 장수들을 사로잡았다. 가르친링은 포로가 된 당나라 장수들을 훈계하고 당나라에 돌려보냈는데 이 전투를 대비천 전투라고 한다. 설인귀는 귀국 후 대비천 전투에서의 패전 책임을 지고 한때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대비천에서의 패배로 서역에서의 당나라 위상은 실추되었고, 가르친링은 여세를 몰아 670년에 당나라가 장악하고 있는 서역을 공격했다. 그 결과 당나라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속한 중요한 4개 도시인 안서사진(安西四鎭), 즉 카라샤르(焉耆)ㆍ쿠차(龜玆)ㆍ호탄(于闐)ㆍ카슈가르(疏勒)등의 주요 도시들이 토번의 영토가 되어 서역이 토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국경의 완충지대였던 당의 속국 토욕혼도 사실상 멸망되어 수도 장안도 안전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역학구조에도 변화가 왔는데 신라의 한반도 패권, 발해의 건국, 돌궐의 독립, 거란의 성장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세계사 연표는 :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mhistory1.jsp
 
다음의 글에서 발췌 : http://yellow.kr/blog/?p=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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