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낱같은 인연을 움켜쥐고 운명이라 굳게 믿고 사랑에 빠졌다. 아무도 없어야 마땅했을 내 옆자리의 작은 여자덕분에 꿈꾸듯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먼 미래를 속삭이며 울고 웃고 사랑하던 시간이 닿은 곳은 가까운 이별. 우리가 말하고 말하고 말했던 그 모든 일들이 이제 다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나의 이별도 나의 사랑도 세상에서 수없이 일어났었고,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운명이라 굳게 믿고 상대방의 한마디 행동하나에 찬란한 삶에 의미를 걸고, 미래를 꿈꾸며 열과 성을 다해 사랑하고, 영등포 한복판에서 통곡하며 이별 할 거라는 걸 안다. 결국 꿈꾸듯 행복한 날들도, 죽을 듯 힘든 날들도 누구나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보편적인 일인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얼마 후면 지나간 일이 없던 것 처럼,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희미해지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는 내 목숨과 함께 붙어 떨어지거나 흐릿해 지지 않을거라는, 그래서 결국엔 내가 죽는 날 까지 그때들이 남아있을거라는 분명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