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욜 감독이 한 얘기를 최보윤 기자님이 재구성한 편지입니다.
----------------------------------------------------------- 영표. 자넨 날 못봤겠지만 난 그동안 자넬 봐왔네. BBC 라디오 해설로 여기 독일까지 오게 됐다네. 그때였지. 한국과 프랑스와의 경기가 있던날. 나도 라이프치히 경기장에 있었다네. 아, 프랑스라고 하면 자네가 서운해할 지도 모르겠네. 알려졌다시피 BBC 특별판을 내면서 한국이 프랑스에게 0대3 정도로 질 거라고 예상했던 게 나 아닌가. 1승1무1패로 한국이 16강에 탈락할 거라고 썼었지. 아마 자넨 그걸보고 기분이 나빴을 지도 몰라. 한국을 얕봐서가 아니라 프랑스가 그만큼 강할 것이라곳 생각했지. 아무리 프랑스의 전력이 나빠졌다고 해도, 과거의 명성은 이렇게 큰 대회에서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거든. 사실 그동안 한국 경기를 조금 봤지만 예전에 느꼈던 그런 투지가 약간 사라졌다고 생각했거든.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악바리 같은 그런 투쟁 정신 말일세. 하지만 난 그날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알게됐네. 내가 최근 저지른 실수 중에 아마 손꼽히는 게 아닐까 싶네. 한국은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더군. 아니 후반 중반 부터 더 빨라지더군. 아무리 축구가 100m 달리기가 아니고 마라톤에 가까운 운동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정신력을 갖긴 쉽지 않았을 게야. 당연히 자네의 경기를 집중해서 봤네. 아무리 그래도 자네는 내 식구 아닌가.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 지단을 앞에 두고도 1대1 돌파를 하는 장면, 상대 수비벽을 무너뜨리며 깊숙히 침투하는 장면... 참 신기해. 역시 수비는 잘해도 어려운 모양이야. 그렇게 잘하는 데도 아무래도 눈이 가는 건 공격수들일 테니 말일세. 자네. 역시 세계 최고 선수급일세.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건 아니더라도, 분명 아는 사람들은 잘 알걸세. 자네가 그날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얼마나 몸바쳐 뛰었는지. 자네가 힘들게 뛰어도 화면엔 잘 안잡힐 경우가 많더군. 그거 아는가? 그날 비에라와 사뇰이 자네 때문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보였는지? 영표 자네는 우리 팀에서도 항상 리더십 있었어. 외국 선수인데도 영국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더군. 저메인 데포가 처음 우리팀을 나간다고 했을 때 사실 분위기 안좋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삭막한 분위기를 풀어준게 자네인 것 같네. 데포가 그러더군. 영표랑 믿음이 같아서인지 친근감도 느끼고 얘기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고. 경기 전에도 다른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나 변함없이 리더십있게 행동하는 게 참 마음에 들었네. 아, 그리고 BBC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이영표라고 계속 불렀다네. 영표리 대신. 여기 있는 BBC 친구가 처음에 “감독님이 항상 이영표라고 부르시잖아요. 근데 여기 리스트엔 영표 리로 돼 있는 데 어떤 이름이 맞나요?”라고 묻더군. 그 친구 생각에 리스트가 잘못됐다고 여겼나 봐. 내가 항상 이영표가, 이영표가, 라고 부르니. 그게 한국식 아닌가. 이영표. 영표. 그동안 항상 말해왔지만 자넨 세계 최고의 윙백 감일세. 잉글랜드와서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더 성장했을 거라 믿네. 지금 대표팀에서도 자넨 분명 눈에 띄었어. 경기장에서 본 사람들은 자네가 얼마나 그라운드에서 미친듯이 뛰어다녔는지 알게 될 걸세. 자네가 기분 좋게 웃길 바라네. 한국에도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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