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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이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하여.
게시물ID : sisa_7364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heologeion
추천 : 27
조회수 : 1956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6/05/19 18: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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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지난 17일 새벽, 20대 여성이 참혹하게 살해됐습니다. 채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보냅니다. 온갖 종류의 사회적 죽음들이 너무나 빈번하고 가까운 대한민국이지만 이번 죽음만큼은 유난히 충격적이고 또 아픕니다. 뉴스를 처음 보고서 방망이질 쳤던 가슴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으로 너무나 흉악한 범죄가 들어왔습니다. 고인은 죽음과 관련지을만한 아주 사소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우범지대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네에서 친구를 만났고, 번화가에 위치한 건물의 화장실을 찾았을 뿐입니다. 내가 희생자 될 수도 있었다는 공포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슬픔이 일파만파로 퍼져가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뭔가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것이 전부라면 그나마 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라서 범죄의 표적이 되었다는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도 두려움과 분노로 강남역을 찾는 수많은 젊은 친구들의 생각도 저와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이 여성이 대상이 된 묻지마 범죄인지 여성혐오가 동기가 된 증오범죄인지 여부는 사법당국이 엄밀히 수사해 밝힐 부분입니다. 물론 용의자가 젊은 여성을 차분히 기다렸다가 무참히 살해했고, 여성혐오로 의심되는 내용을 살해동기로 밝혔다는 점에서 증오범죄로 봐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냐 증오범죄냐 구분보다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여성들이 강력범죄로 희생된다는 사실입니다. 2014년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을 상대로 저질러졌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1995년 72.2%였던 여성 피해자 비율이 2014년에 87.2%로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최근 꾸준히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 역시 저항력이 약한 약자, 특히 여성에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문제로까지 부상한 여성혐오 확산과 범죄의 관련성을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에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국민들에게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위안을 넘어, 해법을 드려야 한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가 깊고 넓기에 당장의 명쾌한 해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정부와 사회가 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관성적인 해법은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괴물의 소행인양 외면하거나, 피해자가 더 조심하라며 뒤트는 것은 문제를 감추고 키우는 것입니다. CCTV 확충 등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관용 없는 처벌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예방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를 삽시간에 불태울 혐오범죄에 대해서는 불씨 단계에서부터 단호하고 엄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혐오발언이나 사소한 데이트폭력도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방치되어선 안됩니다.


반사회적 증오와 편견을 키우는 병든 사회도 고쳐야 합니다.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 일상화된 차별과 폭력이 증오범죄의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논리가 압도하는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 없이는 충격적 소식은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이 특별히 조심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아 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국회에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다짐과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올립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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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나 다른 시민 여러분들이 가장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가장 듣고자 하는 바를 일목요연하게 말씀해주신 글이라 생각합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혐'이라는 살해 동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수면 아래에는 빙산의 아래 부분 처럼 커다란 증오와 병적인 아픔이 존재합니다. 바뀔 수 있다고 믿고, 하나 하나 바꿔서 '여혐'이나 '남혐' , '헬조선' 같은 말이 모두 사어로 전락해 건강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sang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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