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유를 2002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고, 메일링 서비스로 매일 아침 배달되어오는 '오늘의 유머'를 좋아했었죠. 그리고, 생각없고 겁도 없던 초등학생 꼬마는 어느날. 운영자님께 메일을 보내게 됩니다. "운영자 아저씨. 제가 올린 유머글도 메일에다 실어주세요!"
그리고, 다음날 배달된 유머에는 그 전에 제가 게시판에 올린 글이 배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운영자님을 키다리 아저씨라고 생각했어요. 단 한번도 실제로 만난 적 없고. 본 적도 없지만 초등학생 꼬마가 보낸 메일에 친절히 답변해주고 꼬마의 되도 않는 철없는 부탁을 들어준 아저씨.
그 후로 저는 1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유를 떠나지않고 늘 함께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가치관과 신념, 사상들은 오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오유는 저에게 단순한 인터넷 커뮤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요.
저는 운영자님이 오유를 어떤 사이트로 만들려고 하시는지를 압니다. 사람들이 편히 쉬어가고 웃음을 찾아가는 공간. 시원한 분수에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싱긋 미소짓는 도심 속의 작은 공원. 그리고 공원을 지키기 위해서 뒤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운영자님의 모습도 알고있습니다.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를 잡고 길에 떨어진 낙엽을 쓰는. 티가 나지는 않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다면 바로 불편함을 느끼게될 일들. 운영자님은 오유를 위해 그런 일을 하고 계시지요.
운영자님 혼자서 오유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더 이상 오유는 02년 때처럼 작고 옹기종기한 커뮤니티가 아닌걸요. 도심 속 작은 공원은 어느새, 수천 수만명이 다녀가는 유원지가 되어버린지 오래인데, 관리하는 사람은 여전히 운영자님 한분 뿐이죠. 유원지가 고요하게 돌아간다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만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싸움판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두 웃고 즐기기 위해서 유원지를 찾았는데. 어느순간 쉬지도 못하고 기분만 더럽힌 채 유원지를 떠나고야 맙니다.
운영자님의 고민이 많으실 거란거. 알고 있습니다. 공원지기로써 공원이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도요.
어제 올리신 공지도 그런 일환에서 작성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즐기고 이해하고 사랑하자고. 운영자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분입니다. 열 한 살 꼬맹이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시던. 국정원이라는 거대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공원을 지켜내셨던. 바보 운영자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운영자님. 모두가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김여사 단어의 허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김여사'는 명백한 헤이트 스피치입니다. 설령 사용하는 사람이 그런 의도로 사용하지 않는다해도. 이 단어는 4,50대 이상의 중장년층 여성 운전자를 매도해버리는, 위험성이 있는 단어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50대 여성 운전자십니다. 20년간 운전하면서 단 한번도 본인 과실의 사고를 내신 적이 없는, 1종 대형 면허 소지자이십니다. 그러나 '김여사'라는 단어는 이런 저희 어머니마저 중년 여성 운전자라는 이유만으로 '무개념 운전자'로 매도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예전에 오유에 글 하나가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 또래의 여성분께서 고가의 스포츠카를 운전하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밑의 댓글에는 '차 곧 부서지겠다' '아깝다' '여사 왈 : 꼬우면 들이받아버린다'라는 내용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진 속 여성분은 우리나라 여성 1호 카레이서이신 김태옥님이셨지요.
이외에도 명백하게 운전자가 여성임이 드러나지 않은 무개념 운전자 사례에도 '역시 김여사' '김여사 한 건 하셨네'와 같은 댓글이 달리는 등, '김여사'라는 단어는 무개념 여성 운전자를 지칭하는 것을 벗어나서 무개념 운전자 전체를 '중년 여성 운전자'로 한정짓고 매도하는데 쓰이고. 또 선량하고 모범적인 중년 여성 운전자를 무개념 운전자로 정의내리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무개념하고 몰상식한 운전을 행하는 운전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운전에 대해 욕을 하고 비난을 해야지, 왜 그 사람의 성별이 도마에 오르고 전면에 비추어져야 합니까? 왜 무개념 남성 운전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습니까? 김사장, 김기사라는 단어가 쓰인다고 해서 그 단어들이 김여사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 단어들은 김여사의 사용 이후, 반발 때문에 억지로 생겨난 단어입니다. 단어로써의 생명력이 없을 뿐더러 영향력도 없습니다. 그리고 엄연하게 따지자면 김사장, 김기사는 '남성' 운전자만을 지칭하는 단어도 아니죠. 여자도 기사가 될 수 있고 사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누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쌍욕안하고 김여사라고 정중히 칭해주는 것을 다행으로 알라고.
중년 여성 운전자를 김여사로 매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욕이 낫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김여사로 매도당하는 것 보다, 무개념 운전자이기 때문에 남성운전자와 동등한 욕을 먹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요.
애초에 같은 잘못을 했는데 왜 남성운전자에게는 욕을 하고, 여성운전자는 '김여사'라는 단어를 사용해 무개념한 행동과는 전연 상관이 없는 성별을 통째로 묶어 비하하는지 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둘다 같은 잘못을 했다면 똑같이 욕을 먹던가 똑같이 성별을 묶어 비하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하지만 저는 어디에서도 '남성운전자'가 '남성'이라서 매도당하고 비하받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운영자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김여사 발언 허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강남역 사건 이후, 많은 남성분들이 잠재적 살인범으로 일반화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계시지요. 대다수의 여성분들도 마찬가지로 '김여사'라는 단어로 일반화되고, 잘못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 '성별'이 화두가 되어 비난 받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웃고 즐기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김여사'를 불편해하는 유저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운영자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