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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사건에서 빠진 것.
게시물ID : freeboard_1316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2222
추천 : 1
조회수 : 1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20 01:20:04

곰곰히 떠올려 보니, 타인의 크나큰 불행을 받아 들이는 제 마음의 흐름은 이런 듯 합니다. 마지막 순간 끔찍한 고통을 느꼈을 고인에 대한 아픔에 공감하고, 백 만배는 더 괴로워할 가족, 친지들의 아픔을 감히 이해해보려 애쓰는 겁니다. 마치 자기 일처럼 느껴 이 사건에 분노하시겠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지요. 우리는 이 사건도 곧 잊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 저장 방식이 그렇잖아요. 자세한 것은 디즈니의 인사이드아웃을 보면 나옵니다.


저는 미국의 언론에서 가끔 보는, 미 대통령의  정형적인 위로문이 떠오릅니다. ‘남은 가족들의 고통에 위로를 전한다.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처럼 공적인 표현이겠지요. 그런데 그 말은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다듬어져, 정말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앞에서 꺼낼 수 있는  몇 안되는 말로 남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면서 이런 조언을 많이 들었습니다. 위로하려 들지 마라. 고통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려 하지 말라는 비트겐슈타인적 조언들이요.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같이 있어 줄게요 정도 밖에 안남습니다. 


지금 강남역 피해자 앞에서는 어떤 말들을 하고 있습니까. 그 고통에 대해 어떻게 받아 들입니까. 고인이 여성 혐오로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온 나날들을 떠올립니까. 고인이 마지막 순간에 여성 혐오로 내가 이렇게 죽고 있구나 생각했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고인의 가족들이 여성 혐오로 내 딸이 죽었구나 슬퍼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애초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도 저렇게 당하면 어쩌지?’하는 생각만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닙니까? 그래서 섣불리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면 안된다는 말 부터 꺼내고 있는 건 아닙니까?


 신나게 같이 노래 부르다 잠깐 화장실에 간 뒤 돌아오지 않는 여자 친구를 찾아간 남자 친구의 마음을 생각해 봤던 건가요. 딸 귀가 시간 늦어지는데 그래도 한참 연애할 때지, 걱정하던 어머니 마음을 생각해 봤던 걸까요. 범인을 찾아가 죽이고 싶을 아버지 생각은 해봤을까요. 이제 막 연애한다고 날 마다 이뻐지던 딸이 가족들 마음에 어떻게 남을지 생각해 봤을까요. 


어느 순간 딸이 여성 혐오에 맞선 투사 아이콘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꿈을 꿨는지,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개인은 소멸한 채 타인들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강남에 딸 위로하는 글귀가 붙어 있다고 하니 부모님도 한번 찾아와 읽어 보지 않겠습니까. 하나하나 읽다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떠올려 보지 않겠습니까.


여혐, 남혐 다 제쳐두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나 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깊이 인사하고 꽃 하나 바치는게 그간 우리가 해오던 인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여혐 사건으로 몰면서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면 같은 사건이 두 번 벌어지지 않습니까. 여혐을 하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착해지기라도 합니까? 차라리 조현병 환자 특별 관리하라는 피케팅을 하는게 더 낫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말이죠. 아시잖아요. 지금은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누군가 정죄하고 싶으신가요? 미안한 말씀이지만 죽은 분과 그 가족을 위한 목적은 아닐 겁니다. 나는 당하고 싶지 않다. 혹은 또 다른 개인적 지향이 자리잡고 있다면 스스로가 괴물이 된 거 아닐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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