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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짧은 지식으로 내멋대로 오독하기 (스포있어요)
게시물ID : movie_575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헛계수
추천 : 0
조회수 : 5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20 02:59:50

-선과 악, 귀신과 종교, 꿈과 현실 등등등 해석의 여지가 많아 이야기거리가 풍부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머리가 나쁘니 각각의 상징을 해석해볼 여력은 별로 없고요. 


제가 곱씹어 볼 수 있는 딱 하나의 포인트만 잡아보자면,,

곽도원의 그 대사가 딱 기억에 남네요.


천우희와 곽도원의 마지막 대면 씬에서(1번 밖에 안봐서 제 기억이 확실친 않지만)


곽도원이 '왜 우리에게, 왜 우리 딸에게 그런 불행이 닥쳤느냐'는 질문을 했었죠

천우희가 대답합니다 '니가 먼저 해하려고 하지 않았느냐-' (라는 의미였었죠..)

곽도원이 대답하죠. '그건 내 딸! 내 딸을 살리려고!!!'


여기서 저도 그랬지만, 관객 누구나 곽도원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죠. 곽도원은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이 정말 옳은 건가요?


영화 초반부로 돌아가보죠. 

딸과 일본인 사이에 뭔가 수상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곽도원은 일본인을 다시 찾아가죠. 그리고 그 실체가 명확하지도 않은 일본인에게 온갖 저주와 증오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개를 때려죽이지요. 그 뿐인가요. 친구들을 조직해 아예 일본인을 죽이러 나섭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곽도원은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겁도 많고 특출난 능력도 없는 소시민. 하지만 가족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가족을 지키려는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죠. (곽도원의 연기도- 일본인에게 욕설을 퍼붓기 전과 후로 명확하게 나뉩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아주 쉽게 곽도원에게 감정 이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과연 옳은 건가요? 가족을 지키려는 집념은 다시 말해 누군가를 향한 ‘증오’로 나타납니다. 내 가족을 위협한다고 생각되어지는 대상을 향한 증오. (그러나 그 대상이 실제로 적인지는 확실치는 않은데도요)


자 여기서 터무니없는 비약을 한번 해 봅시다.


용산 참사 사건을 피상적이나마 떠올려봅니다.그 당시 용역 깡패가 한 명 있다고 칩시다. 아니아니,,, 깡패는 좀 극단적이니까,,, 깡패를 알선해주는 브로커가 있다고 칩시다. 용역 깡패 브로커. 그런데 그 브로커에게도 끔찍하게 아끼는 딸이나 아들같은 가족들이 있겠죠. 그 브로커를 포함한 용역깡패들에게 저항하는 철거민은 브로커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요?


철거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임무가 완수되어야 브로커는 돈을 받는다고 칩시다. 그 돈으로 브로커는 끔찍하게 아끼는 자기 딸과 아들에게 맛난 음식을 사주겠죠. 하지만 그의 일은 본질적으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회적 약자를 때려잡는- 행동입니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와서 그에게 정의의 심판이 내려진다고 한다면,그 브로커는 뭐라고 외칠까요? “내 가족!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라고 곽도원과 똑같이 외치지 않을까요?


괜히 브로커로 예를 들었군요. 그냥 김석기 전 경찰청장(20대 국회의원 당선자 퉤)을 예로 들 걸. 그러고 보니 곽도원이 경찰 옷을 입고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네요. 


곽도원은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해놓고 어찌하여 김석기 같은 인간과 비교를 하냐고 하시겠죠? 하지만 저는 악행의 정도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용산참사를 방관하고 부추긴 김석기의 행위는 엄청난 과오임은 분명합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나 자신의 안위, 내 가족의 안전과 생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저질러지는 악행에 가까운 행동들이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띄고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단순하니까 단순한 예를 들어볼게요. (김석기 같은 인간과 비교를 하니 제 설득력이 떨어지는 거 같아서)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누군가 왕따를 당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요?


a) 왕따는 옳지 않다. 니가 그 왕따 당하는 친구의 힘이 되어줘라. 왕따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맞서라-


옳은 답변입니다만, 한국 사회에선 틀린 답변이죠.

한국 사회에선 다음이 정답입니다.


b) 왕따는 옳지 않다. 그러나 니가 굳이 나서진 마라. 괴롭힘에 동조하지도 말고- 굳이 걔를 돕겠다고 나서지도 마라. 그냥 무난하게 반 친구들과 잘 지내라.


당신이 회사 조직의 비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칩시다. 한국 사회에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양심선언을 통한 내부고발자로 나서느냐? 땡. 비리에 동참하지는 않되 크게 문제삼지 않는게 가장 현명한 겁니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룰입니다. 비겁하지 않냐고요? 아닙니다. 자신의 안전, 가족의 안위, 생계를 위해선 현명한 것이죠.


덧붙이자면 김석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경찰옷을 입고 있는 이상, 위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고, 자신의 안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라고 언젠가 변명할 것 같네요.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의 양심에 따른 행동, 사회적 정의에 따른 행동보다 우선하는 게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동입니다. 한국 사회는 사람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어요. 생존을 위한 안전망과 선택의 여유를 줄여가면서요. 


때문에 이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은 자신에게 적입니다. 그 존재들이 실제로 선인지 악인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자신과 맞서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은 악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일본인이 스스로 악마이냐 아니냐를 밝히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협할 것만 같은) 존재들은 그에겐 악인 거에요. 그래서 곽도원은 일본인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 그의 개를 때려 죽입니다. 영화 엔딩에서조차도 자신의 행동에 떳떳합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고군분투했으니까요. 그에겐 자신의 행동이 선입니다.


저는 일본인이 적그리스도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곽도원과 산속에 벌였던 추격씬을 떠올려보죠. 절벽 아래에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참아내는 그의 모습은 그저 죽음의 공포를 피해 달아나던 힘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흔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의 마지막 모습은 악마였습니다. 영화에서는 그가 선인지 악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됩니다. 


물론 곽도원의 시각에서는 절대악이죠. 일본인이 실제로 악인지 선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지만 그에겐 절대악이에요. 자기 가족을 위협했으니까(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했으니까)


영화 마지막에 양이삼이 동굴로 찾아가 일본인과 대면합니다. 여기서 양이삼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선인지 악인지 판단을 내려야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얘기합니다. “내가 악마인지 아닌지 말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그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자신의 양심에 근거해서, 사회적 정의에 근거해서, 선인지 악인지 판단을 내려야하는 것이죠. 판단을 내려야하는 대상은 성흔을 가진 그리스도의 모습이기도 하고, 눈이 시뻘건 악마이기도 합니다. 그 존재 자체로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어지지 않아요. 다만 자신의 믿음과 신념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곽도원으로 돌아가 봅시다.


'왜 우리에게, 왜 우리 딸에게 그런 불행이 닥쳤느냐'

'니가 먼저 해하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내 딸! 내 딸을 살리려고!!!'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살생(개)이나 살인(일본인)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자신의 양심과 사회적 정의에 근거하여, 자신의 눈으로 선과 악을 올바르게 판단해야만하죠. 


하지만 이상적인 얘기입니다. 한국 관객 누구나 곽도원을 비난할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곡성은 그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요? 니가 곡성에 있는 곽도원이었다면, 저렇게 하지 않을 수 있니? 바꿔 말하면, 헬조선에서 살고 있는 네가 바로 이렇게 살고 있어- 라고 말이죠.


* 지식이 짧아 오독과 비약으로 영화를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독도 영화를 풍요롭게 한다는 정성일 아저씨의 말을 대책없이 신뢰하며,, 졸필이나마 끄적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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