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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히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을 사회적으로 적극 이용했으면 합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3171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기엔숯불
추천 : 1
조회수 : 33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21 02:26:36
베스트 올라오는 글들이나, 게시판 글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제 생각이 주류는 아닌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런 생각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피드백도 받아보고 싶어 비공감 폭탄을 각오하고 글을 싸질러 봅니다.


이 사건의 원인은 여성 혐오일까?

저는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 여성 혐오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언론에 공개된 이야기들을 봤을 때, 이번 사건의 범죄를 저지른 치는
사회적으로 공감받지 못하고 소외 당해온 자로 보입니다.
그 사회적 소외에서 오는 분노 + 정신병력이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자는 그 분노를 하필이면, 
오랜 시간 이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여성이라는 주체에 풀어버립니다.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왔기 때문에 여성을 노렸다."고 말했지만,
그가 가진 분노의 원인이 오로지 '여성'에만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화풀이는 한강에서 한다고 하지요.
사회적인 소외로 인해 쌓인 분노를,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골라 풀어버린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상욱씨의 트위터가 저는 참 공감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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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은 여성 혐오가 아니라는 의견을 견지하면서도,
결국 범행 대상자를 고름에 있어, 많고 많은 사회적 약자들 중에서도, 여성이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여성 혐오'가 개입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여성 혐오'를 적극적으로 공론화 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여성 혐오'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이 사건의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여성 혐오로만 몰아가느냐며 거부감을 보이구요.

사실 이번 사건만으로 그 분노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남녀 커플이 싸울 때 그렇지요. 작은 갈등이 곧바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웃어 넘기고, 참고 넘기고. 어쩔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화내도 소용없으니까 같은 이런저런 이유로 
풀리지 않고 그저 쌓여오기만 했던 갈등과 분노는, 작은 도화선에도 쉽게 폭발하지요.

여성들은 길고 긴 시간동안 이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성차별을 인내하며 살아왔지요.
아들인 나는 친구집에서 하룻밤 자고와도 되지만, 끝내 누나는 보내지 않았던 우리 가족안에서 느끼는 차별감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항상 가족을 위한 희생의 아이콘으로 생각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 같은 평생에 걸친 희생같은 것,
그 외에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명절마다, 숱하게 겪어온 차별적 상황 등에서 한, 울분, 분노는 축적되어 왔을 겁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는 비단 언론에만 적용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사회의 문화는 남성들에게 알게 모르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지 않았던가요?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 여성의 행실을 지적하는 이야기는 너무 흔한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 정도로 '여성 혐오'가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못해온 것에는
여성들이 한 번도 제대로 집단화 되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메갈이 생긴 이유가 뭐였던가요. 일베에서 벌어진 병신 같은 짓들에 대한 반발, 분노가 메갈 탄생의 에너지원이지요.
축적된 여성들의 분노가, 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집단으로 구체화 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분노를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작은 부분이라도 부정당한다고 느끼면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은 여성혐오가 아닐 것이다라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견에도
메갈의 적지 않은 구성원들이 심히 공격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환경에서, 여성 혐오 문제를 대단히 소극적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에 저는 동의합니다.
저만 해도 여성혐오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니까요.
여성 혐오 문제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나 역시 잠재적 가해자 혹은 방관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도 않고, 차별도 안하는데, 왜 나까지 매도 당해야 하나!"
"함부로 일반화 해서 매도하지 말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린 결국 이 사회에서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직접적 책임까진 아니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직접적 가해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 사회에서 '여성 차별'문제가 실재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고자 합니다.


지금은 추모가 중요하고, 이 사건을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대해서

고인에 대한 추모는 당연한 것입니다. 
끔찍히도 황당한 이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분, 그리고 그 주변분들이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고통이야 따로 말해 뭐하겠습니까.
마땅히 우리는 그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쳐야 한다는 의견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제기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이번 사건의 범죄자가 이런 일을 벌이기 전에, 사회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고
누군가는 공감 능력등의 인성 교육보다는, 그저 시험 잘보는 기계로만 키우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그 어떤 이슈보다도 쉽게 대중에게 어필 될 수 있는 이슈는, '성차별', '여성 혐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 어떤 키워드보다도 위 키워드가 폭발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반증되듯이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키워드에 흥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저도 이런 긴 글 잘 안 씁니다. 오죽 이 키워드가 뇌리에 박혔으면 이런 졸필을 싸고 있겠습니까.)

하나의 사건으로 촉발되는 에너지는,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거나, 때로는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지요.
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뭔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만이
피해자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모 만으로 이 사건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여성 혐오'를 언젠가 이 사회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한다면,
이번 사건 만큼 이 이슈를 사회 전체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이 사회에 만연해있는 문제라, 평소에는 제기해 봐야 폭발력을 가지지 못하는 탓이지요.

메갈 등이 이번 사건에 이리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는 
이번에도 이 이슈를 제대로 공론화 하지 못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 위기감이 바탕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비극적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비정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이슈화 시키고, 실제적으로 인식의 변화의 계기로 삼는다는게
이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면 어려운 것 역시 현실이니까요.


그러니까, 이 참에 더 적극적으로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대화하지 않으면, 입장 차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로 헛점만 찾아서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메시지의 내용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 하자는 겁니다.
다른 부분이 아니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 찾아내자는 겁니다.
왜 없겠습니까.

그럼으로 인해,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공감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얻고, 서로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를 통해, 결국 이 공동체에 유의미한 진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미치광이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 
이 나라의 성평등 의식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사건이 되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 이야깁니다.
글 못쓰는 놈이 꼭 길게만 쓰는데, 이 글이 꼭 그러네요.
너무 졸려서 도저히 퇴고는 못하고 기절하러 갑니다.

부디 소모적인 콜로세움이 열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으므로, 비난, 비판, 의견, 가르침 다 각오하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스스로, 잘못을 지적받고도 솔직히 인정 못하는 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아, 저는 일단 자러 갑니다.
좋은 밤 되시구요.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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