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란씨, 이번주 토요일에 양평가서 얘기 이어가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바비큐도 하고~ 우리 가족들하고 같이 ㅎㅎ"
'네'라고 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들뜬 마음이 넘실대는 욱과장님의 메시지다.
나는 사람좋은 웃음을 띄며 말했다.
"네, 좋아요. 수석님은 괜찮으시대요?"
욱과장님은 남편한테 물어보겠다며 벌써 신이 나셨다.
20분 후 도착한 메시지에는 140자 가득 실망이 넘친다.
남편이 테니스 모임 약속이 있는데,
깜빡하고 말을 안해줬단다.
욱과장님은 약속이 갑자기 생긴 것 같아서 의심쩍지만
믿어줘야지 어쩌겠냐고 하셨다.
욱과장님의 모임추진 실패는 처음이 아닌데,
오늘은 유독 미안해 하신다.
누구보다 과장님 본인이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아무래도 그 날 화가 덜 풀렸나봐."
"수석님 어머니 기일이요?"
그 날은 욱과장님이 회사의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으쌰으쌰 하는 술자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친정엄마에게 맡겼고,
남편은 평소처럼 늦은 저녁이 되서야 귀가했다고 하셨다.
보통은 5시에 퇴근한 과장님이 한창 아이들을 보고 있었을 시간.
오랜만에 한 잔 기분좋게 두 잔, 호기롭게 세 잔 쯤 마시려는데 눈치없는 벨소리에 과장님 표정이 구겨진다.
학교 종이 땡 치면 학생들은 어서 모이 듯,
벨소리가 계속 울리면 엄마들은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밤 12시가 넘어서 시어머니의 첫 번째 기일이 됐는데,
며느리가 늦게 들어와서 속상했던걸까.
그 날, 남편이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과장님이 말했다.
하지만 일하고 들어 온 직장인은 남편만이 아니지 않나.
과장님은 내 엄마 기일도 아니고,
설령 자기가 놀다 왔다고 해도 기일 전 날인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물으셨단다.
"그래서요? 남편분이 화내셨어요?"
"아니. 잘 넘어갔는데, 지금보니까 아닌 것 같아.
지금은 내가 더 화가 나. 나는 잘 못한거 없는 것 같거든."
과장님의 잘못은 무엇이고 남편이 담배를 집어든 이유는 뭘까. 며느리답지 못했던 늦은 술자리? 아내답지 않은 부족한 위로?
나는 과장님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사과를 할 만큼 잘못한 것도 없었다.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이 스산했을 남편은 위로가 필요했을 테고, 늦은 퇴근때문에 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아내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겼다.
잘못이 슬그머니 발 뺀 마음에 서운함이 자리 잡고,
서운함은 콩나물처럼 저 혼자 금세 자란다.
얼른 뽑아줘야 겠다. 빈 마음 시루에는 이해를 넣어주고,
뽑은 콩나물은 국 끓여 같이 먹자.
따뜻한 밥을 먹어야 마음도 따뜻해진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