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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몽골로부터 살아남을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121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17/7
조회수 : 4909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3/10/19 10:28:00
고려는 1231년 1차 전쟁을 시작으로 1259년 9차까지 30년 더 넒게 보자면 삼별초의 항쟁까지 40여년을 몽골인들과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지배층 자제의 입질, 호구조사의 보고, 몽고군 원정시의 조군, 원에 대한 식량과 물자의 공납, 다루가치의 주재, 역참의 설치 등 이른바 6사(六事)를 강요 하는 전통적인 외교 방식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여 벌어진 이 전쟁은 고려를 쇠락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들중 하나였지요,
 
그럼에도 고려는 살아남았습니다, 수차례 전란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국가를 지켜냈고 심각한 내정 간섭이 존재하였으나 고려의 가치는 매우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그러한 이유가 뭘까요? 당연히 잘 싸워서 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대몽항쟁이 유래없는 전쟁이기는 했지만 금나라의 경우 20년간 전쟁을 벌였고 그 들은 몽골의 전술 교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금송의 하늘 높이 치솟은 강대한 성채는 기병들을 주저 앉히기에 충분했지요, 호라즘의 경우 그 들의 기병 전력은 가히 몽골과 일전을 겨룰만한 존재였습니다, 남송은 어떨까요? 제 아무리 창이 날카롭다 하더라도 방패를 뜷기는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유럽의 중장 기병들은 십자군 전쟁에서 증명되었듯이 정면으로 대적하는것은 무모한 일이었고 맘루크의 전략적 운용은 몽골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면 고려가 살아남은 이유는 우수한 전과의 문제라기 보다는 외교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이 기여한 바가 매우 큽니다.
 
비록 반란군이 들어다 바친 동녕부와 동북면 일대의 약 60여개 성은 당장은 돌려받지 못하였지만 원종이 쿠빌라이에게 받아낸 불개토풍不改土風 다른말로 세조구제世祖舊制 라고 하는 즉 몽골에 귀속은 하되 고려라는 국가는 유지하게 해달라는 약조로 인하여 이중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그 배경은 내부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는 옷치긴 왕가의 존재 때문으로, 무슨 말인가 하자면 징기스칸이 옷치긴에게 몽골의 옛 터전인 에르구네의 동쪽 지역인 홍안령 일대를 분봉해주면서 생겨난 문제인데 이 옷치긴 일족은 중앙정부와 수 차례의 반란을 통한 독립과 대칸을 향한 도전등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또 타협을 하며 성장을 거듭하여 만주 일대를 석권하는 대단한 왕족으로 사실상 쿠빌라이의 배경중 하나이기도 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하였는데 이러한 이 들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방책이 바로 고려의 존재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후의 심양왕을 비릇하여 작위를 내린것도 그렇고 부마로서 대우를 하며 황금씨족의 일원으로 끌어들인것도 이러한 까닭입니다, 당장 목 안에 걸린 가시와 같은 내부의 문제를 견제를 통해 호전시켜보자는 더 나아가 해결해보고자 한 것이지요.
 
비단 옷치긴뿐만이 아닙니다, 만주와 동몽골 일대를 석권하여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비할수 밖에 없었던 이른바 동방 3왕가 들에 대한 견제 역시 몽골이 고려를 유지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물론 옷치긴 왕가가 몽골 제국과의 사이에서만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와 무관한 이 들은 아닙니다, 사실상 고려의 서해안 일대에 고려를 제치고 주요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고, 수없이 반복된 수탈의 주요한 원인을 꼽자면 이 들을 빼놓을수 없습니다, 그 뿐일까요? 옷치긴 왕가를 비릇한 동방 3왕가를 견제하라고 만든 심양왕의 작위는 도리어 동포들을 학대하고 수탈하는 약속된 이름이기도 했지요.
 
멀리보자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선조도 이 동방 3왕가의 맹주 옷치긴의 휘하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이 들의 영향력은 만주 일대에서는 몽골을 당연히 앞질러 갈 정도였습니다.
 
간략히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음 두서가 없었지만 네 그렇습니다, 고려가 살아남은 것은 그 들이 뭔가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까닭은 결코 아닙니다, 좀 심한 말일지 모르나 몽골 제국 내부의 문제가 없었다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중앙정부가 늘 견제를 해야했던 옷치긴을 필두로 한 동방 3왕가가 없었다면 고려는 말 그대로 남송이나 호라즘, 금나라와 같이 완전한 몽골제국의 일부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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