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이스트 06학번 졸업생입니다. 베오베에 간 후배의 글을 읽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문연을 폐지하면 카이스트 대학원은 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공계 인력의 해외이탈을 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민 가는 것처럼 쉬운 해답을 얘기하고자 하는 아닙니다. 저는 지금 현재의 제도, 카이스트의 특징, 석박사생들의 성향을 고려하였을 때, 장기적인 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번 기준에서 학부 졸업 후 네 진로는 크게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 취직

- 카이스트 대학원 진학

- 유학

- 의전 진학 (주로 생물, 화학 관련 학과)

여기서 중요한게, 카이스트에서 다른 학교의 대학원으로 가는 학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카이스트에서 계속 다니면 전문연 자격 얻고 군대 문제가 해결되는데, 군대를 빨리 갔다와서 유학을 가는게 아니면 카이스트에서 학업을 계속하는게 낫다는거죠. 실제로 제 주변에 많은 친구들도 과학고 성적이 좋았고, 카이스트에서 수석, 차석까지 했으면서 군대 문제 때문에 카이스트에 남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럼 전문연을 없애면 카이스트 학생들이 서울대 등 다른 대학으로 갈 수 있으니, 대학 수준 평준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단연컨데 그런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방대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이스트 학생이 뭐가 아쉬워서 지방대에 석박사 진학을 하겠습니까? 그 곳은 자신의 연구 커리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우리나라의 연구비 지원 등을 보았을 때, 펀드 걱정을 하면서 다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럼 서울대요? 잘 안갑니다. 카이스트는 우리 나라 대학 중에서 매우 특별한 기관입니다. 이름에서 보시다시피 대학교나 대학원이 아닌 기술연구원입니다. 그만큼 연구 활동, 연구 비용 등에 있어 자유도가 높은 학교죠. 이런 이점을 포기하면서 서울대 등 다른 좋은 학교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전문연을 없애면 어떻게 되느냐. 대학원 진학 예정이었던 학생들은 대부분 군대를 빨리 해결할 것이고요. (일단 대학원에 진학할 사람이 줄어들겠지만) 그리고 그 중에 성적이 좋은 학생은 모두 유학으로 진로를 정할 것입니다. 군대 문제가 해결된 이상 장학금 등 돈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공계 공부를 하는데 있어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머리 좋은 학생들을 한국에 묶어두는 유일한 족쇄는 군대입니다. 이런 학생들이 군대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하게 되면 국가에서 이들을 묶어놓을 이유가 전혀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밖에 나간 학생들이 다들 들어올까요? 아니죠. 대학원은 돈을 내면서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 조교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 나오거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업이나 각종 기관에서 나옵니다. 특히 외국에서 유학하면서 적어도 한두번은 그 곳 현지 기업와 프로젝트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인맥 관계를 희미해지고, 외국 유명 기업이나 기관과의 인맥 관계가 쌓입니다. 또한, 학회에 가서 발표를 할 때, 유학생에게 국내 학회라는 것은 한국의 대학생에게 국제 학회입니다. 국제 학회에서 쌓이는 인맥과 경험은 한국의 것이 아니라 외국의 것입니다. 자.. 그럼 졸업 후에 취직을 할 때, 처음 인맥을 쌓기 시작해야 하는 한국과 이 쪽에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업 중에 어디를 선택하게 될까요? 

결론은 전문연 폐지는 정말 우리 나라에 필요한 이공계 인력에게 자력으로 군대 족쇄를 풀어버리는 것을 강요하는 정책이며, 이렇게 자력으로 족쇄가 풀린 양들은 외국으로 떠나버릴 것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