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요즘 박근혜가 뜨니까 박정희도 따라 뜨는듯...
게시물ID : sisa_921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냠군
추천 : 0
조회수 : 73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10/19 23:33:36
박정희 치하의 경제성장 순위변동 앞서 박정희 치하의 동아시아 경제성장에 대해 살펴보겠다. ----------------------------------동아시아 경제성장 비교표---------------------------------------- 60~70년대 동아시아 경제성장 비교 동아시아 고도성장의 시대였던 50~70년대 일본 : 1955년 ~ 70년 - 지나친 일본의 경제성장을 막기위해 71년 서방국 정상회담에 의해 일본의 엔화 격상으로 고도성장 끝 남. 이후 5%전후 한국 : 1965 ~ 78년 - 78년하반기부터 장기독재에 따른 경제적 붕괴가 시작됨. 80년 -5.5% 성장으로 박정희경제의 몰락. 81년부터 시작된 한국경제야말로 날조된 성장이 아닌 실질 경제성장으로 평가. * 박정희의 경제성장 날조 기타 동아시아 : 1965년 ~ 1980년(아시아 개발은행 자료) 1. 일본 : 10.5% 2. 싱가포르 : 10.1% 3. 대만 : 9.8% 4. 한국 : 9.5% 5. 홍콩 : 8.6% 번외) 북한 : 57년 ~ 69년 - 21%(당시 서구로부터 사상최고의 경제성장 신화란 격찬까지 들음) 그러나 70년대 중반까지 10%가량되던 경제성장은 이후 완전 몰락(원인은 박정희와 같은 독재경제의 종말을 맞이함.) 즉, 60년대는 동아시아에선 개나소나 모두 고도의 성장을 하던 시절이다. 수많은 총독과 수상이 뒤바뀐 홍콩과 일본이 이를 입증한다. 다시말해 박정희가 아니라 박정희집 강아지를 데려다 그 자리에 앉혔어도 그정돈 한다는 것이다. 위의 1~5위까지의 국가중 민주주의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했던 국가는 일본이었고, 홍콩의 경우 정치자체가 존재치 않았지마, 대중의 자유는 그때당시 세계최고수준이었던 곳인데, 이것만봐도 독재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란 소린 개소리란 증거다. 또한 1~5위까지 국가중 대권을 물러난뒤 자식들에게 1조원이 넘는 유산을 물려줘서 부정한 지배자로 낙인찍힌 인물은 박정희뿐. 독재자 장개석도 이광요도 너무나 청렴한 인물들이었음은 새삼스러운게 아니다 --------------------------------------------------------------------------------------------- 박정희 신도들이 흔히 하는 찬양중에, 박정희 집권전 한국경제가 세계최저수준이었다는 주장이 단골매뉴다. 정말 그럴까? 다음의 통계를 한번 훑어보자. 동아시아 주요국 GDP 순위(세계) 변동 - 60년 29 --> 80년 28위로 한단계 상승. 이게 박정희 경제기적이다. 1960년 4위 중국 GDP 6백 1십억달러. - 예상외의 자료다. 지금은 일본이 중국보다 앞서있다. 5위 일본 GDP 4백 4십억달러. 19위 필리핀 GDP 6십 9억달러. - 박정희가 유일하게 앞선 국가다. 생전에 그토록 친했던 마르코스가 망쳐놓게된다. 29위 한국 GDP 3십 9억달러. - 29위다. 박정희 사망당시의 순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차차 알아보자. 42위 홍콩 GDP 1십 3억달러. 57위 싱가포르 GDP 6억 4천만달러. * 박정희 신도들이 그의 업적을 들먹이는 가장 대표적인 비교대상이 바로 필리핀이다. 왜냐하면 그 외엔 딱히 찾아볼 수 없기에. 1965년 4위 일본 GDP 9백억달러. - 연간 10.5%에 달하는 성장을 하던 일본이 마침내... 5위 중국 GDP 6백 9십억달러. 27위 필리핀 GDP 6십억달러. 39위 한국 GDP 3십억달러. - 이게웬일? 아예 거꾸로 가는 한국경제? 44위 홍콩 GDP 2십 4억달러. 60위 싱가포르 GDP 9억 6천만달러. 1970년 2위 일본 GDP 2천억달러. 6위 중국 GDP 9백 1십억달러. 32위 한국 GDP 8십 9억달러. - 드디어 마르코스치하의 필리핀을 누른 감격을 안고... 38위 필리핀 GDP 6십 6억달러. 50위 홍콩 GDP 3십 8억달러. 59위 싱가포르 GDP 1십 8억달러. 1975년 2위 일본 GDP 5천억달러. - 박정권전보다 더 크게 벌려놓은 일본경제. 8위 중국 GDP 1천 6백억달러. 31위 한국 GDP 2백 1십억달러. 37위 필리핀 GDP 1백 5십억달러. 48위 홍콩 GDP 1백억달러. - 홍콩, 싱가포르가 이처럼 한국보다 더 뛰어난 경제성장을 했음을 알수 있다. 56위 싱가포르 GDP 5십 6억달러. 1980년 2위 일본 GDP 1조달러. 11위 중국 GDP 1천 9백억달러. 28위 한국 GDP 6백 3십억달러. - 박정희가 죽던해의 경제상황이다. 29-->28위로 순위변동. 니미... (이해 한국경제는 -5.6% 성장. 경제통계이래로 사상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었다.) (박정희가 5년만 더 살았더라면, 우린 필리핀이나 북한처럼 망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36위 필리핀 GDP 3백 2십억달러. 40위 홍콩 GDP 2백 8십억달러. 58위 싱가포르 GDP 1백 2십억달러. 1987년 2위 일본 GDP 2조 4천억달러. 11위 중국 GDP 2천 7백억달러. 18위 한국 GDP 1천 4백억달러. - 마침내 한국경제가 실질적으로 성장하기시작했다. (박정희 신도들은 이것도 모두 박정희때문이랄 것이다.) 34위 홍콩 GDP 5백억달러. 45위 필리핀 GDP 3백 3십억달러. 59위 싱가포르 GDP 2백억달러. 1992년 2위 일본 GDP 3조 7천 6백억달러. 10위 중국 GDP 4천 2백억달러. 14위 한국 GDP 3천 3백억달러. - 박정희가 없는 한국은 부지런히 성장하고 있다. 30위 홍콩 GDP 1천 4십억달러. 39위 필리핀 GDP 5백 2십억달러. 40위 싱가포르 GDP 5백억달러. 1998년 2위 일본 GDP 3조 8천억달러. 7위 중국 GDP 1조달러. - 중국의 약진(박정희가 달이면, 등소평은 태양이다.) 15위 한국 GDP 3천 4백억달러. - IMF 25위 홍콩 GDP 1천 6백 6십억달러. 40위 싱가포르 GDP 8백 2십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6백 5십억달러. 2002년 2위 일본 GDP 3조 9천억달러. 6위 중국 GDP 1조 4천 5백억달러. 11위 한국 GDP 5천 4백억달러. - 한국이 세계 10강을 넘보기 시작했다. (박정희 신도들은 이것도 박정희 덕분이라고 주절댈 것이다.) 28위 홍콩 GDP 1천 6백억달러. 40위 싱가포르 8백 8십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7백 6십억달러. 2006년 2위 일본 GDP 4조 3천억달러. 4위 중국 GDP 2조 9천억달러. 13위 한국 GDP 8천 9백억달러. - 다소하락. 이명박이 선진국 만들어 주겠다고 했으니까 안심? 34위 홍콩 GDP 1천 9백억달러. 40위 싱가포르 1천 3백억달러. 43위 필리핀 GDP 1천 2백억달러. 자료출처 : http://www.nationmaster.com/time.php?stat=eco_gdp-economy-gdp&country=ks-korea-south 이곳에 가보면 해당연도 각국 경제순위가 나온다. 위에서 보다시피 박정희 집권전 한국경제는 듣보잡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공업시스템이 갖춰진 국가였으며, 민주당 정권은 미국과 협의하에 최초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듬해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군발이들은 미국정부의 신뢰를 잃어 원조중단 사태까지 직면한다. 비록 박정희가 61년 하반기에 미국으로 날아가서 케네디에게 월남에 용병파병까지 제안하면서 손발이 닳도록 사정했지만, 1965년 통계에 보다시피 한국경제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 월남전 확산을 우려하고 있던 미국에게 박정희가 먼저 파병을 제안했다는 것은 많은 증언이 있다. 박정희 신도들이 지금도 찬송가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치하에서의 한국경제 순위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그가 사망하던 해부터 대위기가 찾아왔으나, 실질성장에 역점을 둔 경제체제로 과감한 전환을 한 전두환때부터 국제유가의 하락에 힘입어 진정한 경제성장이 시작되었다. 박정희치하에서 국민들이 등따습게 살았다고 생각하나? 60~70년대 주변국과 비슷한 연 9%대의 경제성장을 하였으나, 이 시기의 물가는 연평균 16%씩 올랐다. 국민들에겐 그당시의 경제상황은 고통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박정희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등 인프라를 구축했기에 오늘날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미친 것들이 많다. 그럼 박정희외엔 고속도로 공사할 인간이 이 땅에 없었을까? 그 유명한 '아우토반'도 히틀러의 작품이다. 그래도 이성적인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수치스럽게 여긴다. 다시 정리하자면, 박정희 경제신화를 믿는 자들은 '자폐증' 환자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외부의 경제성장은 쳐다볼 줄 모르고, 오로지 한국만이 고도성장을 했다고 믿는.... 실제로 내가 살아온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체감경제상황은 거의 변화를 느끼기 힘들었다고 기억된다. 반면 80년대 중반이후로 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풍족해졌다고 여겨지는 느낌이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박정희 살아생전엔 제자리 걸음(외국과의 상대비교에서)을 하던 한국 경제가 박정희가 사망함으로써, 세계경제순위에서 급속하게 상위로 치고 올라왔던 것이다. ============================박정희 경제성장론의 허구성 2005.06.08 ================================= 1위 : 박정희 4,285명(28%) 2위 : 광개토대왕 2,257명(14%) 3위 : 세종대왕 1,93명 (11%) 4위 : 이순신 1,303명 (8%) 5위 : 김대중 807명 (5%) 위의 통계는 작년 월간조선 3월호에 실린 한국 역사상 최고 인물 인터넷 여론조사이다. 그들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보다 3배 이상 더 존경받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아예 명함도 못비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조사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박정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립투사를 토벌하는 일본군 장교가 됐다. 박정희는 당시 대구사범을 나와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데도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군 장교에 자원하여 일본에 충성하였다. 이런 박정희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보다 몇 십 배 더 존경받는 나라. 이 참담하고 비극적인 현실 앞에 나 역시도 이러한 나라의 국민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수치스러울 따름이다.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박정희의 경제적 기여가 너무 커 친일, 남로당 가입, 유신독재, 인권탄압 등 온갖 죄악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도대체 박정희가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얼마나 기여를 했길래 박정희가 지은 죄악을 덮고도 남는지 한 번 조사를 해 보았다. 먼저 역대 우리나라 집권자들의 경제분야 종합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분석해 보았다. 객관성을위해 경제성장률은 집권기간 연평균 실질성장률을 기준으로 했다. 이는 실질성장률이 한 나라의 실제 성장정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집권자들의 연평균실질성장률(이하 연평균성장률)은 전두환 9.3%, 박정희 8.5%, 노태우 7.0%, 김대중 6.8% 순으로 단순 수치상으로는 박정희가 2위이다. 그러나 각 집권자별 연평균성장률과 우리와 여건이 비슷하고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만(차이가 많다면 많을수도 있지만, 대만또한 세계 2차대전때 일제치하에 있었으며 우리와 같이 해방을 맞았고, 한때 같이 아시아의 4룡 중 하나였으며, 현재는 1인당 GNP 1만달러수준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여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대만은 10.0%, 주요국은 5.2%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 한나라의 경제개발에 시동이 걸리면 성장률이 일정수준까지는 급상승하나,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으로써 성장률 5.2%는 대단히 높은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대만이 10%였다는 것은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국제적으로 엄청난 호황기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정희는 집권기간 동안 연평균 8.5%의 성장으로 10.0%의 대만에 못 미쳤고 주요국보다 3.3% 높았다. 전두환은 집권기간(7년) 동안 연평균 9.3%의 성장률 기록하여 수치상으로는 역대 대통령 중 최고를 기록하였다. 전두환 정권때의 성장률은 대만의 성장률 8.5%보다 약간 높았고 주요국보다 5.7%나 높았다. 노태우도 연평균 7.0%의 성장률은 기록 수치상으로는 전두환에 약간 못 미쳤으나 주변국의 성장률과 비교할 때 전두환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김대중의 집권시기는 대만이 연평균 3.1%, 주요국이 2.0%에 불과해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 극심한 불황기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이 기간동안 연평균 6.8%의 성장률은 기록하여 수치상으로는 1위의 전두환에 뒤졌으나 대만보다 3.7% 그리고 주요국보다 4.8% 앞서는 내용면에서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상에서 경제통계를 근거로 분석한 역대대통령의 경제성적표는 단순수치상으로 전두환 1위, 박정희 2위, 노태우 3위, 김대중 4위 순이다. 그러나 대외 여건을 감안한 내용적인 면에서 분석한 결과는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보다 못한 4위이다. 박정희가 “박정희가 대한민국 경제를 세우고 경제기적를 창조했다”라는 칭송을 듣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실적이다. 박정희 지지자들이 늘 내세우는 논리가 박정희 이전과 비교했을 때 박정희 때부터 급성장했다고 한다. 이승만 때의 4.1%의 성장률이 낮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종전 후 잿더미 속에서 맨 손으로 전후복구를 하고 나아가 4.1%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역대 집권자의 재임기간 동안의 여건을 보면 이승만은 상상하기 힘든 전쟁피해 속에서 출발해야 했다. 전두환은 2차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안았고, DJ도 IMF 환란을 극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노태우와 YS 시절도 민주화의 과도기여서 절대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어떠했나. 우선 박정희는 이 전 정권의 전후복구와 빈약하기는 했지만 최소한의 국가기간산업의 유산을 받지 않았는가. 또 박정희 집권 초 우리 조상들의 흘린 피의 댓가인 월남 파병으로 또 70년대에는 건설회사의 중동진출로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많은 달러가 국내에 유입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60-70년대에는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장기간의 호황이 이어졌다. 우리 군인들의 목숨과 우리 근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고스란히 박정희의 치적에 스며들었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모두 박정희에 의해 이루어진냥 박정희의 공으로 둔갑되었다. 그리고 당시 군부, 관계, 언론계 등에 포진해 있던 과거 친일분자들이 박정희를 우상으로 모시다시피하여 박정희는 누구보다도 좋은 여건이었다. 지금까지의 박정희 지지자건 비판자건 경제성장에 관한 한 박정희가 독보적인 존재로 알아왔다. 나 역시도 통계치를 분석하기 전에는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통계치에 의한 분석결과를 볼 때 지금까지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하나의 허상임을 알 수가 있다. 박정희 지지자들에게 이와 같은 통계분석 결과를 들이대면 이들은 처음에는 도무지 믿으려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통계치에 논리가 궁색하면 박정희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80불의 절대빈곤 속에서 이만큼 사는 것도 박정희 덕이라고 한다. 그럼 왜 이승만 정권이 잿더미 속에서 거의 맨손으로 전후복구를 하고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열악한 여건 속에서 발전소, 시멘트공장, 비료공장을 짓는 등 최소한의 기간산업을 육성하여 훗날 경제개발의 발판을 마련한 것에는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는가? 또 당시 이승만 박사는 늘 소비재 원조에 치중하는 미국에게 생산재를 원조해달라고 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박정희와 지지자들은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이승만과 장면정권을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으로 매장시키고 우리를 세뇌시켰다. (우리세대만 해도 좀 덜하지만, 부모님 세대중에서 이승만 정권에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사람은 거의없다. 박정희나 이승만 모두 정치적으로 부패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두 사람에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지지자들이 늘 써먹었던 “80불의 절대빈곤 속에서 이만큼 사는 것이도 박정희 덕이다” 라는 말 속에는 상당한 과장과 왜곡이 있다. 마치 국민소득 80불은 지금 생각하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빈곤국을 연상시키고 이만큼 산다는 것은 지금의 국민소득 일만 불을 연상시킨다. 박정희 지지자들은 늘상 박정희가 일으킨 경제를 YS와 DJ, 노무현이 말아먹었다는 것의 사실여부를 떠나 아예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가 죽은 79년 당시 국민소득은 지금의 1/8 정도인 1,600불 수준이었다. 또 박정희가 집권하던 61년 당시의 국민소득 82불은 당시 일본의 국민소득이 500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절대빈곤의 최빈국 수준이 아니었다. 이토록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실제보다 많이 과장되었다. 집권자별 실질경제성장률 --------------------------------------------------------------------------- 집 권 자 기 간 국내총생산(GDP) 한국연평균 비 교 대만연평균 주요국연평균 집권시/퇴임시 성장률(%) 대만 주요국 성장률(%) 성장률(%) --------------------------------------------------------------------------- 이승만/장면 '53-'61 19,763/ 27,179 4.1 -3.2 -0.4 7.3 4.5 박정희 '61-'79 27,179/117,435 8.5 -1.5 3.3 10.0 5.2 최규하 '79-'81 122,412/122,412 2.1 -4.6 0.1 6.7 2.0 전두환 '81-'88 122,412/227,864 9.3 0.8 5.7 8.5 3.6 노태우 '88-'93 227,864/320,044 7.0 -0.1 4.3 7.1 2.7 김영삼 '93-'98 320,044/394,710 4.3 -1.9 1.3 6.2 3.0 김대중 '98-'03 394,710/547,839 6.8 3.7 4.8 3.1 2.0 --------------------------------------------------------------------------- 1) 출처) http://kosis.nso.go.kr/ 에서, 'KOSIS > 자료출처별 검색(국제통계) > 국제금융통계,IMF > 국민계정' 순으로 선택한 후, 각종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항목 중, 기준년도 불변가격 국내총생산으로 나라별, 기간별 경제성장률을 계산 2) 출처) 대만자료는 http://www.dgbas.gov.tw/, 行政院主計處 第三局 3) 국가선택-> 주요국 : 미국,카나다,독일,영국,프랑스,이태리,일본, 대만 4) 국내총생산(GDP)은 '95년도 불변가격임 5) 연평균성장율 = (집권년도불변가격수/퇴임년도불변가격)의 (1/집권기간(년))승 흔히들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이 한나라의 경제수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 우리정부와 언론은 늘 국민들에게 그렇게 주지시켜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율 변동 때마다 그 폭이 너무 커 실제 소득수준과 경제성장 정도를 나타내는데 문제가 있다. 김영삼 재임기간 중 집권당시인 93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7,811불이었는데 퇴임시기인 98년에는 7,355불로 오히려 400불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한 실질성장률은 연평균 4% 이상을 기록하여 재임기간 중 실제로 23%의 성장을 하였다. 박정희는 1인당 국민소득이 실질소득이 아닌 명목소득으로 계산할 때 82불로 시작하여 죽을 때인 79년 1636불을 기록하여 외형상 연평균 18%의 엄청난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60년 12월까지 달러 당 65원이었던 환율이 1년후인 61년 130원으로 두 배 올랐다. 또 박정희가 죽을 때 환율이 485원이었는데 74년부터 6년간 지속되어온 이 환율이 박정희 사망 두 달 후인 80년 1월에는 20% 상승한 580원이었고 연말에는 700원에 육박하였다. 다시 말해 박정희는 집권 직전 2배의 환율 상승으로 저평가 된 국민소득액($82)에서 출발하여 환율상승 전에 죽는 바람에(485원의 환율이 6년간 유지됨) 고평가된 국민소득액($1,636)을 유지한 상태에서 죽었다. 즉 박정희는 집권과 종료시 환율변동을 잘 타는 바람에 외형상 성장률이 엄청나게 증폭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실질성장율은 이 거품이 빠지는 바람에 8.5%에 그치고 주변국들과 비교할 때 내용상으로는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보다 뒤지게 된다. 박정희 지지자들은 늘 “80불의 절대빈곤 속에서 이만큼 사는 것이도 박정희 덕이다”라는 말로 상징조작에 성공한 것이다. 유신독재시절 박정희를 우상화시키는 일이 성공의 지름길이었고 박정희에 불리한 비판은 있을 수가 없었다. 또 박정희가 죽은 후도 조선, 중앙, 매일신문 등에 의해(박정희 전기 연재를 통해) 박정희의 우상화가 지속적으로 계속되었다. 집권자별 명목국민소득증가율 --------------------------------------------------------------------------- 집 권 자 기 간 1인당국민소득 한국연평균 비 교 대만연평균 주요국연평균 집권/퇴임 증가률(%) 대만/주요국 증가률(%) 증가률(%) --------------------------------------------------------------------------- 이승만/장면 '53-'61 67/ 82 2.6 3.8 -2.1 -1.2 4.7 박정희 '61-'79 82/ 1,636 18.1 3.0 6.1 15.1 12.0 최규하 '79-'81 1,636/ 1,749 3.4 -14.5 -3.0 17.9 6.4 전두환 '81-'88 1,749/ 4,268 13.6 0.3 4.8 13.3 8.8 노태우 '88-'93 4,268/ 7,811 12.8 1.4 7.6 11.4 5.2 김영삼 '93-'98 7,811/ 7,355 -1.2 -3.6 -3.9 2.4 2.7 김대중 '98-'03 7,355/12,646 11.4 10.1 9.5 1.3 1.9 --------------------------------------------------------------------------- 출처) 한국은행, IMF / http://climate.snu.ac.kr/wrms/DATA/econo_data/main.html 재정경제부 / http://home.hometer.com/GNP.htm 재정경제부 / KOSIS > 온라인통계간행물 > 주요경제지표 대만자료는 http://www.dgbas.gov.tw/, 行政院主計處 第三局 주1) 원칙적으로 1인당 GNI를 기준(GNI자료 수집이 불가한 경우 GNP) 주2) 국가선택-> 주요국 : 미국,카나다,독일,영국,프랑스,이태리,일본,대만 주3) 집권기간 연평균소득증가율 = (집권년도국민소득/퇴임년도국민소득)의 (1/집권기간(년))승 다음에 박정희와 지지자들이 그토록 내세우는 수출입국 건설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박정희의 18년간의 통치기간 수출은 매년 38%의 매우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전두환 때 16%, 김대중 때는 6%정도로 수출증가율이 둔화되었다. 이승만 정권 때는 자료입수 가능기간인 57년 이후부터 61년까지 연평균 15%의 수출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57년 2천3백만불이었던 수출액이 58년에는 천4백만불로 감소하다가 이후 집권종료 전 1년간 3천7백만불을 기록하여 연평균 48%의 수출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박정희의 38%를 능가하는 수치로서 박정희 집권이전부터 이미 급격한 수출증가의 기미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수출에 관한한 전두환씨가 지금도 큰 소리 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집권기간 중 대한민국 유사 이래 최초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총 638억불을 수출하고 871억불을 수입하여 수출이 급격히 늘었지만 수입 또한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 집권기간 중 무려 233억불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였고 집권종료시기인 79년는 150억불 수출에 203억불을 수입하여 한 해에만 53억불 적자를 기록하였다.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지금도의 1/10수준임을 감안하면 79년 한해의 무역적자만 지금의 500억불 적자규모와 같다고 볼 수가 있다. 박정희 집권기간 무역적자 233억불은 지금의 2000억불 이상의 무역적자 규모에 해당한다. 그러니 집권기간 중 8억불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전두환씨가 자랑할 만도 했다. 후임 집권자 중 노태우가 132억불 적자, 김영삼이 366억불 적자를 기록했고 김대중은 불과 5년 동안에 846억불의 흑자를 기록하여 지금까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리하여 보면 이승만 정권 때는 수출신장의 싹이 보였고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높은 수출증가를 이룩했으나 수입 또한 그 이상으로 늘어나 당시 경제규모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큰 규모의 무역적자를 나타냈다. 다시 말해 박정희때 외형은 크게 늘었지만 결국 크게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운을 타고난 박정희는 대일청구권 자금, 월남특수, 중동특수 등으로 무역에서 펑크 나는 것을 메웠고 이것도 부족하여 매년 많은 차관을 도입해야 했다. 이 빚은 결국 후임정권이 짊어져야 했다. 최초로 흑자를 기록한 전두환은 남는 장사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또 흑자규모를 늘리고 지속적으로 유지한 김대중은 크게 남는 장사를 하여 현재는 1500억불이 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도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박정희는 외형만 키웠고 실제적으로는 적자 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수출이 늘어난 것만 보도되고 또 이것이 전적으로 박정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홍보되었다. 무역 통계 --------------------------------------------------------------------------- 집 권 자 기 간 수출액(100만$) 연평균수출 집권기간 적자/흑자 집권기간 집권/퇴임 증가율(%) 증가율(%) 총수출/총수입 누계 국민소득($) --------------------------------------------------------------------------- 이승만/장면 '57-'61 23/ 37 14.5 107/ 1,644 -15억$적 67-> 82 박정희 '61-'79 37/ 15,057 38.4 63,809/ 87,122 -233억$적 82-> 1,636 전두환 '80-'88 18,369/ 50,670 15.6 217,241/216,427 8억$흑 1,749-> 4,268 노태우 '88-'93 50,670/ 77,845 9.0 341,939/355,218 -132억$적 4,268-> 7,811 김영삼 '93-'98 77,845/138,673 12.2 583,240/619,917 -366억$적 7,811-> 7,355 김대중 '98-'03 138,673/169,850 4.1 771,981/687,309 846억$흑 7,355->12,646 --------------------------------------------------------------------------- 1) 자료출처: KOSIS > 자료출처별 검색(국제통계) > 국제금융통계,IMF(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 무역 2) 수출/수입액 : 집권연월이 속한 분기를 기준으로 1년간 실적 3) 총수출/수입액 : 집권연월에 따른 분기별 실적을 감안하여 계산 다음으로 도로 및 발전설비 등 건설부문을 살펴보자. 박정희 정권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과거 정권을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으로 매도하고 마치 모든 경제개발이 5.16 이후에 이루어진 것처럼 졌다고 선전해 왔다. 과연 그런가? 생각해 보라! 6.25 전쟁기간 동안 이 좁은 땅에 2차 대전 때보다도 더 많고 가공할 포탄과 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사실을. 또 완전히 초토화된 이 땅을 다시 복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가를. 이승만 정권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37만 Kw의 발전량(지금 생각하면 보잘 것 없지만)을 확보하고 충주비료공장 및 문경시멘트 공장, 인천판유리 공장, 방직시설 등을 건설하여 국가기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박정희 집권 이전 정권에서도 경제개발의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의 전후복구와 위와 같은 국가기간산업의 육성이 훗날 박정희의 경제개발에 귀중한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전 정권을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 했어야 했다. 이제 박정희 지지자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치적인 고속도로건설을 살펴보기로 하자. 박정희는 18년이 넘는 집권기단 동안 총 1,225Km의 고속도로를 뚫었다. 이 가운데 경부선 428Km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의 제한속도가 시속 70Km인 2차선이었다. 그리고 후임정권은 24년간 1,566Km(2002년 기준)의 고속도로를 뚫었다. 이 시기 건설된 도로는 대부분 4차선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전 간을 8차선으로 또 호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등 많은 고속도로를 넓혔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하면 박정희 이후의 정권이 박정희보다 2.5배 이상 고속도로를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발전설비는 어떤가? 이승만 정권 때 37만Kw,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766만Kw의 발전설비를 증설하였다. 그리고 후임정권은 무려 4,795만Kw의 발전설비 증설하였다. 발전소를 짓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때의 발전설비는 다소 늘어나리라 짐작된다. 그렇더라도 박정희 이후의 정권이 박정희정권에비해 무려 5배의 발전시설을 건설하였다. 이상에서 보듯이 국가기간산업 건설 측면에 있어서도 박정희가 유독 두드러지는 면이 없다. 집권기간을 감안했을 때 후임정권 때보다도 훨씬 부진했다. 물론 이부분에 있어서는 절대적 비교를 하기가 어렵다. 우선 집권시기별로 경제적 규모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단지 필자가 저런 자료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경제의 대부분이 박정희에의해 성장했고, 나머지 대통령은 다 무능한 대통령인냥 평가해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그들에게 박정희 또한 여타 대통령에비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집권자별 건설 통계 -------------------------------------------------------------------------- 집 권 자 기 간 고속도로신규건설(Km) 2차선환산시(Km) 발전량(신규,만Kw) -------------------------------------------------------------------------- 이승만/장면 '53-'61 0 0 37 박정희 '61-'79 1,225 1,643 766 전두환 '80-'88 305 1,010 노태우 '88-'93 57 771 김영삼 '93-'98 389 1,576 김대중 '98-'03 815 4,668 1,257 -------------------------------------------------------------------------- * 2차선환산시 4,668Km는 전두환부터 김대중까지 22년간의 합계임 출처) 한국도로공사 출처) 한국전력 출처) 통계청,「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각년도 출처) 통계정보시스템(KOSIS) 이제 마지막으로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유신독재, 인권탄압 등의 박정권의 죄악상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우리는 경제면에대해서만 논하기로 했으니. 우선 타임머신을타고 70년대 말로 날아가 일반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자. (이 이야기는 제시된 구체적인 수치를 제외하고는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픽션임을 밝힌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70년대 말 두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우리 집 세 식구가 살았다. 그 작은 방 옆에 손바닥만한 부엌이 있었고, 건너편에 냄새가 풀풀 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당시 만해도 연탄을 땠는데 윗목은 온기가 가지 않아 겨울이면 걸레가 얼어붙곤 했다. 연탄불에 겨우 물 한바가지 정도 데워 그것으로 세수하고 머리감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때려 한참 말려야 했다. 동네에서 차 가진 사람이라곤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고 같은 학년의 친구 중 열 명에 한두 명 꼴로 대학엘 갔는데 그나마도 가족 중 누군가 돈을 벌어 학비를 대주거나 아버지가 은행원, 고급공무원인 경우에나 가능했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공소에 취직하거나 직업하사관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따끔 공무원이나 은행 등에 취직하면 동네에서 부러워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잘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손톱이 빠지도록 벌고 안 먹고 안 쓰고 하여 막내인 나는 형의 희생덕분에 (일찍 취직하여 내 학비를 댐) 70년도에 대학문턱에 가보는 행운을 누렸다. 78년도에 취직하여 받은 초봉이 15만원 이듬해 17만원으로 13%올라 좋아했는데 그 해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8%였다. 70년대에는 물가가 20% 이상 뛰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TV는 물론 조선, 중앙 등 신문도 외형적인 성장만 강조할 뿐 급격한 물가상승 등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못했다. 아마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물가가 10%만 상승했다면 박정희 지지자와 조중동이 온갖 선동으로 무능한 대통령으로 뒤집어 씌워 끌어내렸을 것이다. ■ 이 이야기가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되었다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 통계치를 조사해 보았다. 70년대 말 우리나라의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가 6.4대, 1인당 주거 면적이 2.5평, 2년제 전문대를 포함하여 대학 진학자수가 18만명이었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김대중 집권 말인 2003년에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가 204대, 1인당 주거 면적이 6.1평, 2년제 전문대를 포함하여 대학 진학자수가 60만 명이 되었다. 필자의 아버지는 70년대 초반 군대생활을 했는데 훈련소에서 동초근무를 선 후 새벽 2-3시경 잠자리에 들어서도 너무나 배가고파 뜬 눈으로 잠을 지새운 적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쌀과 보리를 합쳐 1인당 하루 규정량이 732g이었지만 정작 배식되는 밥은 몹시 적었고 부식이래야 콩나물국에 김치 몇 쪽이었다. 1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 국이 나왔는데 고기는 온데간데없고 비계덩이만 몇 개 떠 있곤 했다. 실무에 가서도 오히려 훈련소 생각이 날 정도로 배가 고팠다. 전방 오지일수록 정도는 더욱 심했다. 요즘 군대에서 배곯는 병사가 있는가? 요즘 우리생활 수준이 어떤가? 물론 요즘 취직이 안 되어 고통을 당하고 아직도 달동네에서 적은 수입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있지만 웬만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차는 기본으로 한대 이상 가지고있고,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냉난방시설 틀어놓고, 웬만한 가정에는 컴퓨터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식구마다 휴대폰을 차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만약 요즘 소득수준으로 13평짜리 연탄 아파트에 차도 안 굴리고 휴대폰 대신 공중전화를 이용한다면 얼마나 풍족하고 여유로울가? 박정희 시절 작은 집에서 살고 차도 안 굴리고 밤낮으로 일만 하고 살았으니 먹고, 입고, 애들 학비 외에는 돈 들어 갈 일이 없었으니 불편만 감수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지금보다 삶이 편했던 것 뿐이지 박정희 시절이 결코 잘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역대 집권시기 생활수준 --------------------------------------------------------------------------- 집 권 자 기 간 조사년 1인당주거면적(평) 조사년 대학/전문대진학자수 --------------------------------------------------------------------------- 이승만/장면 '53-'61 통계무 1961 통계무 박정희 '61-'79 1975 2.5 1979 178,289 전두환 '80-'88 1985 3.4 1988 305,109 노태우 '88-'93 1990 4.2 1993 400,039 김영삼 '93-'98 1995 5.2 1998 621,583 김대중 '98-'03 2000 6.1 2003 601,600 --------------------------------------------------------------------------- 출처) 통계청,「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각년도 출처) 통계정보시스템(KOSIS) * 이승만/장면 집권시 통계수집 불가 덧글. 난 사람이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이 세뇌와 편향된 지식 습득이라 생각한다. 특히 조선일보나 한겨레처럼 한 쪽으로 치우친 관점을 가진 언론 매체의 경우는 그런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거짓과 사실을 구분할 능력이있고 그래서 특정관점에 편향된 매체를 보아도 상관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동안 가져온 관점에대해 반대하는 언론에대해서는 보지도않고 욕하는 사람들이 또한 그들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은 정보의 바다속에서 단순히 자신이 많은 정보를 알고있다는 것을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과 동일시 한다는 점이다. 이는 넘쳐나는 수많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계속 합리화하게되고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모든 것이 사실인냥 받아들이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얼마전 박근혜 의원이 호남에서조차 50%가 넘는 지지율을 받은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박정권의 피해자인 그들조차 박정희식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박근혜라는 인물을통해 표출했음은 그동안 언론매체를 통해 박정희 우상화가 얼마나 오래도록 이어져왔는가 알 수 있다. (실제로 호남권의 박근혜 지지자의 지지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컸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