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기아팬입니다. 솔직히 SK가 너무 잘해서 심정적으로 삼성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SK에 관해 오해를 가지고 계신분들.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일본야구네, 현미경 야구네 하면서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를 별로 안좋아했었죠. 아마 작년 중반까지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에 대한 글과 여러 개념 야구팬들의 글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끔가다가 김성근 감독님이 말실수 할 때도 있지만, 초기에는 언론플레이에 의해서 피해받은 것도 많고 그래서 이제는 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번 시리즈, 다들 재미없었다 없었다 하는데, 오히려 전 흥미진진했습니다. 역전에 재역전, 케네디 스코어가 굉장히 좋은 것이긴 합니다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양팀 타자와 투수들의 볼카운트 승부 서로의 노림수와 알게 모르게 하는 기싸움까지. 무척 흥미롭더군요. 청년대표님이나 쥐같은 녀석 및 기타 스게에 준전문가분들만큼은 아니지만 야구를 알면 알수록,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SK와 삼성의 세밀한 승부가 눈에 점점 보이는 것 같습니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삼성의 패배원인은 기싸움에서 먼저 밀린 것과 선수들의 공백을 메워줄 대체자원이 없었다는 점 같습니다.
기싸움은 뭐 양신 사건이나 1차전 패배, 김성근 감독님의 발언으로 크게 밀린 것 같습니다. (작년 조범현감독의 "우주의 기운이 모이고 있다." "꿈을 꿨는데 우승이더라." 와 같은 허무맹랑한 말도 심리전의 일부였죠. 그때는 어이없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됩니다.)
김성근감독님은 무턱대고 자신감을 내비치기 보다는, 상대방을 경계하면서 SK의 팀억을 결집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뭐 1차전 패배하면 4차전까지 밀릴 수 있다 등등. 그에 비해 선동열감독은 그런 상대방을 압도하는 발언을 잘 하지 못하더군요.
가장 큰 패배원인은 아마 대체자원의 부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타자가 부진에 빠지거나 투수가 위기에 쳐할 때 그것을 메꿔줄 대타나 불펜투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선동열감독의 장점은 누구나 알다시피 한박자 빠른 투수교체입니다. 털릴것 같으면 금방금방 적절한 불펜투수로 바꿔버리죠. 허나 이번 게임에서는 아쉽게도 그런 강점이 오히려 독을 작용했습니다.
바꿔도 털리고, 그리고 선감독 답지 않게 계속 실점하는 투수를 기용하는 모습들. 초반에 오승환을 너무 쉽게 냈다는 것. 이우선을 계속 기용했다는 것.. 타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자가 부진에 빠져있을 때, 그 타자를 바꾸고 타격감이 좋은 타자를 넣어야 하는데 아쉽게 그러지 못하더군요. 물론 그런타자가 없었지만요. 양신이 정말 아쉽더군요. 채태인, 박석민, 최형우. 좋은 타자들입니다만, 전력분석을 당했는지 결정적 찬스에서 해결을 못해주더군요. 두산과의 경기에서 너무 큰 에너지를 소모해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솔직히 불펜 대 불펜 싸움으로 가면 당연히 삼성이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SK의 좌투수들이 너무 강하더군요. 권혁의 부진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SK 왕조가 이미 열렸더군요. 마치 등치는 크지 않지만 단단하고 강한 느낌을 주는 파이터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아나 롯데같은 경우는 등치는 큰데 맷집은 약한 모습.ㅠㅠ
아무튼 내년에도 엄청나게 기대가 됩니다. 3강 3중 2약 체제가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또 3중(엘지, 기아, 롯데) 중에서 내년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줄지. 자못 긴장됩니다. (기아도 빨리 강력한 좌완불펜을 키워야 하는데,, 티벳경태 이노마...ㅠㅠ)
삼성팬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렇지 이번에 SK를 상대할만한 팀은 그대들 밖에 없었습니다.(정규시즌에서 1위를 기를 쓰고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다음에도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다들 야구게시판에서 지나치게 싸우지 마시고, 그냥 공놀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겁니다. 다시 한 번 SK 우승축하합니다!